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빨래가 즐거운 남편, 공부가 즐거운 아내

주경야독의 만학도 아내를 내조하는 남편의 즐거움

등록|2009.03.11 14:18 수정|2009.03.11 14:18
오래간만에 햇볕이 따사롭다. 봄 햇살이 가득한 날이다. 이런 날은 역시 빨래하기 좋은 날이다. 그래서 오늘(10일) 아침에 빨래를 해서 시골집 마당에 늘고 있었다.

"그려, 남자라도 해야지."

지나가던 마을 팔순 할머니가 빨래를 늘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 하신 것이다. 요즘이야 남성이 집안일 하는 것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할머니 세대만 해도 어림도 없는 일 중 하나였을 터. 할머니는 대견하다는 뜻으로 웃음을 보냈다.

"아, 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정쩡한 인사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빨래시골집 마당에서 따스한 봄 햇살 아래 빨래가 잘 마르고 있다. ⓒ 송상호




사실 내가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아내는 주로 '재가 방문 케어 서비스'를 하는 일이라 바깥에서 일했고, 나는 주로 신문 기사를 쓰거나 글을 쓰는 일이라  집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아내가 '바깥사람'이 되었고, 나는 '안 사람'이 되었다.

"집안일은 잘해도 표가 나지 않지만, 못 하면 당장 표가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도 실감하고 사는 편이다. 평소 설거지, 빨래하기, 방청소 등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특히 우리 집은 '연탄 갈기'가 추가되어 있어서 그 말이 실감날 수밖에 없다. 연탄을 잘 갈아 불이 괜찮을 때는 가족들이 '으레 그러려니'하겠지만, 만일 연탄불이 꺼졌거나 시원찮아 방 온도가 내려가면 당장 표시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집안일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때가 쑥쑥 빠져나가는 걸 한눈에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진공청소기로 방과 거실 등을 청소하다보면 먼지가 쑥쑥 빨려 들어오고, 청소 마지막에 먼지 통에 모여 있는 먼지들을 보면 속이 시원해진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니 빨래를 하는 것보다 늘고 걷는 것이 일이지만,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시골집 마당에서 빨래를 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 늘어놓고 나면 일한 보람이 바로 눈에 보여서 좋다. 하루 2~3번 씩 신경 쓰서 연탄을 가는 일도 보통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가족들(아내, 딸과 아들)이 따뜻하다고 좋아하는 걸 보면 그 흐뭇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는가.  

"여보, 요즘 공부하는 게 신나서 죽겠어."

어제 저녁 아내가 퇴근하고 나서 나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사실 아내의 나이 올해 42세다. 지난 해 2월에 대학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해서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것도 낮에는 '재가 서비스'일을 하고 밤에는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결과였다.

그리고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 아내는 지난해 초부터 간호학원에 등록해서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이번에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형식이었지만, 더 만만찮았다. '간호실습'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일은 낮에 일하고 밤에 간호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서 집에 오면 밤 10시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병원에 나가 실습을 해서 실습시간을 채우고 나면 거의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지인들에게 "내 아내는 요즘 이명박 대통령보다 조금 더 바쁜 사람이야"라고 했을까.

졸업사진2008년 2월 15일, 아동복지학과 졸업식을 끝내고 찍은 아내의 사진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얻어낸 '주경야독'의 열매였다. ⓒ 송상호



한 때는 간호실습 시간과 간호공부가 서로 이빨이 맞지 않아 어려워하던 아내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간호 실습은 이미 다 끝냈고, 간호공부도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번 일요일(3월 15일)에 '간호조무사 자격취득 시험'을 치는 것만 남겨 두고 있다.

그런 아내가 공부하는 게 신난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도 할 수 있다, 자신도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 때문 일 것이다. 지금 자신의 나이에도 뭔가를 열심히 배울 수 있다는 게 흐뭇한 모양이었다.

사실 요즘 만학도의 이야기야 흔한 일이지만, 적어도 아내 자신에게는 특별한 일이고 더불어서 나에게도 특별한 일이다. 그렇게 도전하는 아내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사실 그런 아내를 내조해 줄 수 있는 직업과 성격을 가진 나도 자랑스럽다.

"여보 파이팅!"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