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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마을에서 한국에서 일한 사람을 만나다니...

[이란 여행기 12] 주한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홍보사절

등록|2009.03.23 11:30 수정|2009.03.23 11:30

▲ 장장 40분이나 타고 올라가는, 진짜 긴 케이블카인 이란 토찰산 케이블카가 우리나라 기업 LG가 만든 것이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갖게 했다. 이란에서 우리나라는 좋은 물건을 만드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 김은주


샤레인에서 가장 시설 좋은 온천탕은 오늘 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수영복 가게도 함께 운영하는, 이 동네서는 꽤 번듯한 건물인데 아슈라 때문인지 금요일이 원인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은 문을 안 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맞은편에 있는 원조 온천탕으로 갔습니다. 이 온천탕은 시설은 많이 낡았지만 물은 좋다고 해서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시설 좋은 집보다 4배는 싸므로 불만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목욕탕 앞에서 비누, 샴푸 등의 목욕 용품과 함께 뜨거운 차와 카스테라 등 간식거리를 파는 손수레가 보이기에 옳구나, 하고 물건을 샀습니다. 빨래 비누를 한 장 사고, 애들이 먹고 싶어 하는 카스테라를 두 봉지 샀습니다. 그때 어설픈 한국말이 들렸습니다.

30대 남자인데 한국에서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3년 정도 한국에서 일하고 샤레인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안산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춘천에도 가봤다고 했고 이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서있던 이 남자의 친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을 하는 친구를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봤습니다. 한참은 재미있게 들었지만 슬슬 지겨워졌는지 친구의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이란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에서 일했다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산에 가서 물고기 잡으려는 것처럼 절대로 관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최초의 한국인일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낯선 이란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한국을 다녀온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나쁜 기억은 없는지 한국인을 반갑게 맞다

그런데 솔직히 난 그가 한국에서 일했다고 했을 때 좀 걱정 됐습니다. 한국인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그런데 다행히 그는 한국에서 나쁜 기억은 없었는지 우릴 반갑게 맞았습니다.

내가 걱정했던 이유는, 간혹 뉴스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기업주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파키스탄에서 온 누구입니다' 하며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라는 개그가 유행 했는데, 이런 게 개그 소재가 될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주들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가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 이란 남자도 한국에서 몹쓸 기업주를 만났고, 그래서 한국이라면 치를 떨지나 않을까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란을 잘 모르는 것처럼 이란인들도 한국을 그저 자동차 잘 만들고 비싼 전자 제품 만드는 부자 나라 정도로 알 뿐 거의 서로에 대해서 모르고, 또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더더욱 한국을 모를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하다 온 이 남자의 입을 통해서 알려지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샤레인의 한국 홍보사절단인 것입니다.

그가 한국에서 좋은 것을 봤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그는 한국에 대해서 좋게 말할 것이고, 그럼 자연 샤레인 사람들은 한국을 괜찮은 나라로 인식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개나 돼지 취급받으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또 교묘하게 임금을 떼먹히고, 돈 없다고 차별받았다면 샤레인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몰인정하고 아주 비인간적이고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돈만 밝히는 그런 나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한국에서 보고들은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돈이 없어 9시간이나 비행기로 날아갔지만 그는 지금 샤레인의 한국 홍보담당자입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또한 중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정말 온당한 대우를 해주고 한국의 인정을 보여줘 그들이 돌아간 후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란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가 고향사람처럼 반가웠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봤을 때 은근히 그들을 무시했었습니다. 버스에서 일별하거나 관광지서 모처럼 맞은 휴일을 보내러 친구들과 어울려 나온 그들은 한결같이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좀 낮춰서 봤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물질로 사람을 가르는 그런 잣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서 우리나라에 돈 벌러 온 가난한 사람이라는 폄하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고, 난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의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우월의식의 바탕은 돈이 더 많다는 생각이겠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가난한 이방인으로만 보이던  외국인 노동자가 이란에서 만났을 때는 고향 사람처럼 반가웠습니다. 그가 우릴 반갑게 맞고 어설픈 한국어지만 한국어를 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유대감까지 느꼈습니다. 아마도 여긴 이란이고 처지가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른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면 외국인 노동자를 따뜻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버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것이고 또 관광지서 만나면 커피라도 마시며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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