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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판했다고 집까지 압수수색 하나 PD소환 '나쁜 선례' 절대 만들지 않을 것"

[인터뷰] 조능희 전 MBC < PD수첩 > 책임PD

등록|2009.03.26 16:28 수정|2009.04.08 11:26

▲ 검찰이 25일 밤 MBC < PD수첩 >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를 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26일 오전 MBC노조원들이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YTN의 '전운'이 MBC에까지 번지고 있다. 검찰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강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5일 밤 11시께 이춘근 PD를 체포한 데 이어 나머지 세 명의 PD와 두 명의 작가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섰다. 26일 오전에는 제작진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밤에는 김보슬 PD의 약혼자 집에도 검찰 수사관 5~6명이 들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능희 <PD수첩> 광우병 보도 CP는 송일준·김보슬 PD와 함께 오전 11시 열린 조합원 총회에 참석해 "어떤 분이 '한국 민주주의는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노를 젓는 것을 멈추면 구석에 처박히고 마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면서 "<PD수첩> 제작진은 언론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조능희 PD(해당 프로그램 책임PD)와 인터뷰하고 있는 시각, 검찰은 조 PD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있었다. 조 PD는 방금 전 부인과 통화했다고 말했다.

▲ MBC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 ⓒ 권우성


"통화하고 있는 중에 옆에 있던 수사관이 나를 바꿔달라고 했단다. 받아보니 '조PD님 당당하게 나와서 조사받으시죠'라고 했다. 난 웃으면서 '당당하게 소환에 불응하겠다'고 했다. 다만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인만큼 '험하게' 뒤지거나 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조 PD는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젯밤 이춘근 PD의 체포 소식도 < MBC 스페셜> 편집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들었다고 했다. 이 PD 역시 프로그램 편집을 위해 며칠 밤을 샌 뒤 잠깐 밖에 나섰다 '변'을 당했단다.

MBC 입사 22년. '우리 시대 정직한 목격자'라는 타이틀을 단 MBC의 대표 시사고발프로그램인 < PD 수첩> 제작 책임을 맡았다가 쫓기는 몸이 되고, 자택까지 압수수색 당했다. 앞으로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회사에서의 숙식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 PD는 "제작진은 절대로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MBC를 위한 것도, <PD수첩>을 위한 것도 아니며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PD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소환되고, 수사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면서 "사태 장기화를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원한 게 아니라 저들이 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 어젯밤 이춘근 PD가 체포될 때 조능희 CP 등 다른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신병확보 시도도 있었을텐데 어디 있었나?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웃음) 이춘근 PD도 지금 맡고 있는 프로그램 <W> 제작 때문에 며칠 밤을 샌 뒤 잠깐 나갔다가 체포된 것이다. 나도 <MBC 스페셜> 편집을 하느라 회사에서 먹고 자고 씻고 했다. 이런 생활은 뭐... 이골이 나서... 방송이 코앞(오는 일요일)이어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 검찰의 강제구인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이 PD 잡혔다는 얘기 들었을 때 '과연 사실일까' 생각이 들었다. 최근 상황에 대해 '금방 치고 들어올 수도 있다', '하도 후안무치하고 막가는 정권이니까 전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심하라'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상식 있는 검찰이라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25일까지 출석하라고 해놓고, 바로 그날 잡으러 오리라곤... 저녁 7시엔가 8시엔가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긴 했다. '검찰이 MBC 들어간다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이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는데 그때 아마 체포영장 얘기가 있었는가 보다. 판단미스였다."

- 지금 이 시각 압수수색이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내 아내도 이런 일은 당연히 처음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가정까지 압수수색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난 괜찮은데 가족들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춘근 PD는 아직 신혼인데... 남편 체포 과정을 다 지켜보고, 또 오늘 오전에 압수수색당하는 걸 혼자 지켜봤을 그의 부인 충격이 클 것이다."

- 조합원 총회에서 김보슬 PD가 울먹이며 "그래도 후회는 없다. 두려움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생각인가?
"당연하다. (자리를 고쳐앉으며) 자, 이미 <PD수첩> 보도가 다 증명되지 않았나. 왜 다우너소를 도축금지하겠는가? 위험성 있어서다. 그럼 왜 30개월 미만 소로 추가협상 했나? 캐나다와 쇠고기 협상 잘 안 되고 있다. OIE(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라면 캐나다 소 수입해야 한다. 곧 <PD수첩> 광우병 보도 1년이 다가오는데 국민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 정치검찰이고 정치수사라는 것이다."


- <PD수첩>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에 다시 배당된 뒤 수사가 재개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사상 초유 아닐까? 전 세계 통틀어 유사사례가 없을 것이다. 문명화된 21세기 사회에서 믿기 힘든 일이다. 지금 이 사태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역사적으로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이런 류의 '압박'을 받은 사례가 있지 않나?
"정정보도, 민사소송은 물론 별의 별 일 다 겪으면서 시사 프로그램 만들어왔다. 검사로부터, 기업체 사장으로부터 소송도 당해봤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 받은 적도 있다. 남부지검 가서 당당히 수사받았다. 나뿐 아니라 모든 PD들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이건 사안이 명백히 다르다."

