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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인정, 우린 프라이버시가 우세한 사회

[이란 여행기 10] 10시간 야간 버스를 타다

등록|2009.03.16 11:04 수정|2009.03.16 11:04

▲ 터미널에서 졸린 표정의 작은 애. 뒤에는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탈 버스가 보인다. ⓒ 김은주


친절한 이란 버스, 교육 받은 서비스가 아닙니다

이란의 장거리 버스에는 조수도 있고, 기사는 두 명이나 탔습니다. 장거리다 보니까 교대로 운전하기 위해서인 모양입니다. 그들은 셋이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면서 달렸습니다. 남자들이 참 말도 많고 웃음도 많았습니다. 이 나라는 수다가 남자의 전유물인 모양입니다.

테헤란을 벗어나자  차가 거의 없습니다. 도로는 우리 차의 독무대였습니다. 미국 영화에서 봤던 그런 도로의 모습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차 한 대가 달리는 모습. 눈만 돌리면 푸른 산이 눈앞을 가로막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우리가 탄 버스의 조수는 수염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남자인데 그가 하는 일은 휴게소에서 섰다가 차가 다시 출발할 때 안 탄 사람이 있는가, 인원을 점검하는 일을 했고, 승객이 창문을 열어 달라든지 히터를 꺼 달라든지, 하는 승객의 요구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난 여러 번 그에게 히터를 꺼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내 부탁을 들어주었지요.

뜨거운 히터 때문에 사우나를 하는 것처럼 땀을 철철 흘리다가 그가 히터를 끄면 한시름 놓고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히터를 꺼달라고 하고 얼마쯤 지나면 이란 사람 누군가가 또 조수에게 부탁해서 히터를 켜게 된다는 거지요. 이란인은 우리 보다 더운 지방 사람이라 추위에 익숙하지가 않고 난 아무리 겨울이라 하더라도 실내 온도를 40도 가까이로 유지하는 이 정도의 더위에는 익숙하지가 않아 숨 막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히터를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하면서 갔습니다.

이 버스에서는 또 뭘 줄까?

이란 버스는 우리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새 차에 가깝고 쿠션감도 나쁘지 않은데 버스가 제 시간에 출벌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도 원래 출발하기로 한 시간 보다 한참 지나서 출발하더니 또 얼마 못 가서 친구를 만났는지 기사가 차를 세워놓고 친구와 밖에서 정말 한 30분은 수다를 떨었을 것입니다. 승객들은 그가 얼른 타서 출발하기를 기다렸는데 그런 것 아랑곳 않고 잘도 떠들더군요. 신기하게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운행을 기사 맘대로 해도 되는 게 이란 버스의 관행인 모양입니다.

시간준수에 이외에는 우리나라보다 다 좋았습니다.  전체적인 서비스 수준으로 봤을 때 이란의 서비스 의식이 훨씬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객의 요구를 언제나 해결해주는 조수의 존재도 그렇지만 이란 버스에는 누구나 마실 수 있게 차가운 물이 비치돼 있고,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10배는 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간식거리까지 줬습니다. 대부분의 버스는 빵과 음료 세트를 주는데 가끔은 대여섯 가지가 든 선물 상자를 주는 버스도 있어 버스에 오르면, 이 버스는 또 뭘 줄까, 하고 은근히 기대가 됐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도 이들의 서비스 의식을 느낄 수가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교육받은 어떤 정형화된 서비스가 아닌 승객에 대한 배려를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탄 버스는 아르다빌까지 가는 버스인데,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샤레인 온천에 가기 위해서는 아르다빌에서 다시 뭔가를 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밤새 타고 온 버스 기사는 우리 일행의 사정을 알고는 자기들이 택시가 아닌 버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지인 샤레인 온천까지 태워다주는 것입니다. 밤새 운전을 하느라 우리보다 더 피곤할 텐데 약 1시간을 더 운전해줬습니다. 우리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번뿐이 아니었습니다. 장거리 버스를 자주 타고 다녔는데 그 후에도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목적지가 아닌 우리 목적지에 맞춰서 운행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형식 보다는 인정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는 행동이었습니다.

▲ 이란 버스의 조수와 기사가 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김은주


잠이 살짝 들려고 할 때 어린 애가 빽빽 울었습니다. 젊은 아빠가 일어나 아이를 흔들면서 재우려고 해도 아이는 장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 멀미가 났는지 아니면 실내가 너무 더운 것인지 계속 울었습니다.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실내의 고요함은 깨지고 자던 사람들도 다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 받았지만 짜증을 내지 않고 기다려줄 뿐입니다.

더 이상한 건 애기 엄마의 표정입니다 조금도 미안해하는 표정이 없이 오히려 자기들을 힐끔거리고 있는 나와 우리 일행을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웃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여유 있는 표정이었지요.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 있는데 그때 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버리고 싶을 정도로 바늘방석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 불평할 것 같아서 정말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안 보였습니다. 아마도 애가 우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게 남에게 피해주는 건 아니라는 뭐 그런 생각이 깔려있는 모양입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온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인데 그 상황에 대해서 조금의 죄책감도 안 느끼는 것처럼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곧 이 나라는 우리 사회와 달리 프라이버시 보다는 인정이 우세한 사회라는 자각을 하자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갔습니다. 사실 우리도 인정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이들의 버스 풍경과 그다지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기차에서 애는 울고 또 그 옆에서 어떤 사람은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옆 사람한테 하나 건네고, 또 그러면서 끝없는 수다를 늘어놓고, 뭐 이렇게 시끌벅적 했었습니다. 무관심이나 피해 이런 생각 보다는 사람 사이에 정을 나누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란은 인정, 우린 프라이버시가 우세한 사회

▲ 버스에는 쓰레기 버리라고 의자마다 봉지가 매달려 있다. 이것 때문인지 버스는 대체로 깨끗했다. ⓒ 김은주

마침내 울다 지친 아기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다시 버스는 고요와 간간이 들리는 코고는 소리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조수는 애가 잠들자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자신도 피곤한지 빈자리로 가서 쉬었습니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깜박 잠들었는데 버스가 휴게소에 섰을 때 잠에서 깼습니다. 꼬치에 꿴 닭구이나 구운 토마토, 차 등을 파는 휴게소에는 젊은 남자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의 밤은 대체로 조용합니다. 이런 조용한 세계에도 이렇게 환하게 불을 밝히고 대낮처럼 생생한 얼굴로 하나라도 더 팔려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좀 낯설었습니다.

버스는 휴게소를 두 번 정도 더 들렀다가 마침내  먼동이 터올 무렵 눈 쌓인 지역으로 들어섰습니다. 매력 없는 회색 빛 도시 테헤란을 벗어나 하얀 눈밭을 마주치자 마음까지 개운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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