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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풀풀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위한 곳 맞나요?

유모차는 어디로 가라고? 보행로 하나 안 만들어 놓고 공사하면 어떡해

등록|2009.03.22 16:00 수정|2009.03.22 16:03

▲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 21일 오후 화창한 봄날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찾았다. 겨울 잠에서 깨어난 곰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즐겁게 해주고 있다. ⓒ 강지이


▲ 쌍둥이 손자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 따뜻한 봄햇살을 즐기기에 좋은 주말 오후였다. ⓒ 강지이


바야흐로 나들이의 계절, 봄이 왔다. 특히 지난 주말은 '싱그럽다'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하루였다.

봄이 오면, 부모들은 '따뜻한 봄 날씨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라는 고민부터 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고, 또 푸른 하늘 아래 겨울잠에서 깨어나 우리 밖으로 나선 동물도 볼 수 있는 '대공원'을 봄나들이에 적합한 장소로 우선 꼽는다.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가 있는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말인 21일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섰다. 그동안 집안에만 갇혀 답답하게 지냈던 큰애는 코끼리도 보고, 곰한테 인사도 한다며 아주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모처럼 만의 가족 나들이. 더구나 이날은 낮 기온이 20도를 웃돌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전국적으로 가장 더웠던 봄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오랜만의 나들이에 한껏 기대감에 부푼 딸아이의 빨라진 발걸음과 신이 난 표정 한가득 담긴 얼굴을 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화창한 봄날 찾아간 '어린이대공원'... 첫인상부터 '실망'

▲ 어린이대공원 후문으로 들어가면 한참 정비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깔끔해지는 환경을 기대하면 좋긴 한데, 많은 사람들이 찾은 21일 오후 곳곳이 아이들에게는 위험 요소였다. ⓒ 강지이

우리 가족은 점심때가 조금 지난 오후 아차산역 인근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어린이대공원 후문으로 들어섰다.

오래 전에 찾았을 때는 좀 낙후된 느낌이었는데, 한참 새 단장을 하고 있어 예전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널찍한 진입로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 대공원 시설 정비 공사를 실시하여 보도블록을 새로 깔아 놓았는데, 훤하게 넓어진 모습이 제법 단장된 것 같았다.

그러나 겉보기에 근사한 모습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후문 진입로 공사는 마감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보도블록이 마구 튀어나와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매우 많았는데, 흩어진 보도블록에 넘어지는 아이가 종종 눈에 띄었다. 또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곳에 테두리를 쳐 놓든가 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놓아 볼썽사납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런 상태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가로수가 있는 곳은 모두 엉망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안전시설도 없이 이렇게 무방비로 보도블록이 튀어나와도 되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하나는 정말 좋다... 어린이 '테마' 놀이터도 좋았지만

▲ 정비 공사로 말끔해진 화장실. 수유실과 가족화장실이 있어 어린 아기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에겐 편리한 시설이다. ⓒ 강지이


다행스럽게도 정비 공사 덕분에 화장실은 아주 말끔한 상태다. 수유실과 가족화장실이 같이 있는 버섯 모양의 건물이었는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배려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지어져 화장실을 이용하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놀이터를 이곳저곳에 많이 만들어 놓아 아이들이 실컷 뛰놀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차 모양의 놀이터, 배 모양의 놀이터, 오즈의 마법사 놀이터 등 테마별로 꾸며진 여러 놀이터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놀이터에 몰려 사고가 나는 일이 없도록 넓고 크게 구성한 것이 장점이다. 이날도 많은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았지만 서로 부딪히는 일 없이 잘 놀 수 있었다. 약 8종류의 테마별 놀이터만 다 돌아다녀도 한나절이 갈 것 같았다.

