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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해에 걸쳐 읽는 책 하나

[책이 있는 삶 97] 느낌글 쓰기와 책읽기

등록|2009.03.12 12:02 수정|2009.03.12 12:02

 ㄱ. 느낌글 쓰기와 책읽기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는 일을 한자말로는 '독후감(讀後感)'이라고 적습니다. 낱말을 뜯으면 "읽은(讀) 다음(後) 느낌(感)"으로, 우리 말로 적으면 '읽은느낌'입니다. 흔히 '독후감'이라고만 하고, 어른들이 책을 두루 알리고자 쓰는 글은 '서평(書評)'이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이 '서평'은 "책(書) 말하기(評)"이니, 우리 말로 적으면 '책이야기'예요.

 이 느낌글, 또는 책이야기를 제가 언제부터 했는가 떠올리니 국민학교 다닐 때인데, 1학년이나 2학년 때에도 썼지 싶으나 이무렵에는 어머니가 살짝 써 주셨으리라 생각하고, 제가 떠올리는 제 느낌글은 3학년 무렵 과학문고를 읽고 쓴 '상상 독후감'입니다. 그리고 4학년 때라고 생각하는데, 《안데르센 동화》를 읽고 쓴 글이 있습니다. 그 뒤로 숱하게 '독후감 숙제'를 했을 터이나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학교 숙제 아닌 제대로 된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는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에야 썼다고 느끼며, 제 마음에 들 만큼 즐겁게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는 1998년에 읽은 《몽실 언니》가 처음입니다.

 1998년은 제 나이 스물넷일 때로, 이때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면서 '어찌하여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 이 할배 이름을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나?' 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음에도, 또 《몽실 언니》가 1984년부터 무척이나 사랑을 받았음에도, 집이고 학교이고 또 동네이고, 어느 누구도 이런 어린이책을 읽으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원수 님 책도 마찬가지였고, 현덕이니 이주홍이니 이오덕이니 하는 이름조차 들을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교사며 어버이며, 누구 하나 당신이 맡은 아이한테 읽힐 책으로 무엇이 아름답고 훌륭하고 즐거운가를 몸소 깨닫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어린이한테 읽히기 앞서 어른 먼저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알려주거나 읽히지도 못하지만, 이 책들에 담긴 빛줄기를 못 깨닫고 못 나눕니다. 살뜰하게 엮인 그림책이나 만화책 또한 우리 교사나 어버이는 거의 돌아보지 못합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만 제대로 모르는 이 나라 교사와 어버이가 아니라, 사진책과 예술책과 종교책까지 제대로 모릅니다.

 이제 저는 몇 가지 글을 힘껏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를테면 '우리 말'과 '책'과 '헌책방'과 '골목길'과 '자전거' 이야기인데, 이러한 갈래 이야기를 온삶을 바쳐서 엮어 보려는 뭇사람들 땀방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라도 써 보자고 다짐합니다. 우리 말이 무엇인지, 우리 가슴에 와닿는 책이 어떠한지, 헌책방에 무슨 책이 깃들었는지, 골목길이 얼마나 푸근한 삶터인지, 자전거로 우리 터전을 어떻게 가꾸는지를 꾸밈없이 나누려는 데에 제가 글을 쓰는 뜻이 있습니다.

 얼마 앞서 《노랑가방》(리지아 누네스) 느낌글과 《니사》(마저리 쇼스탁) 이야기을 썼습니다. 며칠 앞서는 《무식하면 용감하다》(이두호) 느낌글을 썼고, 곧 《열정세대》(김진아 외)와 《작은 집 이야기》(버지니아 리 버튼)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와 《사명을 다하기까지 죽지 않는다》(채규철)를 쓸 생각입니다. 엊그제 《흐느끼는 낙타》(싼마오) 이야기를 썼고, 김영갑 님 사진 이야기도 하나 쓰려고 생각을 모두고 있습니다.


 ㄴ. 네 해에 걸쳐 읽는 책

 《즐거운 불편》(달팽이)이라는 책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저는 이 책을 2005년에 처음 장만했고, 2009년인 올해까지 네 해에 걸쳐 아주 더디게 읽는 한편, 읽은 대목을 다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 한 번 읽은 뒤 새로 한 번 더 읽을 수 있지만, 이 책만큼은 더디게 읽는 가운데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를 되풀이합니다. 이렇게 읽는 재미가 한결 새삼스럽고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제법 늘었다는데, 자전거 출퇴근과 함께 '삶을 통째로 바꾸기'를 했다는 사람은 아직 얼마 못 봅니다. 그나마 도시에 사는 여느 사람이 할 만한 '삶 바꾸기' 가운데 자전거 출퇴근이 가장 손쉬우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곤 합니다. '1회용품 안 쓰기'와 '가공식품 안 먹기' 따위는 몹시 힘든 일인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저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비디오와 전자레인지며 가전제품을 안 씁니다. 집에서 쓰는 전기제품은 셈틀과 전등과 손전화 세 가지입니다. 아주 많은 분들께서는 어떻게 세탁기를 안 쓰느냐고, 적어도 냉장고는 써야 하지 않느냐고 여쭙니다만, 튼튼한 두 손이 있고 손빨래하는 재미가 대단히 큰데, 한낱 기계한테 빨래하는 즐거움을 빼앗길 수 없을 뿐더러, 제가 아끼는 옷을 제 손이 아닌 기계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가장 싱싱한 먹을거리를 생협 나들이로 장만해 먹으면서 제 몸을 살찌우는 한편 제 혀를 즐겁게 하는 밥을 차려 먹는 즐거움이 몹시 큽니다. 철없을 뿐더러 철지난 데다가 갖은 풀약과 항생제와 비료를 뒤집어쓴 먹을거리 들을 냉장고에 가두어 놓고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와 옆지기한테도 그렇지만, 우리 둘이 키우는 아이한테도 그렇습니다.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날마다 수없이 빨아대는 일은 시간이며 품이며 몹시 많이 드는 일이나, 이렇게 시간이며 품을 들이는 가운데 아이사랑을 온몸으로 배우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주자주 생협 나들이를 하면서 도시살림임에도 우리 손까지 들어오는 먹을거리를 늘 되돌아보게 되고, 허튼 밥을 먹지 않는 일은 우리 몸과 함께 우리 땅과 우리 이웃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됨을 느낍니다.

 이제 네 해 만에 《즐거운 불편》을 덮으며, 이 책은 저와 옆지기와 아이가 모두 읽는 책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먼 뒷날 아이가 자라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는 이런저런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네, 이런저런 일은 우리 집에서 아직 못하고 있었네.' 하고 느끼면서 '그러면 나는 무얼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불편'이란 우리 삶을 고달프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 삶을 한결 즐겁게 살찌우는 밑거름임을 돌아보리라 믿습니다. 기계힘을 빌지 않고 손힘을 쓰면서 꾸리는 삶이란 '도시물질문명'을 거스르는 뒷걸음이 아니라, 도시이고 시골이고를 넘어 사람이 사람됨을 고이 가꾸면서 아름다워지는 길임을 깨달으리라 믿습니다. 엄마 아빠가 왜 책 하나를 여러 해를 두고 차근차근 읽고 새기는가를 곱씹으며, 책이란 자기 삶에 어떻게 스미며 녹아드는가를 헤아려 보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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