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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부 기자님들, 파파라치는 되지 마세요

스포츠서울 사회연예부 팀장이 쓴 "손예진씨, 죄송하지만 관심없습니다"를 읽고

등록|2009.03.07 15:31 수정|2009.03.07 16:27

▲ 손예진의 소속사 측에서 지난 1월말 파파라치로 의심되는 남녀 2명을 경찰에 신고했고, 이 과정에서 이들의 신원이 모 언론사 기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 <아내가 결혼했다> 공식 홈페이지


지난 5일, 다음 블로거뉴스에서 스포츠서울닷컴 사회연예부 임근호 팀장이 쓴 글을 보게 됐다. <"손예진씨, 죄송하지만 관심없습니다"…사건의 내막>이라는 제목부터가 사람의 이목을 확 잡아끌 정도로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읽어보니 내용은 다른 게 아니라 며칠 전 손예진이 파파라치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기사 보도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었다. 손예진의 집 근처에서 차를 세워놓고 몇날며칠 죽치고 있었던 사람들이 실은 파파라치가 아니라 스포츠서울 기자였고, 취재대상도 손예진이 아니라 최지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 정말 재밌다. 일단 도입부부터 사람 배꼽을 쥐게 만든다. 대체 뭐가 얼마나 재밌는지 조목조목 따져볼까 한다.

지난 4일. 3건의 열애설이 터졌습니다.
이동건-차예련, 김하늘-강지원, 고현정-조인성.
1건은 묵묵부답, 또 다른 1건은 강력부인, 나머지 1건은 '콧방귀'로 끝났죠.
연예계에 도는 소문이니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확신을 가지고 쓴 기자는 '오보'를 한 셈이 됐네요.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기자는 소문으로 나도는 '카더라 통신'을 후달리는 마음에 '난사'합니다.
다른 기자가 먼저 쓸까 일단 쓰고 보는거죠. (물론 안그런 기자도 많습니다.)

기자가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갖고 기사를 쓴다는 게 말이 될까? 이게 의사가 진단도 안 하고 배부터 짼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기사를 내리거나 정정 보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의사도 짼 배 그대로 덮고 사과하면 그만이겠네? 명색이 사회연예부 팀장이라는 사람이 이걸 말이라고 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개 '열애기사'라는 게 형식이 비슷비슷하다. 일단 기사 내용의 태반이 '측근'이나 '관계자'의 증언이다. 당연하다. 사실 확인도 안 한 채 무작정 기사부터 쓰려니, 소스 제공자인 측근이나 관계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인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음 당사자나 소속사의 반응을 기다린다. 여기서 대개는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는데, 일부 아닌 경우에는 그게 진실로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소위 '특종'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일단 쿡쿡 찔러본 뒤 뭔가 나오면 대박이고, 아님 마는 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집 주위에 누구 사시는줄 아시죠?
워낙 유명한 A급 스타가 많아서
손예진 씨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취재 대상은 손예진이 아니라 최지우였다고 말하는 임근호 팀장, 그런데 그 뉘앙스가 참 재밌다. 그냥 취재대상이 손예진이 아니라 최지우였다고만 하면 될 걸, 'A급 스타'라는 말을 집어넣어 꼭 "저기요 손예진씨, A급 스타도 아니면서 오버하지 말아 줄래요?. 우린 댁한테 관심 없거든요?" 뭐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 한마디로 손예진 집 주위에 여러 A급 스타들이 살아서 손예진 '따위'는 관심 대상도 아니라는 건데, 이쯤 되면 이 사람, 대체 어떻게 스포츠신문 사회연예부 팀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건지 살짝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연예인이라지만 사람을 A급, B급으로 등급 나눈다는 게 참 거슬리는 일이다. 그러나 기왕 꺼낸 말, 한 번 제대로 따져 보자. 임근호 팀장이 A급도 아니라고 깎아내린 여배우 손예진…, 어라?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전국 관객 18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무방비 도시>도 160만 명을 동원하며 그럭저럭 흥행한 축에는 들었다.

드라마는 작년에 <스포트라이트> 실패하고, 2006년 <연애시대>도 10% 초반 대 시청률로 평타 수준이었지만, 영화는 배용준과 함께 했던 <외출>을 제외하면 데뷔 이래 100만 명 이상 들지 않은 작품이 없다. 거기에 20대의 어린 나이에 이미 '손본좌'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가 바로 손예진이다. 충무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여배우를 두고 A급 스타가 아니라고?

