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봄에는 주꾸미, 여름에는 꽃게 잡습니다"

주꾸미 철을 앞둔 해망동 부둣가 풍경

등록|2009.03.11 10:03 수정|2009.03.11 10:04

▲ 봄배추밭 아주머니들. 허술한 가옥들이 가난한 동네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가끔 터지는 웃음 속에서 평화롭고 편안한 기운이 감돕니다. ⓒ 조종안





어제는 봄볕이 따사해서 그런지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더군요. 해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혼자서 집을 나섰습니다. 어디든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려다 생각을 바꿔 주꾸미 철을 앞둔 해망동 부둣가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중간에서 내려 환승하면 목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는데도, 월명산 아래 명산동 로터리에서 내려 걷기로 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한층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명산동에서 해망동 부둣가까지는 약 2km 정도 되는데요. 다리운동은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조리개 변환이 자유롭지 못하고 렌즈교환이 불가능한 똑딱이 카메라이지만, 촬영하는 재미까지 더해서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아픈 역사를 지닌 해망동

▲ 해망동 산동네, 미로처럼 나있는 골목에서 사람 냄새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 조종안




바다가 멀리 내다보이는 동네라서 이름 지었다는 해망동(海望洞)은 금강이 서해와 뒤엉키는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망동 산동네에 거주하는 노인 중에 80%가 할머니라고 하는데요. 옛날에 바다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못했거나, 부상으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홀몸이 된 여인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서부 어판장이 있던 해망동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째보선창에 있는 동부 어판장에 밀려 찾는 이들이 없는 을씨년스런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째보선창 복개공사와 함께 어판장이 해망동으로 이사하고 횟집 단지가 들어서면서 유명관광지가 되다시피 했지요. 

해(海)가 들어가는 이름이 말해주듯 주민들 대부분이 바다에 목숨을 건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공원 아래 산동네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달동네인데요. 옛날부터 중동은 '골목'으로, 해망동은 '바람'으로 유명합니다.

해망동 산동네는 바람뿐 아니라 꼬불꼬불한 골목이 얽히고설키어 산골의 다랑이 논을 연상시키는데요. 일제가 제3차 축항 공사와 함께 뚫은 해망굴과 계획적으로 조성한 월명공원을 끼고 있어 아픔의 역사를 지닌 동네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름에는 "어디 사세요?" 하고 물으면 큰소리로 "해망동 삽니다!"라고 하지만, 북서 계절풍이 부는 겨울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낸다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진 동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해망동 살어유!"라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부둣가 풍경

▲ 선박 내부에 페인트칠을 하다 한숨 돌리는 선원아저씨. 휘발성 냄새가 진동했는데요. 출어 때마다 만선하기를 기원했습니다. ⓒ 조종안




새로 뚫린 월명터널을 지나 부둣가에 도착하니까, 마침 조선소 앞이었는데, 고장 난 배들을 수리하는 선박수리공들과 내부를 손질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어부들의 바쁜 손놀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바닷가 쪽으로 돌리니까, 풍어를 기약한 작은 고깃배 한 척이 뒤꽁무니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통통거리며 바닷가로 나가고 있었는데요. 평화로운 어촌풍경을 화폭에 그려놓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고깃배 뒤로는 일제가 우리나라 금과 동을 제련, 수탈해가려고 지은 장항제련소 굴뚝이 희미하게 보이면서 잠시 상념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서해의 장관인 붉은 노을을 제련소 굴뚝과 함께 카메라에 담으려고 전국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월명공원으로 몰려들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비응도에 수협 공판장이 들어서면서 활기를 잃은 해망동 부둣가에는 수명이 다한 그물과 녹슨 어구들이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었는데요.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았고,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생선상자에서도 비린내가 나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부둣가에 대 놓은 소형 배들은 모형과 색깔이 비슷비슷하면서도 선체에 부착된 어구들은 다른 배도 있어 궁금했는데요. 마침 배를 수리하러 왔다는 선주 송운섭(48세)씨를 만나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 둥그런 통이 장착된 꽃게·주꾸미 잡는 배, 둥그런 통에는 줄이 감겨 있는데요. 주꾸미를 유인하는 소라껍데기 매달린 줄과 게 그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 조종안



▲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큰 배들이 잡은 생선을 육지로 나르는 운반선. 통발을 이용, 우럭과 놀래미, 독게도 잡는다고 합니다. ⓒ 조종안




- 이 배들은 같으면서도 구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뭣을 잡는 배인가요?
"저기 선체 앞에 둥그런 통에다 뭔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줄을 감아 놓은 배들 있지요. 그거 달린 배들은 주꾸미하고 꽃게를 잡는 배이고, 여기 가까이 있는 배들은 바닥에서 고깃배들이 잡아놓은 생선을 운반하는 배입니다. '운반선'이라고도 하고 '개똥배'라고도 하지요.

꽃게와 주꾸미도 아무 때나 잡는 게 아니라 여름에는 꽃게를 잡고, 봄에는 주꾸미를 잡습니다. 주꾸미가 많이 잡혀야 값도 내려가고 좋을 텐데 잘 잡히지 않아 걱정입니다. 1kg에 3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하던데···. 많이 잡히면 좀 내려가겠지요."

- 지금도 꽃게가 나오던데 여름에 잡는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 지금 시장에 나오는 꽃게는 여기에 있는 작은 배가 아니라 큰 배들이 잡아오는 것이고요. 작은 배들은 여름에 잡습니다. 그리고 군산에 있는 배들보다 섬에 있는 배들이 작업을 더 많이 합니다."   

- 그럼 섬사람들도 그날 잡은 생선을 군산으로 가져오나요?
"아닙니다. 섬에서 잡는 꽃게나 생선은 비응도나 마령으로 갑니다. 여기에는 위판장이 없거든요. 해망동 수협에서는 큰 배들이 잡아오는 것만 위판하기 때문에 작은 배들은 그쪽에서 하는 겁니다."

- 그럼 이 배들은 생선을 육지로 실어오는 역할만 하고 작업은 하지 않나요?
"아니죠. 이 배들도 작업을 합니다. 통발을 이용해서 우럭이랑 놀래미랑 잡고, 등이 돌처럼 단단하고 꽃게보다 조금 작은 '독게'도 잡거든요. '박하지', '뻘떡기'라고도 하는데요. 탕을 끓여도 맛이 쥑여주지만, 간장게장을 담그거나 양념게장을 잘 무쳐놓으면 꽃게보다 더 맛있습니다."

부둣가 풍경

ⓒ 조종안



인터뷰는 짧았으나 유익했는데요. 배가 바다에 나갔을 때 바람이 불어도 한쪽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쳐놓은 보호막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해망동 부둣가 구경을 마치고 자주 다니는 공설시장에 들러 구운 김 세 봉지를 사서 돌아왔는데요. 얼추 계산해보니까 출발에서 도착할 때까지 여섯 시간 동안 6km 넘게 걸어 다닌 것 같더군요. 그래도 몸이 가볍고 마음도 상쾌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