모든 시민은 기자다

일본어에, 영어까지 공부? 너 왜그래?

대안학교 아이들도 공부를 한다... 단 자발적으로

등록|2009.03.07 14:21 수정|2009.03.07 14:21
"따르르릉, 콜렉트 콜입니다. 상대방을 확인하세요."

이그, 상대방 확인을 안해도 누군지 안다. 이 왠수, 왜 비싼 콜렉트 콜이야. 전화카드는 어다 두고? 싶습니다. 그래도 전화 해준 딸에게 티는 낼 수 없어.

"어, 딸 잘 지내?"
"잘지내. 엄마?"

"살살 말씀하세요. 소리 안질러도 다 들려요."
"응, 그래. 엄마 나 3월달 용돈 이만 오천원에서 만원은 해주 줘. 꾼거 갚는거야. 나머지 만오천원만 보내."

"결국 용돈 때문에 2주만에 전화했니? 그것도 비싼 콜렉트 콜로?"
"아니. 또 있어. 나 일본어 공부 좀 하게 문제집 사서 보내줘. 그리고 영어공부를 회화위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문언니한테 물어봐죠." 

"왜 갑자기 일본어에 영어까지?"
"일본어는 너무 공부하고 싶고, 영어는 필요하니까. 꼭 보내. 또 안보내지 말고!" 

"따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으시네요. 따님께서 공부를 다하신다니..."
"그러게. 별 일이 다 있네. 그러니까 꼭 보내. 까먹지 말고, 그것도 빨리!"  

딸은 저를 잘 압니다. 공부한다고 해도 잘 챙겨주지 않는 엄마를 못 믿어워서 자꾸 까먹지 말란 말을 여러번 한 후에 전화를 끊습니다. 딸 전화를 받으면서 '아니 겨울 방학 3달 동안 그렇게 필요하다 싶었으면 그때 공부할 것이지, 학교 가니까 저러냐?' 싶습니다. 방학 동안 큰 딸을 바라보는 제가 참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친정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방학 때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답답해서 저를 들볶습니다.

"니 우짤라고 아를 저리 키우노? 공부를 와 다잡아 안시키노? 대학 안보낼기가? 지금 초등학생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데 니 아들은 와 학원도 안보내고 저리 키우노? 니 나중에 을매나 후회할라카노?"

친정 엄마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것부터 학원 안보내는 것부터 돈을 악착같이 벌지 않고 자꾸 딴 데 한눈 파는 것부터 다 불만입니다.

▲ 딸이 마음공부 수업에서 쓴 자신의 비전1호 ⓒ 권영숙




"엄마.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애들이 엄마 친손주보다 더 잘될거라고 생각해. 다시 말하면 그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지 몰라도 행복지수는 우리 애들보다 낮을지도 몰라. 왜냐면 우리 아이들은 행복을 돈에서, 높은 지위에서 찾지 않을거거든. 작은 것에서 행복찾는 연습을 하니까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거야. 그게 중요한거 아니야? 돈 많다고 행복한가? 돈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다 행복한가? 엄마, 만족을 모르고 자라니까 행복하지 않은거야. 늘 부족하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 않은거라구. 가난하게 자라도 가난을 문제 삼지 않으면 당당해질 수 있는거고, 부자로 살아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더 가지지 못해 불행한거야."

제 말을 들은 친정엄마는 말은 내 말이 맞지만 현실에서의 내 말은 틀리다고 합니다. 틀릴 수도 있겠지요. 맞고 틀리고는 다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가난을 혹독하게 경험한 엄마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결혼 초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밑마음과 불안이 늘 존재합니다. 다만 그 속에 제가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돈버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돈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꾸 마음을 다잡는 것이지요.

"문제집 꼭 사서 보내야 돼?"
"왜? 또 안보내려구? 나 일본어 공부하고 싶어."

"그럼 니 용돈에서 사."
"엄마. 나 돈 없어. 용돈 3만원에서 2,500원은 북한동포 돕고, 1,000원은 나다 후원하고, 26,500원 남는데 너무한다. 엄마가 이 돈으로 살아봐. 얼마나 빠뜻한지 알아?"

"야! 기숙사에 있는 애가 돈이 왜 필요해?"
"엄마. 나 옷사는 것도 내 돈으로 사잖아. 엄마가 안사주잖아."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제가 겨울 잠바 정도는 사주지만 티나 바지, 가방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안사줍니다. 딸이 자기 물건은 자기 용돈 모아서 사야하니 엄마한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아 내려 하지요.

에너지 넘치는 딸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저도 기운이 납니다. 매년 학기 초, 딸은 무엇을 배울까, 고민하면서 수강신청을 합니다. 가끔 제게 "엄마, 이번 학기는 뭐 듣는게 좋을까?" 라고 자문을 구하지만 "너 배우고 싶은거"라고만 하는 엄마에게 이젠 더이상 기대하지 않습니다. 딸은 '물은 내가 잘못이지' 라는 표정을 제게 귀엽게 날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