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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

극단 '새벽'의 <어머니 날 낳으시고> 출연배우 변현주씨와의 대화

등록|2009.03.09 09:46 수정|2009.03.09 09:46

▲ 극단새벽의 <어머니 날 낳으시고> ⓒ 배성민



7일 토요일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들과 부산대 지인들과 함께 부산 남포동의 소극단인 <극단 새벽>의 <어머니 날 낳으시고>라는 연극을 보았다.

1인극으로 진행되는 연극이라 09학번 새내기 학회원들이 과연 이것을 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본다는 09학번 후배에게 연극이 재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

변현주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일란성 쌍둥이 영란, 정란의 삶과 두 자매의 회고를 통해 가부장적 제도 아래 억눌려 살다 간 어머니의 거친 삶을 살갑게 그려냅니다. 언니 영란이 발표한 '어머니 날 낳으시고'라는 소설이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자, 이를 취재 온 모 여성지 기자와의 인터뷰가 극의 얼개를 형성시킵니다. 아들을 낳으려고 작은 부인을 얻은 아버지, 이 바람에 뒷전으로 밀려나며 겪는 어머니의 수모, 결국 뒤늦게 쌍둥이 자매를 낳았지만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게 되는 어머니.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이들의 삶의 증언은 오래 동안 이 땅의 여성이 겪어 왔고, 지금도 적잖은 여성이 유사한 경험 속에 있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덧붙여 이러한 이야기를 싸고도는 70년대 달동네 사람들과 철거민들의 삶. 80년대 노동자들의 속앓이 등 어느 틈에 극 중 이야기는 타자의 삶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관객에게 다가갑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배우가 두 사람의 일란성 쌍둥이 역과 어머니를 비롯하여 역술인, 달동네 사람들 등 총 아홉명의 등장인물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관객은 여느 일인극처럼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들고 날 때의 재미 뿐 아니라, 1인칭 화자의 교차를 통해 두 사람의 관점을 접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의 일인극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극단새벽)

너무 진부한 내용 하지만

연극을 다 보고 학회원들은 내용이 너무 진부했다고 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 할머니의 이야기랑 다를 바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1인 극을 하신 변현주씨를 모시고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극단에 요청했다. 연극을 보러 오기 전에 미리 배우와의 대화를 한번 주선해달라고 부탁해놓은 상태라서 쉽게 자리가 만들어 졌다.

동아대 이X : 1인극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저두 연극을 해봤는데 1인극은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페이스 조절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변현주 배우 : 1인극이 여러 사람이 연극하는 것보다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1인 다 역을 맡다보니 캐릭터마다 강도가 다릅니다. 어떤 캐릭터는 매우 정열적인 성격을 가진 역할이라 매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만, 또 어떤 배우는 얌전하고 조용합니다. 그리고 제가 잠깐 무대 뒤로 들어가서 음악이 흐를 때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요.

▲ 중간에 컵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극단 새벽의 변현주 씨다. ⓒ 배성민



동아대 이X : 그럼 혹시 무대 뒤에 있을 때 다른 생각이 드나요?

변현주 배우 : 다른 생각이 들 틈이 없어요. 호흡을 가다듬고 저 스스로 역할에 대한 페이스 조절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등등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무대에 나가죠.

부산대 정XX : 연극을 보면서 계속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엄마가 살면서 느꼈던 서러운 감정이 갑자기 공감이 되더라구요.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 저에게 하소연을 하고 눈물을 자주 보이셨거든요.

변현주 배우 : 네. 연극 내용이 어머니의 삶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현재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에 대해 이 연극에서는 다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딸이 제사를 지내는 장면 기억하시죠? 물론 1인 극이지만 제사를 두 딸이 지냅니다. 제사라고 하면 사실 남자들이 제사를 지내고 여자들은 음식 하는 게 통념이잖아요. 근데 이 장면을 통해 통념을 깨버리고 여자도 스스로 묵묵히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이죠.

▲ 진지하게 배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학생들 ⓒ 배성민



부산대  김XX : 저희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라 매우 연극을 보는 내내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저에게는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은 매우 민감한 문제거든요.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이 연극을 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현주 배우 : 연극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과 비슷한 내용의 연극을 보면 학생분 말씀처럼 연극을 보기가 꺼려질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연극을 보지만 정작 연극이 끝나고 울고 나면 조금 낫다고 말을 합니다. 연극을 통해 상처 받은 마음이 정화가 된다고 할까요?

예술은 만병 통치약이다

필자도 학회원들과 같이 연극을 보고 기억이 나는 것은 많이 없다. 우리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내용이 진부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현주씨와의 대화 속에서 예술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예술 하면 필자는 언제나 유희와 욕구의 충족 수단으로만 생각을 했었다. 나 자신이 즐겁기 위해 예술을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정신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예술을 보고 즐긴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인간의 상처를 치유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변현주씨와의 대화를 통해 알았다. 물론 예술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새에서 받았던 모든 상처를 완전 치료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지금까지 억눌려온 자신의 상처를 되새기며 정화시킬 수 있는 힘은 분명 있는 것 같다.

극단새벽의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3월 29일까지 볼 수 있다. 연극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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