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맞은 아이비비탄 맞은 아들 ⓒ 정철상
주말이었습니다. 아이가 밖에서 한참을 놀다가 들어왔는데요. 얼굴이 어딘가 긁힌 것 같았습니다. 여자 친구들에게 꼬집힌 것인가 물어봤죠. 그런데 비비탄에 맞았다고 하더군요.
속상했습니다. 눈 주위였거든요. 선명하게 비비탄 자국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답니다. 헬리콥터 같은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곳 안에서 비행기 조종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형님이 바로 앞에서 비비탄을 쏘았다고 합니다.
아이들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래도 조금 심하다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일을 하려고 하는데 집중이 안 되더군요. 총을 쏜 아이에게 주의라도 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총을 쏜 아이를 만나도 모르겠다고 발뺌하면 어떻할까 싶어 사진을 두 장 찍어뒀습니다. 사진의 화이트 밸런스가 맞지 않아 선명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오른쪽 눈 바로 밑에 비비탄 자욱이 붉게 남아 있습니다.)
준영이에게 총 맞은 후 그 형님이 미안하다고 말했느냐고 물었죠. 그냥 그런 말도 없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더 화가 나더군요. 초등학교 2학년인데, 4명이 총 가지고 놀았다고 하는데, 그 중에 1명이 쐈다고 합니다.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죠.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까만 점퍼를 입고 있어서 보면 알겠다고 하더군요.
언제라도 비슷한 아이가 보이면 아빠에게 말하라고 그랬죠. 준영이가 아파트 창가 쪽을 보고 있다가 '그 형님'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아이 손잡고 밖으로 나갔죠. 와이프는 혹시나 그 아이 꾸지람했다가 오히려 준영이가 해코지 당할까봐 혼내지 말라고 하더군요. 걱정 말라고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놀이터를 돌아보니 까만 색 옷 입은 아이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계속 돌아봐도 보이질 않더군요. 준영이도 안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같은 또래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들 3명이 눈에 띄더군요. 아이들끼리 이쪽을 보며 웅성웅성하더라고요. 아까 준영이가 4명이라고 했으니깐. 이 아이들 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물어봤죠. '너희들 비비탄 쏜 것 아니니?'라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우리는 안 쏘았어요. 다른 친구가 쏘았어요"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우리 동에 사는 아이더군요. 비비탄을 쏜 아이가 어디에 사는지 아느냐고 하니, 안다고 하더군요. 너희들이 앞장서 길을 안내하라고 했죠.
그 아이가 사는 집에 갔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 어머니가 나오더군요. 여자 분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참 민망했지만 그래도 준영이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아이가 얘 얼굴 정면에 대고 총을 쐈어요. 정말이지 눈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제가 교육을 할 수는 없으니, 부디 주의를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아이 흉터 나겠네요. 병원이라도 가보셔야겠어요."
"괜찮습니다. 아이는 우리가 돌볼 테니 부디 아이 교육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정말 와이프 말대로 해코지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총 쏜 아이에게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엄마에게만 이야기하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와이프도 속상해서 비비탄 총 같은 것을 왜 판매하느냐고 속상해하더군요. 사실 저도 어릴 때 친구들의 장난으로 눈을 크게 다쳐 12방울이나 꿰맸거든요. 거의 시력까지 잃은 뻔 했었죠. 이래저래 위험한 상술에다 말썽쟁이 이웃집 아이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던 하루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 <정철상의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과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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