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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불교문화유적 찾기(1)

잘 정비된 고달사지

등록|2009.03.19 16:56 수정|2009.03.19 16:56
 지난 14일 경기도 여주군의 불교 문화유적 찾기를 테마로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신륵사로 가기 전 만난 보물 제91호 여주 창리 삼층석탑과 보물 제92호 여주하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이 두 탑은 1958년 현재의 영월루 주변 공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창리 하리 삼층석탑창리 하리 삼층석탑 ⓒ 김환대


창리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이다. 아래 기단의 4면에는 안상이 2개씩 새겨져 있다.

창리 삼층석탑 기단창리 삼층석탑 기단 ⓒ 김환대


하리 삼층석탑은 창리 석탑과는 다소 형태가 차이를 보인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두 기의 석탑은 고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두 탑 모두 갑석에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바위 구멍(성혈)을 파 놓았다.

기단 갑석에 새겨진 성혈기단 갑석에 새겨진 성혈 ⓒ 김환대


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영월루가 있다.

영월루영월루 ⓒ 김환대


원래 이 건물은 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 신헌수 군수가 지금 있는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건물은 주변의 전망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부도와 석탑

고달사지로 가기 전 블루헤런 골프장내 클럽 하우스 옆 도로변에 부도가 1기 보이고, 주변에는 삼층석탑도 있다.

골프장내 석탑골프장내 석탑 ⓒ 김환대


블루헤런 골프장 부도블루헤런 골프장 부도 ⓒ 김환대


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부도는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인명이 몸돌에 새겨져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석조물들이나 어디서 옮겨진 곳으로 보인다. 

잘 정비된 고달사지

여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절터 중 고달사지는 옛 영광은 어디로 사라졌어도 여러차례 주변 발굴을 통해 이제는 잘 정비된 명소이다.

고달사지고달사지 정비 ⓒ 김환대


국보 제4호 고달사지부도, 보물 제6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 보물 제7호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 보물 제8호 고달사지석불좌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는 포근한 느낌의 절터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지만 고달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은 역시 조각이 일품이다.

석불대좌석불대좌 ⓒ 김환대


넓은 절터에서 만나는 유적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곳은 사각형의 대좌이다. 윗면은 놓여 있던 불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큰 대좌만이 남아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아래 받침돌과 윗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잎 표현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 ⓒ 김환대


그 옆에 큰 거북형의 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 및 이수가 있는데 역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그 하나하나의 표현과 규모는 압도 당하기에 충분하다. 그중 도깨비 표현은 앙증 맞아 보이기도 한다. 조금 거리를 두고 또 다른 귀부가 남아 있고, 발굴 이후에 출토된 유적들에 대한 설명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조각이 우수한 부도

절터를 조금 벗어난 위치에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이 있는데 몸돌에 샤겨진 비천상 표현과 기단의 용 표현은 역시 우수한 작품이다.

원종대사 혜진탑원종대사 혜진탑 ⓒ 김환대


무덤들이 보이고 조금 옆에는 석인상 2기가 마주보고 있다. 그 표정이 아주 재미있게 나타나 한참을 보았다.

석상석상 ⓒ 김환대


계단을 올라가면 높은 위치에 고달사지부도가 있다. 몸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문에 새겨진 자물쇠 모양이 보인다.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이며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 조각이 새겨져 있다. 기단에는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고달사지 부도고달사지 부도 ⓒ 김환대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주변은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져 조각되어 있다. 언제 찾아도 당시의 영광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옛 절터...여주에 오면 다들 한번은 고달사지를 찾게 된다고 한다.

고달사지 발굴 전후고달사지 발굴 전후 ⓒ 김환대


발굴 이후 잘 정비된 모습에서 또 한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지금도 말 없이 당시의 모습을 상상 속에 또 오르게 하는 장소이다. 봄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고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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