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또래 아이들과 학교 다니니 설레네!
쉰 살 대학생이 본 교정 풍경
"나이 50에 공부합니다. 많이 도와 줘요"
교정에 핀 매화향보다 더 향기로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마치, 꿈꾸듯 흘러간 일주일을 뒤돌아 보니 입가에 웃음만 맴돕니다. 쉰 살이면 이제 서서히 은퇴를 준비할 나이건만 자식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한 교실에서 웃고 떠들고 허물없이 지내야 할 내 앞날을 생각하면 솔직히 걱정 반 설렘 반입니다.
아내가 입학 기념으로 사준 밝은 색 옷을 입고, 평생 바르지 않던 화장품도 바르고 아침마다 샴푸로 머리를 감습니다(늘 비누로만 머리를 감거든요). 하지만 이미 먹은 나이를 토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음만이라도 젊어지려고 내 나이 절반은 잘라 가방에 푹 쑤셔 넣고 학교를 갑니다.
"쉰 살에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줘요."
아이들 앞에 나가서 인사 겸 내 소개를 했더니 우리 친구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 "민박집 아저씨, 공아저씨, 삼촌" 이라고 불러주며 살갑게 대해 주는 친구들을 보자니 올해 대학 2학년인 아들을 보는 것 같아 고맙고 흐뭇합니다. 그 날 저녁, 한 아이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희 아빠도 지금 나이가 쉰 다섯인데, 올 2월에 대학교 졸업하셨어요. 4년만에. 우리
꼬~옥 함께 졸업해요~~'
문자를 받고 하도 고마워 아내한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고운 마음 오래 가슴에 넣어 두고 싶어 아직 지우지 않고 자주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요.
아들과 한 약속,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부
내가 대학에 다니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시골살이에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도 버거운데 언감생심,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떡장사를 해서라도 학비를 대줄테니 공부를 하라는 아내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대학생이 되고 보니 고마운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분들 관심과 사랑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지요. 아침 저녁으로 매화향 진동하는 섬진강가를 달리며 학교를 오가는 길, 벅찬 가슴을 아직 진정도 못 시키는 스무 살 청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작년 여름방학 때입니다.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아들이 고삼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과외를 받기 위해 함께 서울에 갔습니다. 시골에서 학원이나 과외를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아들이라 수능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아비 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조심스럽게 '서울 과외'를 이야기 하기에 내 마음의 짐도 덜자고 허락을 하고 함께 서울에 갔지요.
그런데 정작 만나기로 약속을 한 과외 선생님께 연락을 하니 지금 지방에 있으니 과외를 일주일만 미루자고 했습니다. 고삼 수험생한테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텐데 성의없고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아 참 서운했습니다.
"아들아, 지금 다시 과외 선생님을 구할 수는 없고, 또 지금 과외를 한다고 해도 표 나게
성적이 오르겠니? 차라리 독서실을 하나 구해서 혼자 총정리를 하며 인터넷 강의를 계속 듣는 게 낫지 않겠니?"
늘 아버지 말에 순응을 잘 하는 아들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수능이라는 짐을 혼자 떠안고 힘들어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아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아, 꿈은 짐이 아니란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 대신 아빠도 지금부터 공부해서 2년 뒤에는 대학에 갈게."
그리고 아들과 함께 EBS 검정고시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아버지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들한테 큰 힘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실례지만, 자식같은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하겠습니까?"
교정에서 우리 아들 또래 아이들만 봐도 가슴 깊은 곳에서 사랑이 솟아납니다. 아직 세상 쓴맛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봄 꽃봉우리 같은 아이들을 학우라 부르며 나란히 걸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마음입니다.
"실례지만, 자식같은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겠습니까?"
지난 가을, 면접시험을 볼 때 교수님께서 걱정스러운 듯 물으셨습니다. 웃으며 자신이 있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흐뭇할 줄은 그 때는 몰랐지요. 지천명 나이에 꿈을 키우며 배움에 힘 쓴다는 게 어디 보통 즐거움인가요?
