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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37) 세속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586] ‘문자화하다’와 ‘글쓰기-글로 옮기기’

등록|2009.03.22 13:22 수정|2009.03.22 13:22
ㄱ. 세속화되다

.. 어쩌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속화되어 있거나 혹은 규격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  《엄정식-당진일기》(하늘재,2001) 306쪽

 "그렇게 할 필요(必要)가 없을 정도(程度)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나 "그렇게 할 수 없도록"으로 다듬습니다. '혹(惑)은'은 군더더기네요. 그냥 덜면 됩니다. '아니면'이나 '또는'으로 손질해도 되고요.

 ┌ 세속화(世俗化) : 세상의 일반적인 풍속을 따름. 또는 거기에 물들어 감
 │   - 문화의 세속화 / 그는 종교의 세속화에 반기를 들었다
 │
 ├ 세속화되어 있거나
 │→ 세상에 젖어 있거나
 │→ 세상에 찌들어 있거나
 │→ 세상에 더러워져 있거나
 └ …

 세상 풍속을 따른다고 꼭 얄궂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 풍속 가운데 안 좋은 대목에 자꾸 마음이 가고 몸이 쏠린다면 얄궂겠지요. 그러니 우리들은 '세속화'로 치닫는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세상에 더러워져"가는 일을 걱정하고, "세상에 찌들어 망가지는" 일을 걱정해야지 싶습니다. 이런저런 흐름을 함께 타면서 "세상에 젖어들" 수 있고 "세상에 물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젖어들거나 물들면서도 "세상 찌든 때를 받아들이지" 않게끔 다스리고, "세상 못난 구석에 길들지" 않도록 다독여야지 싶어요. "세상에 녹아들"거나 "세상에 스며드는" 모든 일이 걱정거리이거나 근심거리이거나 잘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문화의 세속화 → 문화가 세상 흐름을 따름
 └ 종교의 세속화에 → 종교가 세상 흐름을 따르는 일에

 그런데, "문화의 세속화"나 "종교의 세속화" 같은 자리를 보면, '세속'이란 여느 '세상 풍속'이나 '세상 흐름'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돈맛'이라든지 '겉치레'라든지 '잘못됨'을 가리키지 않느냐 싶어요. '상업주의'라든지 '배금주의'를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 돈맛에 빠진 문화
 └ 돈맛에 젖은 종교

 얄딱구리한 '세상 풍속'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어떻게 젖어들거나 찌들거나 물들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돈맛에 젖어들고" 있는지, "권력에 빠져들고" 있는지, "돈과 권력에 찌들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꾸밈없이 나타내 줍니다.

ㄴ. 문자화하다

.. 나는 그들과 만난 직후, 여전히 나의 기억들이 생생할 때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내용을 문자화했다 ..  《안연선-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삼인,2003) 32쪽

 "만난 직후(直後)"는 "만나고 곧바로"나 "만난 뒤 바로"쯤으로 풀어냅니다. '여전(如前)히'는 '처음처럼'이나 '예전과 같이'나 '아직'으로 다듬고, "나의 기억(記憶)들이 생생할 때"는 "내 기억이 생생할 때"나 "내가 생생하게 생각할 때"나 "내가 생생하게 떠올릴 때"로 다듬어 봅니다.

 ┌ 문자화 : x
 ├ 내용을 문자화했다
 │→ 줄거리를 글로 옮겼다
 │→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 …

 '영화화하다'나 '만화화하다'처럼 쓴 '문자화하다'입니다. '영화화하다'는 "영화로 찍다"로 고쳐야 알맞고, '만화화하다'는 "만화로 그리다"로 고쳐야 알맞습니다. '문자화하다'는 "글로 쓰다"나 "글로 옮기다"로 고치면 돼요.

 ┌ 글로 옮기다 / 글로 쓰다 / 글로 적바림하다
 └ 옮기다 / 쓰다 / 적바림하다 / 적다

 얼핏 보기에는 '-化' 한 글자만 붙이면 쉽게 쓸 수 있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는 글이 한결 낫다든지 깔끔하다든지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자-화'나 '영화-화'나 '만화-화'나 '소설-화' 같은 말씀씀이는 얼마나 나을까요. 얼마나 깔끔한가요. 얼마나 괜찮은지요.

 '글쓰기', '영화찍기', '만화그리기', '소설쓰기'처럼 쓰는 말은 그리 알맞아 보이지 않을까요. 썩 어울리지 않나요. 그다지 내키지 않습니까.

 ┌ 아직 내 생각이 생생할 때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옮겨 적었다
 ├ 아직 내 느낌이 생생할 때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옮겨 놓았다
 ├ 아직 내가 생생하게 떠올릴 때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글로 적어 두었다
 └ …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써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모두어 우리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소 우리 말을 즐겨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않는 동안 우리 말은 나아질 길이 없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알뜰살뜰 쓰지 않는다면 우리 말에는 아무런 기운이 담기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을 모두어 우리 말을 생각하고 헤아리고 살펴야 바야흐로 가장 알맞고 아름다운 말줄기를 붙잡습니다. 우리가 몸소 우리 말을 즐겁게 쓸 때 시나브로 우리 삶과 문화 모두 힘차고 튼튼하게 펼쳐집니다.

 애써 일구어야 가을걷이 때 흐뭇하게 웃고, 힘껏 돌보아야 무럭무럭 자라가는 모습에 고마워 웃습니다. 내동댕이친 말이며 내팽개친 글이니, 자꾸자꾸 어지러워지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말 한 마디부터 고이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사랑 하나 고이 나누고, 믿음 하나 고이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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