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파트 시공, '눈 가리고 아웅'?

떨어진 문짝,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을까

등록|2009.03.27 14:05 수정|2009.03.27 14:06
너덜너덜한 내 마음. 저희 집 문짝을 보면 꼭 내 마음 같았습니다. 까딱 잘못해 몸에 걸리면 시트지 전체가 떨어질 것 같았지요.
"저 문짝만 보면 속 터져서. 당신은 저런 것 보면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나 같으면 벌써 해도 몇 번은 했겠다."

아내는 덜렁거리는 문짝을 보고 못마땅해 했습니다. 집에 있는 6개 문이 다 그러니 할 말이 없었지요.

신혼 때 같으면, "누구라도 보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되지. 왜 꼭 남자가 그걸 해야 돼"라고 반항(?) 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할 사정입니다. 왜냐면 아내는 스카치테이프도 붙이고, 양면테이프도 붙인 상태라 찍 소리 못할 상황이었지요.

떨어진 문짝, 이지경이 되도록 뭐했을까?

▲ 문에 홈이 있어 시트지로 바꿀 경우 버릴 게 염려스러웠지요(좌), 고친 문짝(우). ⓒ 임현철




몇 번인가 '저걸 본드로 붙여야 하나? 시트지로 붙여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문 중간 중간 홈이 있어 젬병인 실력에 망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견디다 못해 지난 화요일,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문의 했지요.

"관리사무실에서 떨어진 문짝은 고쳐주지 않나요?"
"그거 접수하면 됩니다."

간단하더군요. 하자 보수 기간이 지나, 각자 알아서 고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문짝도 고쳐준다니 로또 1등에 당첨한 것처럼 횡재한 기분이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문의했을 텐데, 괜한 걱정을 하였던 게지요.

이틀 뒤 관리인이 왔습니다. 그는 '이지경이 되도록 뭐했을까'라는 한심한 얼굴로 문을 보더군요. 기가 팍 죽었지요.

"너무 험하죠?"
"이런 집 많아요. 양면 청 테이프로 안 붙여놨으면 더 수월한데 꼭 청 테이프로 붙여 놓더라고요. 그러면 일이 더 어렵죠."

아파트 시공 '눈 가리고 아웅', 나 원 참!

▲ 떨어진 문짝을 고치고 있습니다. 본드 하나가 다 들었지요. ⓒ 임현철



"그런데 문짝이 왜 이리 다 너덜너덜 떨어지죠?"
"아파트 공사를 부실로 해서 그래요. 세면장 문은 다른 재질로 해야 하는데 다른 문과 똑같이 시트지로 대충 발라서 그래요. 문짝 고치다보면 '무슨 놈의 공사를 이리 날림으로 했다냐'하고 욕이 나와요.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돼서 제대로 시공하는 건 뒷전이죠. 이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깜짝 놀랐지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이런 소리 할 줄 생각도 못했거든요. 내친김에 하자 보수기간에 대해 물었습니다.

"하자는 1년부터 3년까지 품목별로 다 달라요. 요 문짝은 2년인데 2년 동안만 버티면 시공사가 보수를 안 해도 돼요. 그러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죠."

고마움의 표시로 그에게 칡즙 한 잔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방문 수리를 더 꼼꼼히 봐 주시더군요.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게 '오가는 정'이나 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고쳤습니다. 저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지요. 그런데도 뿌듯하데요. 아내가 놀라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일하고 들어온 아내는 "우리 신랑, 요즘 무슨 일 있대?"라며 호들갑이었습니다.

나무늘보가 움직이니 놀랍나 봅니다. 나무늘보라도 이런 날 한 번쯤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