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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상처에 울다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등록|2009.03.15 12:12 수정|2009.03.15 12:12
금요일 국어  <쓰기>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학습 주제는 '일기의 글감을 찾아봅시다'였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은 금년부터 개정된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삽화로 제시된 그림도 산뜻하고 매우 친절하게 구성된 <쓰기> 교과서가 여간 좋은 게 아니랍니다. 과정중심 글쓰기 정신을 살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아이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집필되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일기, 선생님들도 습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도하는 일기 쓰기 주제라서 좋은 답변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야말로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들만 내놓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서 슬픈 일도 일기 주제로 참 좋다는 예화를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바로 담임인 내 이야기를 말입니다.

"선생님이 2학년 때 일인데  000 일이 있어서 매우 슬펐어요. 나는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요."

그랬더니, 아이들의 입에서 '할아버지의 죽음' '엄마와의 이별' '추억'이라는 낱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재적수의 절반인 6명이 다문화 가정이고 나머지 30%인 4명도 한부모 가정이라 양쪽 부모가 다 있는 집은 두 아이뿐인 가엾은 이 아이들.

그래서인지 발표 시간이면 기죽은 아이들이 유난히 많고 급식 시간에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토하는 아이까지 있습니다. 아침 식사가 소홀하니 학교에서라도 편식하지 않게 제대로 먹이고 싶은 내 희망은 식판 앞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만 같아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말보다는 우는 것으로 말하는 아이들, 제대로 먹지 못해 유치원생보다 더 왜소한 이 아이들 가슴 속에는 슬픔이 넘쳐서 눈망울마다 눈물이 가득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수업 시간의 아픔을 생각하니, 이 글을 올리는 지금 다시금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렇게나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이 자기들과 같은 아픔을 갖고 자란 내 이야기를 듣고서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놓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렇게 상처와 아픔을 내놓고 이야기하며 선생님과 친구들과 나누며 살다 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픔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바르게 서기 위해 숱한 바람과 비와 눈을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산다고 말입니다. 그런 아픔들을 글로 남기는 게 일기이며 그렇게 글로 쓰다보면 상처조차 낫게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치유의 글쓰기'를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서 나도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의 상처난 자국을 맨살로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쓰기>시간의 감동을 우리 아이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언제든지 자신들의 아픈 이야기를 같은 슬픔으로 받아들이며 쓰다듬는 동반자의 마음으로 사는 선생이기를 다짐합니다. 아이들의 상처에 울었지만 상처난 그곳에 '치유의 길'도 함께 있음을 믿으며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아이들의 일상을 열심히 기록하며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2009.3.13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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