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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크면 초콜릿 열 개 사주실 거죠?"

[엄마의 부탁] 여행길에 아이들 만나면 과자 권하지 말아주세요

등록|2009.03.19 11:34 수정|2009.03.19 11:49

▲ 이제는 자기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꽤 많은 나이입니다. 쿠하는 이모가 사준 과자를 친구에게 선물하겠다고 해 놓고 제 입에 먼저 넣습니다. ⓒ 정진영



과자를 자주 먹지 못하는 쿠하(큰아이)는 집밖에서 과자나 케이크를 먹게 될 때 흥분 상태가 되곤 합니다. 한 번은 생크림 케이크 위에 얹은 과일 절임만 싹 먹어버리기도 해서 민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딸기 타르트나 호두가 많이 들어간 피칸 파이를 보면 눈빛이 변하면서 옆에서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아이처럼 먹을 것에만 집중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경춘선을 탈 때는 미리 간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차 안에서 근처에 앉은 승객들의 간식을 기웃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쳐다보면 대개 선심을 쓰게 마련이죠. 하나둘 나눠주는 과자를 먹으면서 쿠하는 공장 과자의 맛을 알아버렸고,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치즈와 사탕 맛을 배웠습니다.   아예 먹이지 않을 수 없게 된 뒤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에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누어 담아 놓고, 외출할 때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이 먹을 때 꺼내주게 됐습니다. 요즘은 다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엔 먹을거리를 챙긴다는 것을 쿠하도 빤히 알고 있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 문화센터에도 가지 못해 친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원하는 간식까지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친구 만나는 날이 얼마나 신나겠어요?   한 번 길들여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공장과자의 위력   오랜만에 만난 허준(4)은 '엄친아'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훌쩍 커버린 친구의 아들 허준은 쿠하와 동갑이지요. 말이 통하는 시기가 되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손 붙잡고 다니며 카페 탐색을 하고 놉니다. 준이 엄마는 직접 만든 과자를 줍니다. 엄마표 과자는 유기농 밀가루에 적은 양의 첨가물로 만들기 때문에 레시피대로 버터나 설탕을 넣은 과자에 비해 맛이 덜하지요.   언젠가 준이 친구들이 집에 왔을 때의 일입니다. 집에서 만든 과자를 간식으로 준비했는데, 준이 혼자 맛있게 먹고 다른 아이들은 맛이 없다며 뱉어버리고 말았다는군요. 아이들이 먹지 않는 과자를 준이 혼자 맛있게 먹었다는 후문입니다.   공장 과자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집에서 만든 과자나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쿠하 삼촌은 제과점에서 파는 빵을 먹이지 말라며 직접 빵을 만들어 주곤 합니다. 언젠가 쿠하가 카레맛 빵을 먹고 싶다고 해서 버터를 넣지 않고 우리밀 밀가루와 카레가루만 넣은 빵을 만들어 준 적이 있습니다.   조카가 먹는 빵에 출처가 불분명한 재료는 넣지 않는 까칠한 삼촌이 만든 빵은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었지만, 쿠하 친구 윤혁(4)이의 입에는 맞지 않았나 봅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기 오븐에서 빵이 익어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하며 좋아했는데, 막상 신나게 한 입 베어 문 표정은 말이 아니었지요. 눈살을 찌푸리며 "이모, 이거 맛없어!"하더니 뱉어버렸습니다. 아이들 입맛이 공장에서 만든 간식에 길들여지면 집에서 만든 음식은 상대적으로 맛이 없기 마련이지요.   아이 입맛 담백하게 만들기, 엄마 몫입니다  

▲ 쿠하 돌잔치 때 장미꽃을 선물한 허준. ⓒ 정진영



쿠하는 입버릇처럼 "열 살 되면 풍선껌, 열 개 사주실 거죠?", "엄마처럼 크면 초콜릿 열 개 사주실 거죠?"하고 묻곤 합니다만, 아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나 공장 과자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나서 아이에게 순하고 담백한 입맛을 길러줘야 합니다.
  건강을 해치는 나쁜 음식을 파는 어른들이 나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기업을 상대로 훈계를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덜 먹고, 덜 팔아주는 수밖에요. 아이들 입맛은 엄마 하기 나름입니다. 먹는 것이 곧 우리 몸입니다. 아무거나 먹으면 각종 성인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런 생활 습관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좋은 식습관을 길러주는 게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입니다.   쿠하가 이 사실을 알면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냉동실 깊숙한 자리에 엄마 간식이 숨어 있습니다. 쿠하가 낮잠을 자거나 어쩌다 일찍 잠드는 날, 슬며시 초코파이와 라면을 먹곤 합니다. 너무 오래 먹어온 음식들이라 주기적으로 입맛 당기는 걸 참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더불어 입맛을 바꾸는 중입니다만, 입에 달라붙은 맛의 기억은 자꾸 방해합니다. 어른은 먹으면서 아이들에게만 먹지 못하게 하면 말에 힘이 서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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