▲ 테마놀이터. 놀이터 주변은 비록 진입로 등에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위험 요소가 있었지만, 놀이터 시설은 잘 마련돼 있었다. ⓒ 강지이


굴착기 보러 온 거 아닌데... 윙윙~ 먼지 풀풀

그러나 이런 좋은 기분도 잠시뿐. 놀이동산에서 대관람차를 타고 놀이터에서 실컷 논 후, 동물원으로 이동한 우리 가족은 이후 내내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문부터 동물원이 이르는 진입 구간에서 진입로 공사, 공연장 공사 등을 하는데 그 공사 현장이 매우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공사하느라 커다란 굴착기가 길을 막고 서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과 유모차, 어른들이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했을 때다. 돌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만들어 주던가, 미리 통제를 하든가 해야 하는데 그런 대책 없이 그냥 공사를 진행했다. 잠시 서서 지켜봤는데, 굴착기가 작동하는 동안 사람들이 바로 옆을 무방비로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잠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이들에겐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위험하고 불편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넓어진 후문 진입로와 마찬가지로 다른 보행로도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앞으로 더 깔끔하게 이용하도록 공사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간이 보행로나 대체 도로를 만들어 놓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공사하는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주말이라 사람 머리만 잔뜩 보일 정도로 많은 인파가 이날 어린이대공원에 몰렸는데, 모두들 불평할 정도로 도로는 엉망이었다. 공사 중이라 자갈과 흙이 뒤범벅되어 울퉁불퉁하고 먼지가 엄청나게 날렸다. 무엇보다 '어린이대공원'에 푸른 자연 속에 꽃과 동물들을 보러 온 것인데, 공사하는 현장과 코끼리보다 굴착기가 눈에 먼저 띄었다.

어린이대공원은 공사 중

ⓒ 강지이


유모차는 버리고 가라는 것인가... "오늘 먼지 완전 뒤집어쓰네"

특히 아이를 동반한 나들이객들은 대부분 유모차를 끌고 있었는데, 덜컹거리는 유모차에 아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우리 가족도 둘째가 7개월밖에 안 되어 유모차에 앉히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 길을 수많은 인파를 따라 걷고 있자니, '이게 나들이야? 애들 고생시키러 온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불평은 비단 우리 가족만이 아니다. 함께 길을 걷던 다른 아이 엄마는 "먼지 너무 날려서 짜증 난다, 얼른 지나가자"라고 그러면서 아이들을 밀며 가고 있었다. 나도 위험천만한 공사 길을 걷는 큰애가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에, 작은 애 유모차 신경 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공사장 먼지로 시설물이나 조형물에 소복히 먼지가 쌓여 있다. 아이들은 그래도 좋아하면서 만진다. ⓒ 강지이


이때 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황사도 없고, 엊그제 비가 와서 공기가 좋은 거 같아 유모차 커버도 안 씌우고 왔는데… 오늘 우리 아들 완전 먼지 뒤집어쓰네."

다른 엄마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아이들 좋아하라고 나들이 왔다가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찜찜하다.

▲ 텅 빈 야외공연장 홍보관. 주변이 온통 공사 중인데, 이곳에 들어가서 홍보물을 보고 싶겠는가. 더군다나 오랜만에 찾아온 맑고 화창한 날씨 아래.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시민들 편의를 위하는 시설을 만든다지만, 최소한의 편의 안전 시설(보행로, 유모차길, 공사장 차단물)을 마련해 놓는 것이 우선 아닌가? ⓒ 강지이


서울시는 어린이를 위한 대공원 공사를 하면서 안전한 보행로 확보도 없이 이렇게 마구잡이 공사를 해도 되는 걸까? '가족 화장실'이며 '놀이터' 등 아이들을 배려하는 새 시설은 좋았다. 하지만, 이번 시설물 공사는 아이들을 위하는 건데, 우선적으로 '안전한 보행'로 먼저 임시로 만들어 놓고 공사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봄나들이 장소로 인기 최고인 곳 중의 하나인 어린이대공원. 시민에게 더욱 나은 공원 환경을 제공한다는 취지하에 화려한 공연장이나 규모가 큰 진입로 건설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대공원에 임시 통행로도 없이 보행로 공사를 하는 것은 자칫하면 어린이와 가족에게 가장 위험한 놀이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22일)도 아침에 비가 내린 후 하늘이 맑게 개었다. 화창하게 봄 햇살이 비치면서 휴일 오후를 보내기 위해서 유모차를 밀고,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들이 '어린이대공원'을 찾을 것이다. 또 앞으로 주말이면 봄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안전불감증', 쉽게 생각했다가 자칫 봄 나들이의 행복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어린이대공원 관리자들은 '안전'에 좀 더 신경써주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 모처럼 맑은 하늘과 따뜻한 날씨에 어린이대공원에 사람들이 동물 구경을 온 것인지, 아니면 동물들이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였다. ⓒ 강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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