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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0)

'자연보전의 사고', '그림책의 포로가 되어' 다듬기

등록|2009.03.09 19:24 수정|2009.03.09 19:24
ㄱ. 자연보전의 사고

.. 자연보전의 사고가 제아무리 진리에 가깝고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제부터 극복해 나가야 할 산 너머 큰 산들이 또 있다 ..  <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김수일, 지영사, 2005) 88쪽

'생각'이라고 하면 되는데 '사고(思考)'니 사색이니 사려니 배려니… 참으로 온갖 한자말을 구태여 끌어들여 쓰는 이 나라 지식인들입니다. 보기글에서도 느끼지만 '사고'라 하면 다른 '사고'하고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헷갈리지 않을 만한 우리 말을 살피고, 한결 또렷하고 손쉽게 다가올 우리 글을 적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참된 이치"라 하는 '진리(眞理)'인데, 보기글에서는 '참'이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극복(克服)'은 '이겨 내다'로 다듬습니다.

 ┌ 자연보전의 사고
 │
 │→ 자연을 지키려는 생각
 │→ 자연을 돌보고 가꾸려는 마음
 └ …

'자연보호'나 '자연보전'을 말합니다. 보호와 보전이 어떻게 다르며, 우리들은 보호와 보전을 어떻게 펼치고 있는가를 살핀다면 거의 입으로만 뇌까리는 자연사랑이나 자연지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산과 들과 논과 밭을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울 때에도 자연을 아끼거나 생각한다는 말이 달라붙곤 합니다. 겉치레 말이라 할는지, 삶자락 그대로 껍데기만 남은 말이라 할는지, 우리 생각과 일과 매무새는 좀더 아름다운 쪽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자연을 지키려는 생각이
 ├ 자연을 가꾸려는 생각이
 ├ 자연을 돌보려는 생각이
 ├ 자연을 아름다이 간직하려는 생각이
 ├ 자연을 알뜰히 간수하려는 생각이
 └ …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씨만큼 우리 터전과 마음됨과 말글을 지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자연을 가꾸려는 마음결만큼 우리 이웃과 동무들 마음밭을 가꿀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자연을 돌보려는 메무새만큼 우리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두루 돌아보면서 고이 보듬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합니다. 자연을 아름다이 간직하려는 손길만큼 우리네 사랑과 믿음도 아름다이 간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고마우랴 생각합니다. 자연을 알뜰히 간수하려는 숨결만큼 우리 몸과 마음도 알뜰히 간수하면서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우랴 생각합니다.

말이 넋이요, 글이 얼입니다. 말이 삶이요, 글이 세상입니다. 말이 내 모습이, 글이 내 발 디디고 있는 마을입니다. 널리 보고 깊이 헤아리고, 곰곰이 들여다보고 찬찬히 어루만질 수 있는 우리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되어 준다면 좋겠습니다.

ㄴ. 그림책의 포로가 되어

.. 지난날 읽을 때와는 다른 깊은 의미와 맛을 발견하고 완전히 그림책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 <그림책의 힘>(가와이 하야오,마츠이 다다시,야나기다 구니오/햇살과나무꾼 옮김, 마고북스, 2003) 17쪽

"깊은 의미(意味)와 맛"은 "깊은 뜻과 맛"이나 "깊은 맛"으로 고쳐 줍니다. '발견(發見)하고'는 '찾고'나 '찾아내고'로 손보고, '완전(完全)히'는 '아주'나 '온통'으로 손봅니다. '포로(捕虜)가 되어'는 '사로잡혀'로 손질합니다.

 ┌ 그림책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
 │→ 그림책한테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 그림책한테 사로잡혔습니다
 │→ 그림책한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 …

전쟁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얽힌 낱말을 반기지 않습니다. 전쟁을 거스르고, 전쟁하고 이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보니까, 전쟁과 얽히는 낱말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격침'이나 '파상공세' 같은 낱말도 마뜩하지 않고, '진격'이나 '충성' 같은 낱말도 내키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포로' 같은 낱말도 무척 거슬립니다.

이러한 낱말을 쓰는 분들이 전쟁을 사랑하기 때문에 쓰지 않습니다. 전쟁을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에 이런 낱말을 함부로 끼워넣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나타내고싶은 생각과 뜻을 좀더 살갗에 와닿도록 하고 싶어서 이런 낱말을 쓸 뿐입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 뜻을 어이하여 전쟁과 얽힌 낱말로 담아내야 할까요. 어이하여 자기 얼과 넋을 싸움과 이어지는 낱말로 드러내야 할까요.

사랑이 배인 낱말, 믿음이 서린 낱말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나요. 따뜻함이 묻어나는 낱말, 넉넉함이 샘솟는 낱말로는 말하고 글쓸 수 없나요.

 ┌ 그림책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 그림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 그림책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되었습니다
 ├ 그림책을 그지없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

전쟁 낱말도 싫고, 경쟁 낱말도 싫습니다. 밟고 올라서는 낱말도 싫고 으쓱대거나 자랑하는 낱말도 싫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바란다면, 낱말 한 마디를 고를 때에도 사랑 어린 낱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터가 한결 나아지면서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쓰는 낱말도 한결 나은 쪽으로 살피고, 좀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낱말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 그대로 평화로운 낱말을, 민주를 꿈꾸는 마음 그대로 민주스러운 낱말을, 진보를 기리는 마음 그대로 진보스러운 낱말을, 통일을 이루려는 마음 그대로 통일 냄새 그윽한 낱말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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