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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는 빨랫줄이 없다

[畵加話] 수평의 공간을 가진 상하이 사람들의 이야기

등록|2009.03.08 12:41 수정|2009.03.08 12:41

중국 상하이의 빨랫줄습기가 많은 남방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 옷들을 대나무와 같은 긴 나무 막대에 꿰어 창 밖으로 내어 말린다. 요즘은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같은 재질도 사용된다. ⓒ 손호진


1.  중국 상하이에는 빨랫줄이 없다

상하이에서 가장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에어컨 냉각기와 그 주위로 촘촘하게 뻗어 나온 상하이식 빨래 건조대들이다.

낡은 아파트 외벽 전체에 설치한 이런 직선의 예술품(?)들은 마치 고대의 수많은 병사들이 창 끝을 세우고 진격을 기다리듯 날카로우면서도 질서 정연한 도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이런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조차 한 이방인에겐 웅장한 광경으로 다가온다.

2. 날씨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

상하이의 여름 날씨는 40도를 오르는 고온에 습기까지 더해져 있다. 건물 외벽에 왜 저렇게 많은 에어컨 냉각기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은 여름을 지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겨울 또한 마찬가지이다. 습하고 냉랭한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파고 드는 고통스러운 날씨가 이어진다. 베이징이 마르고 송곳 같은 겨울 바람이라면, 상하이의 겨울은 젖어 있는 찬 수건으로 몸이 때리는 듯한 겨울 바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날씨가 풀린다 싶을 때도 늘 습기가 문제였다. 집 안에 남아 있는 습기 때문에, 어느 겨울 날엔 집 안보다 바깥이 따뜻해 몸을 데우기 위해 일부러 집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상하이 사람들이 '습기'의 집약체인 '빨래'를 멀리하기 위해 창 밖으로 빨래 건조대를 만들어 놓은 것은 어찌 보면 날씨에 반응해 사는 방법을 찾아낸 인간의 학습 된 본능처럼 보인다.

3. 공간을 빼앗긴 군중들

중국은 법적으로 개인의 토지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대여하는 개념으로 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지을 순 있지만, 절대적인 소유의 개념은 아니다.

노벨상 작가 펄벅의 <대지>에서 관찰된 중국인들의 땅에 대한 열망을 보건대 그들에게서 공간의 소유 욕을 절제시키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숨을 참으라 강요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고 쉽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런 외부의 빨래 건조대들은 그들의 열망이 낳은 새로운 소유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거나 규제 받지 않은 그들만의 공간인 것이다.

4. 나만의 공간에선 편하게 옷을 벗는다

빨래 건조대는 우선 사각형의 철골 구조물로 만들어져 창 밖에 매달아 고정시키게 된다. 실제 빨래는 긴 대나무에 꼬치 구이처럼 꿰어져 널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떨어질 일 없다.

딱 한 번 이런 식으로 옷을 걸어 본 적이 있다. 꽤 무거워서 팔의 힘과 균형 감각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널리는 옷은 속옷부터 스웨터까지 다양하다.

다 큰 어른의 속옷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깃발처럼 펄럭거리는 것이 글쎄 누군가에게 실례라면 실례가 될 것이고, 개인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하이의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 공간은 그들만의 공간이고 사적인 소유이므로, 누군가에게 간섭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불필요한 노동처럼 여기는 듯하다.

5. 수평의 삶에서 수직의 삶으로의 변화

상하이에는 요즘 재개발이 붐이다. 재개발은 이미 도시의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낡은 것을 허물고 그 자리에 좀 더 크고 근사하고 높은 것들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의 가격은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가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요즘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엔 이런 식의 빨래 건조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베란다들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밖으로 수평의 공간 확장에서 안으로 수직의 공간 확장을 선택했다. 이젠 내부적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공간에 만족하며, 또한 작은 삶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경제 관념은 모든 것을 변화 시킨 듯하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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