▲ 제 45회 백상 예술대상에서 손예진은 <아내가 결혼했다>로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 <아내가 결혼했다> 공식 홈페이지


반대로 이번에는 임근호 팀장이 본문에서 A급이라고 치켜세운 최지우, 송혜교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한 번 살펴보자. '지우히메'로 통하는 한류스타 최지우의 최근작 <스타의 연인>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방영 내내 한 자리대 시청률로 동시간대 꼴지를 기록…, 앗? 근데 이건 송혜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종영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시청률이 어찌나 저조했던지 KBS 월화드라마 폐지론까지 들먹여질 정도였다(물론 <그들이 사는 세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 대단한 현빈과 호흡을 맞추고, 표민수·노희경 콤비가 손을 잡고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최지우의 2007년 작 <에어시티>도 제대로 망한 작품 중 하나다. 영화 <연리지>는 또 어떤가? 한류기획용으로 만든 이 영화는 '참패'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망했다. 전국 관객 10만 명 동원, 10만 명이면 손익분기점은커녕 인건비도 못 건질 수준 아닌가? 송혜교도 브라운관의 인기를 바탕으로 기세 좋게 충무로에 진출했다가 <파랑주의보> <황진이> 두 작품 연달아 별 재미 못보고 다시 브라운관으로 컴백한 케이스다.

게다가 많아야 1년에 한 작품 정도 하는 이들과 달리 손예진은 작품 활동도 왕성하다. 누구들처럼 이름값으로 CF만 죽어라 찍어대며 이미지 관리에만 힘쓰는 '무늬만 스타'가 아니라 진짜배기 배우이자 스타라는 거다. 여보세요, 스포츠서울닷컴 사회연예부 임근호 팀장님,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따져 볼까요? 누가 A급이고 B급인지?

혹자는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스타는 팬들의 인기를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팬들의 사랑으로 한 해에 수억, 수십억을 벌죠.

그렇다면 사생활은 팬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인기를 이용해 수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내 개인 생활은 공개되기도 싫다?
그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인기가 없다면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인기를 포기하고, 스타의 자리를 내놓은 다음 사생활을 즐기시던지
아니면 대중의 관심을 고마워하며 사생활을 감수하고 스타의 지위를 누리십시오.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이건 뭐, 그냥 '궤변'덩어리다. 남의 사진, 그것도 애인과 단 둘이 있는 사진을 몰래 찍어서 신문에 실어놓고 '사생활 침해'가 아니란다. 그럼 대체 사생활 침해는 뭘까? 둘이 발가벗고 있는 걸 찍어야 사생활 침해인가? 연예인은 팬들의 사랑으로 돈을 번다. 그렇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연예인은 팬들의 사랑으로 돈을 번다. 그러므로 사생활은 팬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일까? 임근호 팀장은 연예인이 팬에게 자신의 사생활까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말을 바꿔보자. '연기자는 팬들의 사랑으로 돈을 번다. 그러므로 좋은 연기를 팬에게 돌려줘야 한다' 혹은 '가수는 팬들의 사랑으로 돈을 번다. 그러므로 좋은 노래로 팬에게 보답해야 한다' 이건 말이 된다. 연예인의 인기는 그들이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연기와 노래 등에 대한 보답이므로. 그런데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 사니까 네 사생활을 내놔라? 이건 당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연예인이 팬에게 줘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의 연기, 노래 등의 퍼포먼스이다. 사적인 영역의 사생활까지 팬에게 개방하고 공유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연예인을 많이 좋아하고 거기에 빠져들다 보면 때때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사생활을 낱낱이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정당한 일인가?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걸 팬의 정당한 '권리'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이나 치부를 끄집어내서 알권리라는 미명 하에 세상에 까발리고, 거기에 대해 연예인이 해명하길 기다리는 게, 연예인에게 인기를 주는 대가로 당연한 일인가? 연예인이 사생활을 공개하기 싫어하면 그게 도둑놈 심보인가?

이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생활의 자유(제 17조)는 연예인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데 명색이 배울 만큼 배웠다는 스포츠신문 사회연예부 팀장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저런 말을 한다. '인기'와 '사생활'은 결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억지로 공식에 대입하려 하는 작태, 자신들의 저열한 파파라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몸부림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제발 적당히 좀 하자. 최지우와 이진욱이 사귄다고? 그게 그렇게 국민들의 '알권리'를 외쳐댈 만큼 대단한 일인가? 남자 여자 둘이 만나서 연애 좀 하겠다는데, 또 그걸 자기 둘만 아는 비밀로 하겠다는데, 대체 왜 못 잡아먹어서 난린가? 팬들은 최지우가 누구와 사귀는 것을 알고 싶어 하기보다는 그녀가 좋은 작품에서 더 멋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올 것을 원한다. 엉뚱한 데에 '팬심'을 끼워 넣어 써먹지 좀 마라. 이러니까 스포츠신문이 만날 '찌라시'소리 밖에 못 듣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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