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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랑 만든 청국장

어머니 감정선 졸졸 따라 다니기

등록|2009.03.21 12:48 수정|2009.03.21 12:48
근 일 주일 쯤 걸렸습니다. 청국장을 만들었습니다. 일 주일 내내 어머니 기분을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매 시간 달라지는 어머니의 기분. 표변하는 어머니의 기분을 따라 졸졸 저도 같이 다녔습니다. 청국장 만들기는 어머니의 본성자리를 찾아가는 순례길에 다름아닙니다.

청국장청국장 ⓒ 전희식



어머니가 슬금슬금 부엌으로 가십니다. 청국장 콩 삶는다고 알려 드리자 "어디 내가 함 봐야지." 하면서.  부엌에서 밥도 지어 먹고 전도 부쳐 먹고 장작불도 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줄곧

"더 때. 멀었어."
"콩이 아즉 야무네."
"국물 좀 퍼 내라."

등등

청국장청국장 ⓒ 전희식


현장 감독처럼 이러저런 지시를 했습니다. 손으로 콩을 뭉개 보기도 하고 이빨로 깨물기도 했습니다.

"얼추 물러가네. 장작 고만 너어."
"잿불로 뽀골뽀골 끄리어 인자."

콩을 물에 불릴 때 미친놈 장에 내다 팔면 쌀을 몇 되는 팔아 오것구만 지랄한다고 계속 욕을 하시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콩을 삶았습니다.

아궁이에 불 쬐고 부엌에서 밥 비벼 먹고 하는 것이 참 좋으셨나 봅니다. 싱걸벙걸 종일 즐거우셨습니다.

방바닥이 지글지글 끓었습니다. 콩 삶느라 장작불을 많이 땠거든요. 그런데 소쿠리 밑에 짚을 놓고 방수 종이를 깔았는데 한사코 어머니가 트집을 잡았습니다.

"청국장은 뜨시야 하는데 밑에다 뭘 그리 까느냐?"고.

결국 다 빼 내고 그냥 놨습니다. 종이 장판이 콩물로 다 젖었습니다. 짚을 돌돌 말아 모 심듯이 꽂았는데 이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청국장 만드는 일에 감히 누가 나서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만만해 하는 청국장 만들기 안내서에는 결코 짚을 질러 넣는 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어머니 보시는 데서는 다 빼 냈습니다. 나중에 안 볼때 다시 넣었지만.

청국장청국장 ⓒ 전희식




청국장 뜨는 냄새가 이틀만에 진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나를 깨워서는 청국장 다 었다고 내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야단을 쳤습니다. 방도 좁은데 누가 먹을거라고 청국장을 다 하냐고. 또 한번은 방에 들어왔더니 덮어 놨던 이불을 죄다 벗겨 놓았습니다.

가스가 빠져야 청국장이 맛있다고도 했고 내다 버릴 거 왜 덮어 두냐고도 했습니다. 온도변화가 심하면 잘 뜨지 않는 것이라 무척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콩을 물에 담글때도 누구도 주고 누구네도 나눠먹고 계속 콩을 더 물에 담그라고 하셨는데 청국장이 다 되었을 때는 너무 많이 했다면서 또 나무랐습니다.

드디어 청국장이 잘 떴습니다. 청국장 찧는 날. 이날은 더 야단스러웠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조금씩 하루고 이틀이고 놀이삼아 옛 얘기도 해 주시면서 천천히 찧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작은 절구를 갖다 드렸는데 어느 세월에 저걸로 찧느냐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세근이 없다고.

뒷산에 있는 디딜방앗간에 가자는 것입니다. 고향마을 시골집 뒷쪽에 디딜방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타협을 시도 했습니다. 호박돌(돌확)에 찧자고.

이 호박돌을 보고 어머니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습니다. 재작년에 전주에서 5만원 주고 사다 놓은 것입니다. 전주 사는 후배가 호박돌을 찾는 내게 골동품 가게를 알려 줘서 트럭을 몰고 가서 샀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마루까지 나오신 어머니. 금세 표변했습니다.

"이 등신같은 놈아. 청국장 소쿠리를 가지고 가서 찧어와야지. 이 무건 돌을 들고 왔나 어이구 미련한 놈."

몸 애낄 줄 모른다느니 저렇게 힘 자랑 하다가 골병 든다느니 돌 같은 놈이라느니. 마당 구석에 덮어 뒀던 돌확을 깨끗이 씻고 마루까지 옮기느라 고생을 했는데 야단치는 것이라기보다 제 공로를 치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청국장청국장 ⓒ 전희식




어머니는 소금도 고춧가루도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 몰래 구운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었습니다. 나는 찧고 어머니는 이겨 넣고.

"야야. 이거 우리 하믄 어떡컨노."
"호박돌요?"
"그래. 엿따 두믄 팥도 갈고 마늘도 찧고 안 조컨나?"
"우리 달라고 해 볼까요?"
"그래 우리한테 팔라고 해 봐. 엉?"

어머니는 옆집에서 내가 지게에 지고 빌려 온 것으로 알고 호박돌을 볼 수록 탐이 나셨나 봅니다. 이 소재는 두고두고 어머니랑 얘기꺼리가 될 것 같아서 호박돌이 우리거라는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이 호박돌을 차지하기 위한 집념을 두고 두고 드러내면서 지금도 저랑 좋은 화제꺼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제는 여기에 마늘을 찧다가 소곤소곤 내게 말했습니다.

"이거 팔라고 그라지 말고 그냥 호박돌 우리 주소 그래."
"네? 왜요?"
"팔라고 하면 비싸게 달라고 할 거 아이가.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그래봐아."

우리 달라고 해 봐서 우물쭈물 하면 그때 돈 쬐끔 주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습고 재밋는지 그 대목에서 온갖 말 놀이를 했습니다. 잃어 버렸다고 하자느니, 호박돌이 깨져서 버렸다느니, 안 쓰는 거 우리 집에 두고 쓸 일 생기면 우리 집에 와서 쓰라고 하자느니, 그러면 우리가 다 찧어 드린다고 하자느니 등등.

까르르 까르르 웃으면서 호박돌을 그야말로 공기놀이 하듯 가지고 놀았습니다.

청국장청국장 ⓒ 전희식



국장을 다 담아내고 어머니는 물 한 그릇 떠 오라더니 호박돌을 깨끗이 헹궈내고는 따로 담아서 국 끓일 때 쓰라고 주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www.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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