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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 남편, '슈렉'이 되다

"이거 말끔히 고쳤네요. 아, 놀라워라~!"

등록|2009.03.19 11:02 수정|2009.03.19 11:02
"여보, 물이 잠기지가 않아요."

헉!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6년 살던 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손볼 곳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수도꼭지에서 조금씩 새던 물을 겨우겨우 잠갔는데 손볼 여력마저 사라졌습니다. 이젠 꼼짝없이 고쳐야 할 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손재주가 젬병이기 때문이죠. 아내 왈, "당신은 뭐 하나 고쳐 달라면 통 꼼짝을 안 해요. 그래 봐요…." 저도 속 터집니다. 안하려는 게 아니라 어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재미있게 읽었던 기사가 있었습니다. 정진영 님이 쓴 <나무늘보 남편, 문풍지를 붙이다>였습니다. '나무늘보' 남편. 어쩜, 그리 제 경우와 비슷한지 배꼽 잡았지요. 정말 찔리데요. 

저도 이번 경우 꼼짝없이 해야 했습니다. 우선 어디를 교체해야 할지부터 살폈습니다. 수도관 전체를 뜯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걸 고치려면 족히 10만원은 들어야 할 텐데…' 더럭 걱정 되더군요.

"수도꼭지 안 고치면 아무 것도 안할 테니 알아서 해요"

관리사무소에 수도 수리업체를 묻는 게 좋을 성 싶었습니다.

▲ 수도꼭지 땜에 애먹었지요.(위는 교체한 부품) ⓒ 임현철


"여보, 관리사무소에 가서 어느 업첸지 알아보고 오소."
"당신이 알아서 해요. 어쨌든 수도꼭지 안 고치면 아무 것도 안할 테니 그리 아세요."

아내는 게을러터진 늘보 남편에게 오금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가버렸습니다.

관리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수도꼭지가 새는 건 고무 패킹이 닳아서 그런 거라며 고무 패킹 3개를 주더군요. 그런데 수도꼭지 어디를 교체할지 모르겠더군요. 다시 관리실로 가야 했지요.

수도꼭지가 분해가 되는 걸 처음 알았지요. 쾌재를 부르며 분해했지요. 해보니 물이 새는 곳은 다른 곳이더군요. '업자를 불러 싱크대를 뜯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겁이 더럭 나더군요. 또 관리사무실로 갔지요.

"이거 말끔히 고쳤네요. 아, 놀라워라~!"

관리실 아저씨는 "한 번 가보자, 고치려면 재료비로 만 원은 받아야 한다"며 연장과 재료를 챙겨들었습니다. 구세주였지요. 10만 원을 셈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물 트는 꼭지가 고장이네요. 6년이 지나니 다른 집들도 하나 둘 고장이 나데요. 오래 썼지요."
"이거 수명 연한이 몇 년이죠?"
"5년입니다. 조심히 쓰는 사람들은 7년도 쓰는데…."

물 잠그는 꼭지 속이 닳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고쳤습니다. 저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지요. 그런데도 뿌듯하데요. 아내가 돌아오면 거드름 피워도 되겠더라고요. 저녁에 인상 쓰고 들어 온 아내는 곧바로 싱크대로 향하더군요.

"이거 말끔히 고쳤네요. 아, 놀라워라~! 제가 밤에 특별 보너스 줄게요."

▲ 슈렉 아빱니다. ⓒ 임현철


"우리 아빠, 슈렉이다. 슈렉 아빠다!"

아내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보너스가 은근 기대됐지요. 아내가 뚝딱뚝딱 무엇인가 만들더니 누우라고 하대요. 녹차가루, 생협 요구르트, 벌꿀, 생협 밀가루를 섞은 녹차 팩이었습니다.

"수도 고쳤다고 팩 맛사지 해주는 거 아니에요."

그래봤자,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일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 벌어졌지요. 녹차 팩을 바르는데, 아이들 옆에서 "우리 아빠 슈렉이다. 슈렉 아빠다!" 하더라고요.

"저 보고 관리실에 가 물어보라고 해 화가 나대요. 그래서 수도 고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안한다고 했는데, 당신 거기에 겁 먹었어요?"
"아냐. 이번에는 내가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어."

모두 팩을 했지요. 이렇게 슈렉 가족이 되었습니다. 어찌됐건 뿌듯한 하루였지요. 한편으로 걱정입니다. 기계치라 고치는 건 못하는데 계속 해 달랄까봐 말입니다. 하하~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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