마침 오늘, 25대 총학생회 출범식을 앞두고 광장에 모여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풍물패가 두드리는 꽹과리 소리에 흥이 나서 내 어깨도 들썩거리는 걸 보며 공연히 교정을 몇 바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다니다니..." 꿈 같은 현실 앞에 서니 학교가 얼마나 고맙던지요. 무지렁이인 내게 배움의 기회를 준 학교 당국에 고맙고 고마운 일이지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을 하고 수능시험 준비를 하는 중, 순천대학교에서 만학도 전형으로 뽑는 2차 수시 모집이 있어서 응시를 했습니다. 전공을 선택하는 일에 아내와 약간 갈등이 있었지만 끝내 아내가 바라던 문예창작과에 지원을 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말하시오."
면접시험 종이에 적힌 글을 읽으며 담담히 대답을 했습니다.
"자연이란 한 번 파괴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고 아름다운 한반도를 물길로 두동강 내는 것은 후손대대로 후회 할 일이라고 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 영향은 없다고 봅니다."
사회문제를 한 편으로만 보는 좁은 시야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염려는 되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대운하는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세 분이 여러 가지를 물으셨는데 긴장을 한 탓인지 횡설수설한 것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면접시험장을 뒤돌아 나오는데 얼마나 떨리고 부끄럽던지요. 집에 와서는 아내한테 합격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습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고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날 마침 아내는 마을 친구들과 함께 남해 바닷가로 나들이를 간 터라 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축하해죠~~"
"합격했어요?"
금방 알아 차린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우리 학교!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부, 앞으로 4년, 내가 다닐 학교려니 생각하니 예쁘게만 보입니다. 내걸린 펼침막 하나를 봐도 정이 갑니다.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딸아이 도움을 받아 컴퓨터에 저장을 하는데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묻습니다.
"아빠, 여기 어디에요?"
"응,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우리 학교야!"
교정에 핀 매화향보다 더 향기로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마치, 꿈꾸듯 흘러간 일주일을 뒤돌아 보니 입가에 웃음만 맴돕니다. 쉰 살이면 이제 서서히 은퇴를 준비할 나이건만 자식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한 교실에서 웃고 떠들고 허물없이 지내야 할 내 앞날을 생각하면 솔직히 걱정 반 설렘 반입니다.
"쉰 살에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줘요."
아이들 앞에 나가서 인사 겸 내 소개를 했더니 우리 친구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 "민박집 아저씨, 공아저씨, 삼촌" 이라고 불러주며 살갑게 대해 주는 친구들을 보자니 올해 대학 2학년인 아들을 보는 것 같아 고맙고 흐뭇합니다. 그 날 저녁, 한 아이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희 아빠도 지금 나이가 쉰 다섯인데, 올 2월에 대학교 졸업하셨어요. 4년만에. 우리
꼬~옥 함께 졸업해요~~'
문자를 받고 하도 고마워 아내한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고운 마음 오래 가슴에 넣어 두고 싶어 아직 지우지 않고 자주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요.
아들과 한 약속,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부
▲ 순천대앞으로 4년 동안 공부할 인문 예술대 건물입니다. ⓒ 공상균
내가 대학에 다니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시골살이에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도 버거운데 언감생심,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떡장사를 해서라도 학비를 대줄테니 공부를 하라는 아내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대학생이 되고 보니 고마운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분들 관심과 사랑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지요. 아침 저녁으로 매화향 진동하는 섬진강가를 달리며 학교를 오가는 길, 벅찬 가슴을 아직 진정도 못 시키는 스무 살 청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작년 여름방학 때입니다.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아들이 고삼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과외를 받기 위해 함께 서울에 갔습니다. 시골에서 학원이나 과외를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아들이라 수능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아비 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조심스럽게 '서울 과외'를 이야기 하기에 내 마음의 짐도 덜자고 허락을 하고 함께 서울에 갔지요.
