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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붙이 같은 땅마저 빼앗길 위기 처한 농사아비들

[포토] 봄날 이래저래 걱정인 농부를 애태우다!

등록|2009.03.12 18:24 수정|2009.03.12 18:24
아직 찬기운이 남아 있지만 어느새 봄이 성큼 찾아왔습니다. 양지바른 논길에는 일찍부터 푸릇푸릇한 싹들이 돋기 시작했고, 얼어붙었던 땅도 봄비에 촉촉히 젖어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 봄비에 젖은 흙이 너무나 보드랍다. ⓒ 이장연

▲ 논도 봄바람에 모두 녹았다. ⓒ 이장연

▲ 봄이 온 들녘 ⓒ 이장연




너무나 보드라운 흙속에 뿌리를 내린 약쑥과 냉이도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위해 밭에 정성껏 뿌려둔 거름은 구수한 고향 냄새를 풍겨댑니다. 그렇게 봄을 맞은 들녘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늑해 보입니다.

▲ 파릇파릇한 쪽파도 봄기운에 기지개를 피웠다. ⓒ 이장연

▲ 논에 쥐불을 놓은 흔적 ⓒ 이장연

▲ 봄철 농사를 위해 거름을 뿌려놓았다. ⓒ 이장연




하지만 저희 동네(인천 서구 공촌동)에 찾아온 봄은 그리 달갑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각종 막개발을 일삼고 있는 인천시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뒤 주경기장 및 선수촌 신축을, 지난 1월 22일 중앙정부로부터(기존 반대입장, 문학경기장 활용을 뒤엎었다) 승인을 받아낸 뒤부터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난데없는 대형개발사업이 인천 서구 연희동 일대에 확정되면서, 삽시간에 퍼진 그 소식에 동네는 너무나 어수선해졌습니다. 한 마을에서 살던 구의원이라는 이는 연초 마을 좌담회에 확정된 아시안게임 선수촌이 들어설 개발제한구역 위성사진을 들고 갑자기 얼굴을 디밀고, 곳곳에는 '인천시민의 염원으로 주경기장 및 선수촌 신축이 결정되었다' '환영한다'는 황당한 선전용 현수막이 나붙었습니다.

▲ 주경기장 및 선수촌 예정지인 서구뿐만 아니라 인천 곳곳에 선전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 이장연




봄 왔지만 논물 대고 볍씨 뿌릴 이는 몇이나??

이 때문에 선수촌 개발예정지에 땅을 가지고 있거나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는 저희 집이나 친척, 마을 사람들은 기다리던 새봄이 와 농삿일을 준비해야 하지만 손을 쉽게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 십년 동안 개발제한구역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땅을 팔 생각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들게 하려고 조상님들이 물려준 땅을 외지인들에게 팔 때는 제 값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돈 되는 일에 훤한 도시 사람들이나 고매한 높은 나리님들이 좋아하는 그 잘난 재산권을 고향에서 땅을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먼 나라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 아시안게임 선수촌 개발예정지는 개발제한구역이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그 흔한 재산권 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 이장연




그런데 그 살붙이 같은 땅마저 이제 헐값에 빼앗기고 정든 마을과 논, 밭이 또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동안 택지개발이다 도로 건설(경명로)이다 해서 강제수용과 철거로 옛집이 파괴되고 마을이 동강나고 논-밭이 파묻히고 냇갈과 숲, 산이 조각났는데 말입니다.

▲ 곧 뽑힐 개발제한구역 표시도 이제 필요없다. ⓒ 이장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유명무실한 그린벨트 내 농경지까지 집어삼켜 그 자리에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단지를 심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그렇듯이 인천시는 지역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선수촌 예정지를 확정하고 이번 달안에 공청회를 하고 5월부터 선수촌 착공을 하겠다고 합니다.

▲ 지역주민과 지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천시가 선수촌 개발예정지로 지정한 논경지 일대, 우리 논과 밭이 있다. ⓒ 이장연



그래서 올 봄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땅을 일구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래저래 걱정거리로 고달픈 농사아비를 고추모가 애태워 더욱 그러합니다. 두더지를 피하려고 못자리 모판에 아버지가 뿌린 고추모가 변덕스런 날씨와 부주의로 잘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봄은 왔지만 그 봄 때문에 소중한 땅과 마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아 맘이 편치 않습니다. 더 이상 손수 농사 지은 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기 위해 순박한 농사아비는 하우스 한 편에 씨고구마를 묻습니다. 작은 싹이 돋기 시작한 씨고구마를 좀 더 키워 윗밭에 옮겨 심으려고 말입니다.

▲ 고추모 농사도 선수촌이 개발되면 올해로 마지막이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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