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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짓자고 사람이 사는 집을 없애나요?"

LA 대형 한인교회 주차장 건설로 퇴거 위기 놓인 마사코씨

등록|2009.03.25 09:32 수정|2009.03.25 09:32

▲ 앞마당에 핀 장미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마사코씨. ⓒ 박지호


미국 LA에 있는 대형 한인교회인 동양선교교회의 주차장 확장으로 35년 동안 살아왔던 주거지에서 내몰리게 된 재미 일본인 마사코 모치주키(73)씨. 그는 자신을 '나무'에 비유했다. 35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이 교회는 주차장을 확장하기 위해 예배당 뒤편에 있는 4개의 아파트 건물(총 40가정)을 사들였다. 그리고 작년부터 거주자들에게 퇴거를 종용해 현재까지 38가정이 아파트를 떠난 상태다. 최근까지 장애인과 노인 등 5가정이 남아 있었으나 교회 임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3가정은 떠났고 1가정은 거주지를 물색하고 있다. 마사코씨만 마지막까지 남아 퇴거를 거부하고 있다.

마사코씨가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

마사코씨는 그 교회가 들어서기 전인 1974년부터 이곳에 살았다. 결혼하면서 마련했던 신혼 보금자리다. 자녀가 없는 마사코씨는 10여 년 전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뇌출혈로 두 번이나 쓰러져 몸마저 성치 않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지금껏 돌보고 있다. 세금법을 공부해 매년 노인들의 세금 환급을 돕고 있고, 노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나누어주는 봉사활동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이사 갈 곳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마사코씨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마사코씨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집을 떠나는 게 두렵고 힘들다고 했다.

"이 집은 제 신혼의 단꿈이 묻어 있는 곳이고 제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가 이사 오면서 마당에 심은 장미 나무 5그루는 마사코씨만큼이나 이 집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매년 장미꽃이 필 무렵인 이맘때면 마사코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부터 연다. 마당에 핀 장미꽃을 보기 위해서다.

"이 장미들은 제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좀 있으면 또 꽃을 피울 겁니다. 그런데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이 장미 나무를 시멘트로 덮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냥 살게 해주는 게 저를 돕는 겁니다"

▲ 마사코씨 집 옆에 있는 아파트에는 이미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 박지호


이젠 모두 떠나고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은 마사코씨는 장미를 자식 삼아, 버려진 고양이와 참새들을 친구 삼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다.

"늘 우리 집에 들르는 식구들이 또 있지요. 버려진 고양이들과 참새들입니다. 날마다 마당으로 날아드는 참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제 일과랍니다. 가끔 내가 좀 늦게 일어나면 참새들이 부리로 창문을 두드려댑니다. 왜 밥을 안 주냐고요.(웃음)"

더 많은 보상을 바라고 버티는 거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 마사코씨는 거액의 보상도, 더 좋은 주거 지역도 원치 않는다며 자신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가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마사코씨는 답답한 마음에 3개월 전부터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마사코씨가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자 한국인 친구가 혹시 교회에서 도와줄지 모른다며 교회로 이끌었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맞아줍니다. 장로님들이나 목사님들도 저에게 '도와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합니다. 그러나 나를 도와주는 건 그냥 계속 살게 해주는 겁니다."

"교회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를 더 지어주진 못할망정..."

▲ LA 지역 저소득층 세입자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가들이 교회를 찾아가 항의하고 있는 모습. ⓒ 박지호


이번 철거는 마사코씨 개인의 문제일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사코씨가 살고 있는 집은 '렌트 컨트롤'(Rent Control) 아파트로 분류된다. LA는 저소득층 및 노약자들을 위해 주거지를 보존하고 집주인의 횡포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고자 1978년 이전에 건축한 집 가운데 일부를 렌트 컨트롤 아파트로 묶어두었다.

렌트 컨트롤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몇 가지 혜택을 받게 되는데, 집주인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으며, 마음대로 렌트비를 인상할 수 없다. 만약 렌트비를 올리더라도 1년에 한 차례, 물가 상승 지수에 맞추어 3%에서 8%까지만 인상하도록 법으로 제한해놓았다.

때문에 마사코씨가 살던 아파트에도 저소득층 주민들이 많았다. 한인타운노동연대는 "주민들이 월수입 600~1600불인 저소득층이며 매월 500~600불 정도의 렌트비를 지불해왔다"고 밝혔다. 마사코씨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과 은퇴하기 전에 모아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현 렌트비 시세를 고려할 때 직업도 없는 마사코씨가 교회에서 지급하는 이사 비용 보조금만으로는 2년을 채 버티기가 어렵다.

마사코씨를 곁에서 돕고 있는 한인타운노동연대의 남장우 상임 활동가는 마사코씨의 집은 법과 연결되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8년 이전으로 돌아가 집을 세우지 않는 한 이런 렌트 컨트롤 아파트는 더 이상 지을 수가 없는 거죠.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 건물들을 더 짓지는 못할망정, 주차장을 짓겠다고 건물을 사서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철거하겠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이에 이 교회의 행정담당 목사는 "주일마다 많은 분들이 예배드리러 왔다가 주차장이 없어서 돌아가는 실정이다. LA시 법에 따라서 철거 절차를 밟아나갔다. 하지만 해당 건물들이 렌트 컨트롤 주택이라는 건 몰랐다. 현재 철거된 건 계속 진행하되 나머지는 충분히 고려하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예수님이라면? "퇴거당하는 분들 틈에 있겠죠"

▲ 마사코씨를 돕는 한인타운노동연대 회원들이 철거 예정지에 "우리 동네는 당신들의 주차장이 아닙니다"라는 팻말을 꽂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박지호


한인타운노동연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7년 사이에 LA 지역에 있는 이런 렌트 컨트롤 주택 1만3000개가 사라졌다. 부동산 개발 과열 경쟁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지만, 막상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비싼 렌트비 때문에 더 가난한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것 같냐는 물음에 마사코씨는 웃으면서 "그분이라면 처음부터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없애진 않겠죠"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인타운노동연대 박영준 소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 교회에 없을 겁니다. 아마 퇴거당하는 분들 가운데 계실 겁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미주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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