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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182) 지속적

― ‘지속적으로 공급’, ‘지속적인 괴롭힘’ 다듬기

등록|2009.03.26 17:33 수정|2009.03.26 17:33

ㄱ. 지속적으로 공급

..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지금 당장은 식료품점의 진열대에 음식물들이 꽉꽉 채워져 있고, 미국 농업생산물의 양 또한 막대하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자와 생산의 원천을 파괴하는 것에 기반한 생산물인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그들이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농사에 대해 농지가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걱정한다 … 이런 과정을 통해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은 음식의 종류나 질에 대해서, 혹은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산되고 가공되었는지, 성분은 무엇인지, 무엇이 첨가되었으며 찌꺼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거부하려면 소비자는 음식산업에 대해 면밀하게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음식경제 속에서 눈을 뜨고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웬델 베리/정승진 옮김-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양문,2002) 77∼78, 86∼87쪽

 보기글을 길게 옮겨 봅니다. 우리들이 너무도 손쉽게 잊어버리거나 스쳐 지나가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을 옳게 쓰는 일보다도 우리 삶을 옳게 다스리는 일에 마음을 못 쏟기 때문에, 말이며 일이며 사람이며 사랑이며 삶터며 엉망으로 나뒹굴어도 못 알아채거나 못 느끼지 않느냐 싶습니다. 참다이 살아가는 마음결이어야 참다이 주고받는 말이 되고, 사랑스레 나누는 삶이 되어야 사랑스레 나누는 글이 됩니다.

 보기글에 적힌 낱말을 하나하나 손보기보다는 통째로 고쳐써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먹을거리를 앞으로도 걱정없이 댈 수 있느냐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식료품점 진열대에 먹을거리들이 꽉꽉 채워져 있고, 미국에서 거두어들이는 곡식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식료품점 먹을거리와 어마어마한 기업농은 생산자와 생산하는 뿌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도시사람들은 이를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는 그저 도시사람이 농사일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농사를 지을 때 논밭이 땅힘을 제대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걱정한다 … 이렇게 거쳐 오는 먹을거리를 먹는 사람은 먹을거리가 무엇이고 어떠한지, 무엇이 담겼으며 찌꺼기는 무엇인지를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이러한 틀을 거스르려면 소비자는 음식산업을 하나하나 꾸준히 알아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음식경제에 눈을 뜨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책임 있는 노릇을 하게 된다."쯤으로.

 ┌ 지속적(持續的) : 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되는
 │   - 지속적 경제 성장 / 지속적 관계 / 지속적인 발전 /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 지속(持續) : 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
 │   - 지속 가능성 / 약효의 지속 시간 / 물가 상승의 지속
 │
 ├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x)
 └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o)

 "오래 계속되는"을 뜻한다는 '지속적'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여, '계속(繼續)'을 찾아봅니다.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속적 = 계속되는 = 끊이지 않음 / 이어 나감'인 셈이군요. "오래 이어지는"이나 "오래도록 끊이지 않는"이라고 하면 넉넉한데, 이처럼 손쉽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 못하고 '지속적'만 끊임없이 쓰고 있는 셈이네요. 알뜰살뜰 쓸 말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얄궂은 말투만 자꾸자꾸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에요.

 ┌ 식량을 지속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
 │
 │→ 먹을거리를 꾸준히 댈 수 있느냐
 │→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댈 수 있느냐
 │→ 먹을거리를 한결같이 댈 수 있느냐
 │→ 먹을거리를 언제까지나나 댈 수 있느냐
 │→ 먹을거리를 앞으로도 걱정없이 댈 수 있느냐
 └ …

 잘하는 일을 꾸준히 이으면 우리 삶뿐 아니라 이웃 삶 또한 넉넉해집니다. 잘못하는 일을 끝없이 이으면 우리 삶과 이웃 삶 모두 팍팍해지고 메마르게 되고 무너집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잘 쓰는 말 한 마디는 한 마디로 그치지 않고 우리들 모든 말에 즐겁게 퍼져나갑니다. 잘못 쓰는 말 한 마디도 한 마디로 안 그치고 우리들 모든 자리에 얄궂게 스며듭니다.

 아이들한테 나쁜 밥 한 술 떠먹이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은 크게 앓을 수 있으니, 어떤 어버이라도 아이한테 먹이는 밥을 아무렇게나 차리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나쁜 말 한 마디 들려주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은 마음이 크게 다칠 수 있어요. 다르지 않을 테지요. 나날이 더러워지는 공기에 우리 몸이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그저 견딜 뿐이지 우리 몸이 튼튼해지지는 않습니다. 깨끗해지지도 않습니다.

 나날이 얄궂게 퍼져나가는 말과 글에 우리 마음과 눈과 손이 익숙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무슨 말뜻이고 글뜻인지만 헤아릴 뿐이면서 우리 넋과 얼이 시들거나 주눅들게 내버리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노릇입니다.

 ┌ 지속적 경제 성장 → 꾸준한 경제 성장 / 꾸준히 발돋움하는 나라살림
 ├ 지속적 관계 → 오래 이어지는 사이 / 오래가는 사이
 ├ 지속적인 발전 → 꾸준한 발돋움 / 꾸준히 발돋움함
 └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 꾸준히 애쓰다 / 끝임없이 힘쓰다

 세상 어느 일이든 꾸준하게 돌보고 가꾸어야 합니다. 세상 어느 사람이든 꾸준하게 바치고 껴안는 사랑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세상 어느 나라와 겨레에서 쓰는 말과 글이든, 늘 손질하고 갈고닦고 지켜야 합니다.


ㄴ. 지속적인 괴롭힘이

.. 분명히 상관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으니까 자살까지 하게 된 거지요 ..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삼인,2008) 63쪽

 '분명(分明)히'는 '틀림없이'나 '반드시'로 다듬습니다. "자살(自殺)까지 하게 된 거지요"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지요"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기까지 했겠지요"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상관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으니까
 │
 │→ 웃사람이 꾸준히 괴롭혔으니까
 │→ 웃사람이 자꾸자꾸 괴롭혔으니까
 │→ 웃사람이 끊임없이 괴롭혔으니까
 │→ 웃사람이 끝도 없이 괴롭혔으니까
 └ …

 "틀림없이 웃사람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 괴롭힘을 이어갔으니"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겨우겨우 버티면서 살아내자고 하더라도 한두 번도 서너 번도 아니게 날이면 날마다 수없이 괴롭히고 들볶으니 견딜 수 없습니다. 한두 주 견디려 해도 벅찬데 한두 달도 아닌 전역하는 날까지 한두 해씩 주먹질과 욕설이 시달린다면 사람마음이 어찌 될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우리가 늘 쓰는 말과 글을 한두 번도 서너 번도 아니게 날이면 날마다 엉터리로 씁니다. 한두 번 엉터리로 써도 얄궂게 뒤틀릴 걱정이 있는데, 나날이 끝없이 엉터리로 쓰니, 이제는 엉터리로 쓰는 말과 글이 마치 바르고 참된 말과 글이라도 되는 듯 잘못 생각하는 사람마저 나타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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