그런데 정작 만나기로 약속을 한 과외 선생님께 연락을 하니 지금 지방에 있으니 과외를 일주일만 미루자고 했습니다. 고삼 수험생한테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텐데 성의없고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아 참 서운했습니다.
"아들아, 지금 다시 과외 선생님을 구할 수는 없고, 또 지금 과외를 한다고 해도 표 나게
성적이 오르겠니? 차라리 독서실을 하나 구해서 혼자 총정리를 하며 인터넷 강의를 계속 듣는 게 낫지 않겠니?"
늘 아버지 말에 순응을 잘 하는 아들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수능이라는 짐을 혼자 떠안고 힘들어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아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아, 꿈은 짐이 아니란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 대신 아빠도 지금부터 공부해서 2년 뒤에는 대학에 갈게."
그리고 아들과 함께 EBS 검정고시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아버지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들한테 큰 힘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실례지만, 자식같은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하겠습니까?"
▲ 학우들자식 또래 저 아이들만 봐도 행복합니다. ⓒ 공상균
교정에서 우리 아들 또래 아이들만 봐도 가슴 깊은 곳에서 사랑이 솟아납니다. 아직 세상 쓴맛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봄 꽃봉우리 같은 아이들을 학우라 부르며 나란히 걸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마음입니다.
"실례지만, 자식같은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겠습니까?"
지난 가을, 면접시험을 볼 때 교수님께서 걱정스러운 듯 물으셨습니다. 웃으며 자신이 있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흐뭇할 줄은 그 때는 몰랐지요. 지천명 나이에 꿈을 키우며 배움에 힘 쓴다는 게 어디 보통 즐거움인가요?
▲ 풍물패총학생회 출범식을 앞두고 풍물패가 흥을 돋웁니다. ⓒ 공상균
마침 오늘, 25대 총학생회 출범식을 앞두고 광장에 모여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풍물패가 두드리는 꽹과리 소리에 흥이 나서 내 어깨도 들썩거리는 걸 보며 공연히 교정을 몇 바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다니다니..." 꿈 같은 현실 앞에 서니 학교가 얼마나 고맙던지요. 무지렁이인 내게 배움의 기회를 준 학교 당국에 고맙고 고마운 일이지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을 하고 수능시험 준비를 하는 중, 순천대학교에서 만학도 전형으로 뽑는 2차 수시 모집이 있어서 응시를 했습니다. 전공을 선택하는 일에 아내와 약간 갈등이 있었지만 끝내 아내가 바라던 문예창작과에 지원을 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말하시오."
면접시험 종이에 적힌 글을 읽으며 담담히 대답을 했습니다.
"자연이란 한 번 파괴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고 아름다운 한반도를 물길로 두동강 내는 것은 후손대대로 후회 할 일이라고 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 영향은 없다고 봅니다."
사회문제를 한 편으로만 보는 좁은 시야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염려는 되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대운하는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세 분이 여러 가지를 물으셨는데 긴장을 한 탓인지 횡설수설한 것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면접시험장을 뒤돌아 나오는데 얼마나 떨리고 부끄럽던지요. 집에 와서는 아내한테 합격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습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고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날 마침 아내는 마을 친구들과 함께 남해 바닷가로 나들이를 간 터라 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축하해죠~~"
"합격했어요?"
금방 알아 차린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우리 학교!
▲ 총학생회총학생회 출범식을 알리는 재미난 펼침막 ⓒ 공상균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부, 앞으로 4년, 내가 다닐 학교려니 생각하니 예쁘게만 보입니다. 내걸린 펼침막 하나를 봐도 정이 갑니다.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딸아이 도움을 받아 컴퓨터에 저장을 하는데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묻습니다.
"아빠, 여기 어디에요?"
"응,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우리 학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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