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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워낭소리

달구지에 할머니 태운 할아버지의 순애보와 문경

등록|2009.03.23 09:06 수정|2009.03.23 14:01

집을 나서고 있다.- ⓒ 이만유


조선 단종 2년(1454)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낙동강에는 3대 발원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초점(草岾)이다. 지금의 문경새재를 말하고 조령약수터가 시원지로 거기서 흐른 물줄기가 영남대로 950리 옛길 중에 가장 험조처(險阻處)인 관갑천(串岬遷) 일명 토천(兎遷)이란 곳을 지나 다시 견탄(犬灘)을 지나면 대한민국 최고의 수석산지인 영강에는 햇빛을 받은 오석(검은 돌)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마을 골목길을 나오는 모습- ⓒ 이만유


호계면 막곡리에서 농사일을 하기위해 창리들을 오고가자면 영강에 놓여있는 좁은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그 다리 위에 노을이 물들고 영강의 수면이 붉게 물드는 저녁때가 되면 앞에는 할아버지가 소를 끌고 뒤에는 달구지위에 할머니를 태우고 들에서 돌아오는 노부부의 정겨운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들길을 지나는 모습- ⓒ 이만유


주인공은 경북 문경시 호계면 막곡1리에 살고 계신 정우섭(77세) 할아버지와 최순희(76세)할머니다. 6남매(4남 2녀)를 두었지만 지금은 서울 대구 구미 등에 모두 다 나가 살고 두 분만 고향에 계시는데 할머니께서 오래전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게다가 퇴행성관절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잘 걷지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에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나 소달구지에 할머니를 태우고 다니신다.

굴다리를 지나는 모습 - ⓒ 이만유


지금 키우고 있는 암소는 먹인지 3년 정도 되었고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소에 붙어 있지만 이 소를 들여오기 전에는 송아지를 10마리 낳고 15여년을 함께 살던 정든 소가 있었는데 늙고 병들어 죽고 새로 사 들인 것이다. 요즈음 모두 소에게 배합사료를 구입해 먹이를 주지만 할아버지는 힘든 농사일을 해 주고 매일 교통수단이 되어주는 친구 같고 한 식구 같은 소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매번 쇠죽을 끓여 먹이고 있다.

영강다리를 건네는 모습 1.- ⓒ 이만유


두 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들에 가고 올 때는 물론 농협연쇄점에 물건을 사로 갈 때도 소달구지를 타고 가며 이웃동리 나들이 가실 때도 항시 타고 다니시니 이웃이나 지나는 사람들이 처다 보며 "자가용이 좋습니다"하면 할아버지는 "차비도 안주고 타네"하며 농을 하지만 함께 하는 것이 행복에 겨운지 두 분 다 싱글벙글하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집와서 6남매 낳아 잘 키우고 농사일 하느라 고생고생 하다가 병을 얻었으니 내가 죽을 때까지 태워 주어야지 하시면서 너털웃음을 웃으신다.

영강다리를 건네는 모습 2.- ⓒ 이만유


문경은 산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여기 노부부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삶을 산다. 중국에 선경으로 유명한 기산영수(箕山嶺水)가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요나라 시절 관직과 명예를 마다하고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묻혀 무위자연을 즐긴 "소부"와 "허유"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영강다리를 건네는 모습 3.- ⓒ 이만유


두 분은 학식과 덕망이 높아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제왕이 되고도 남을 인물이었는데 하루는 요임금이 허유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귀가 더러워졌다고 영수로 달려가 귀를 씻었는데 마침 소에게 물을 먹이려 나오든 소부는 그 소리를 듣고 그런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가 없다고 소를 상류로 몰고 가버렸다고 하는 고사가 있다.

영강다리를 건네는 모습 4.- ⓒ 이만유


그런데 이병연이 지은 조선환여승람에 보면 문경이 바로 조선의 기산영수의 고장이라고 하며 기산은 조령산 아래 작은 산이며 영수는 조령천이 흘러 영강으로 이어지는 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기산영수 못지않게 문경의 산천이 아름답고 현자가 은거할 만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강다리를 건네는 모습 5.- ⓒ 이만유


- 워낭소리 -

서산 노을 비춰
강물 붉게 물들면
영강 다리위에
댕그랑댕그랑
워낭소리 들린다.

할부지가 끄는
소달구지 위에는
다리 아픈 할매가
그윽한 눈으로
할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어둠이 내린 강변
귀가 길에
댕그랑 댕그랑
워낭소리 들린다.

할부지 눈에는
소달구지 위에
아름답고 예쁜
60년 전에 보았던 새색시가
수줍게 앉아 있다.

두 분이 쇠마구간 앞에 서 계신다.-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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