- 검찰에서는 "당당하게 나와서 조사받고 원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반 사안이라면 당당하게 나갈 수 있다. 그런데 <PD수첩> 제작진들이 소환에 응한다? 나쁜 선례가 된다. 정부 정책 비판한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수사의뢰하고, 검찰은 수사 시작하고 소환에 응하고... 언론자유 심하게 위축된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수갑 찬 이춘근 PD 모습검찰이 25일 밤 마포대교 부근에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이날 아침 수갑을 찬 이춘근PD가 검찰조사를 위해 서초경찰서에서 나오는 장면을 공개했다. (TV모니터 촬영) ⓒ 권우성


이춘근 PD, "언론자유 보장하라!"수갑을 찬 이춘근PD가 "언론자유 보장하라!"를 외치며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TV 모니터 촬영) ⓒ 권우성




언론노조 MBC 본부 긴급 조합원 총회가 열리기 10여 분 전. 검찰 체포대상인 <PD 수첩> 김보슬 PD는 회사로 찾아온 부모님을 1층 로비에서 배웅하고 있었다. 멀리까지 나가진 못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에게 "니가 먼저 연락해"라고 당부했고 그들은 MBC 본사 옆문에서 이별했다. 김 PD는 "옷가지 등을 갖고 오셨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26일 오전 11시 MBC 본사 1층 로비에 모인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은 영상으로만 이춘근 PD를 만날 수 있었다. 26일 아침 상황이 방영됐다. 서초 경찰서 유치장에서 25일 밤을 보낸 이 PD가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MBC 본부가 찍은 것이다.

조합원들은 "이춘근을 석방하라"고 줄곧 외쳤으며 이 PD는 호송차에 오르기 전까지 "언론자유 보장하라"고 소리쳤다. 이 PD와 함께 <PD수첩> 팀에서 일했던 오동운 PD가 안경을 벗어 눈물을 닦았고 많은 조합원들 눈에 이슬이 맺혔다. 시사교양국 PD들은 이 PD 체포에 반발, 이미 '제작거부'를 결의한 상태이며 <PD수첩> 제작진은 관련 보도를 준비중이다.

사회자는 조합원 총회 중간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지금 이 시각 <PD수첩> 제작진 6명의 자택을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고개가 떨어지고 한숨 소리가 나왔다.

PD의 '눈물'김보슬 PD가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이춘근PD가 경찰에 끌려나오는 장면을 이야기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이근행 위원장과 황성철 수석 부위원장의 결의발언에 이어 송일준·조능희·김보슬 PD가 나란히 조합원들 앞에 섰다. 송 PD는 "<PD수첩>은 지난 19년간 숱한 압력을 겪으면서 한국 저널리즘의 자유를 지키는데 나름의 기여를 해왔다"면서 "어제 오늘 상황을 보면서 마치 '백주 대낮 명동 한복판에서 퍽치기 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송 PD는 "살면서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구나 어처구니 없고 허탈하지만 국민만을 바라보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보슬 PD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며 "두렵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PD수첩> 제작진은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할 수 없으며 원본 등 자료 제출 요구에도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언론 자유 말살과 민주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란 이유였다.

한편 언론노조 MBC 조합원들은 26일 저녁 7시 YTN앞에서 열리는 '언론인 체포 구속 규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다.

▲ 김보슬PD가 여의도 MBC본사 로비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같은 부 농업통상정책관의 의뢰와 고소로 수사가 시작된 것 아닌가?
"난 청와대의 대리소송이라고 본다. 지난해 5월부터 청와대쪽으로부터 소송 얘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나. 처음엔 청와대에서 주도적으로 소송 걸 줄 알았다. 저들은 그저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 YTN 조합원 네 명도 지난 22일 이른 아침 경찰에 체포됐다. 연관이 있다고 보는가?
"어제 인터넷으로 노종면 위원장 편지를 봤다. 상황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보고 있는 것 같더라. 이 시대를 지켜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잘 나와 있다. '난 명예를 이미 얻었다. 내 인신을 볼모로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적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 마찬가지 생각인가?
"당연하다. 언론인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명감은 원칙을 지킴으로서 이뤄내는 것이다. 원본 자료를 달라? 생각해 보자. '정부 정책에 문제 있다'면서 인터뷰한 사람들을 검찰이 전부 들여다 본다는 건데 그렇다면 누가 취재에 응하겠나. 정부 비판을 아예 생각할 수 없는 공산주의도 이렇게는 안 할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언론자유 무너지는 거 금방이다. 언론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기자나 방송인들만 하는 게 아니다. 검찰과 법관도 이를 위해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 MBC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 ⓒ 권우성



- 사태가 장기화되어 '회사 생활'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각오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우리가 원한 게 아니잖는가. 저들이 원하는 것인데 어쩌겠는가."

- 후배 PD들에게 한 말씀 남긴다면
"자책감이 있다. 후배들을 보면, '책임 PD로서, 이렇게까지 안 오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항상 자책한다. 하지만 후배들 자랑스럽다. 내가 후배들이었다고 해도 그 시기에 같은 보도를 했을 것이고 같은 상황에 놓여졌을 것이다. 우리는 원칙을 위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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