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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여행? 설마 밥 굶기지는 않겠지

15만원짜리 2박3일 제주도 여행기 -1

등록|2009.03.27 14:11 수정|2009.03.27 14:11

▲ 이국적인 풍경의 제주국제공항 ⓒ 이승철


"2박3일 제주도 여행이 15만 원이라고? 값이 싸서 좋긴 한데, 설마 밥 굶기는 건 아니겠지?"
"아니, 왕복 항공요금만 해도 얼만데, 15만원이라니 그거 좀 이상한 것 같다."

그러나 여행을 추진한 친구는 절대 틀림없다고 한다. 본래는 당일 왕복 한라산 등산이나 1박2일 한라산 등산과 간단한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본 친구가 같은 요금으로 2박3일 일정의 여행상품을 찾아냈다며 계획을 변경하여 추진한 것이다.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설마 밥을 굶기기야 하겠어?"
"제주도 관광이 요즘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다는 소문도 들리더구먼, 그냥 한 번 부딪쳐 보는 거지 뭘."

모두 60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다. 더구나 가난과 어려움을 충분히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 아닌가. 대우가 좀 나쁘다고 해도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 다섯 명이 부부동반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한 것은 3월 23일 오전 7시 45분이었다. 여행일정에 한라산 등산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옷가방과 함께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한라산 등산을 겸해 떠난 2박3일 제주도 여행

일행들 중에는 한라산 등산을 위해 이미 두 번이나 제주도 여행을 했지만 폭설과 날씨 때문에 모두 등산에 실패하고 우리들과 함께한 친구 부부도 있었다. 그들은 이번 여행이 세 번째였다. 비행기 창밖의 하늘은 맑고 햇볕이 쨍했다.

▲ 감귤상자를 간뜩 싣고 달리는 트럭 ⓒ 이승철


"저희 항공사 회원이 되어주시면 서울, 제주 간 항공권을 1만99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린가, 비행 중 여승무원의 안내멘트가 귀를 의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서울과 제주 항공요금이 1만9900원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이었다.

"아니! 항공요금이 왕복 4만 원이라면 제주도 2박3일 여행요금 15만 원은 결코 터무니없이 값싼 싸구려 여행이 아니잖아?"

일행들이 비로소 싸구려 여행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비행시간은 50분이었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남해안을 지나친지 잠시 후, 저 아래로 제주도와 한라산이 나타났다. 제주 공항에는 현지 여행사에서 보낸 가이드 겸 차량운전을 맡은 사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는 공항을 나서며 바라본 한라산은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풍경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우리 일행 10명을 태운 25인승 버스는 공항에서 나와 서쪽을 향해 달렸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벚나무들이었지만 기대했던 벚꽃은 이제 한창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도로 화단에 심어놓은 작은 꽃들이 화사하다. 키가 큰 야자나무 가로수들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노란 유채꽃들이 제주도의 정겨운 색깔로 다가온다.

▲ 드넓은 녹차밭에선 일행들 ⓒ 이승철


"오른편에 솟아있는 오름을 보세요? 시커멓게 그을렸지요? 새별 오름입니다. 들불축제를 벌이며 억새들을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는 총 386개의 오름이 있는데 지상 높이가 200미터 이상인 산은 8개뿐이다. 새별 오름은 산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378개 오름 중의 하나였다.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이라고 하지만 제주 관광의 첫 번째 코스는 '서광녹차단지'였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드넓은 녹차 밭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아름답다. 가이드는 제주도 전체 녹차 재배면적이 56만 평인데 이 서광녹차단지 면적이 18만 평이라고 한다.

드넓고 싱그러운 녹차 밭과 수많은 오름들

녹차 박물관을 둘러본 후 향기 그윽한 녹차 한 잔씩으로 비행기 멀미를 씻어냈다. 녹차 밭을 둘러보며 일행 중 한 사람이 '녹차하면 보성녹차' 아니냐고 하니 가이드가 펄쩍 뛴다. 제주 설록차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녹차 밭 옆의 언덕엔 파릇파릇한 새싹이 싱그러웠다.

"이 꽃 좀 보세요? 동백꽃인데 꽃송이가 이렇게 크고 예쁘네요."
친구 부인이 동백나무 밑에서 주워온 꽃송이는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남해안이나 육지에서 흔히 보았던 여느 동백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녹차 밭과 동백나무 숲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길가의 밭들은 물론 무덤 주위에도 돌담이 둘러쳐진 모습이 여간 신기한 모습이 아니다. 밭 가운데의 돌담은 '밭담'이라고 하는데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산에도 역시 돌담이 있는데 이것을 '산담'이라고 한단다.

돌담은 밭이나 산에 흔한 돌을 주워내 쌓아놓은 경계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방목하는 말이나 소 등 가축들이 침범하여 농작물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하는 울타리 역할도 한다고 한다. 돌담의 모습도 옛날엔 신분의 구별이 있어서 외줄 돌담은 서민들의 것이고 두 줄 돌담은 부자들의 것이었다고 했다.

▲ 공연을 끝내고 인사하는 기예단원들과 꼬마단원에게 지폐를 쥐어주고 나오는 할머니 ⓒ 이승철


"이번에는 해피타운에서 멋있고 스릴 넘치는 기예 구경을 하겠습니다."
길가에 서있는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좌석이 천여 석이 넘을 것 같은 자리가 꽉 찼다. 공연시간에 여유 있게 들어갔지만 앞쪽엔 앉을 자리가 없어 뒤편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접시돌리기 기예부터 시작된 공연은 중국 남부지역 여행 중에 상하이에서 본 것까지 이번이 세 번째 관람이었지만 역시 놀랍고 아슬아슬한 멋진 공연이었다. 특히 마지막 순서인 좁은 철제 원통 안에서 오토바이 7대가 달리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만점의 공연이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는 옆자리의 사람들 말소리를 들어보니 중국인들이 많다. 관광객들이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인들의 기예이며 중국의 몇 곳에서 공연 중인 것을 구경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한 공연장에서 관람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중국인 기예단 공연과 정 많은 할머니들, 그리고 다정한 모녀 여행객

바로 옆자리에는 20대 후반의 딸과 50대 초반의 엄마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구경하는 모습이 정답다. 이들 모녀는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28세인 딸이 다음 달 초에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되어서 기념여행으로 제주도를 찾았다고 한다.

28세면 결혼 적령기인데 시집은 안가고 웬 유학이냐고 농담을 하니 결혼은 아직 관심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으니 역시 그렇단다. 2남 1녀인 딸이어서인지 귀엽고 아까워서 시집보내기 싫다는 것이었다.

"아들보다 딸이 훨씬 좋은기라예! 시집 안가겠다고 하면 평생 같이 살아도 상관 없심더."
엄마와 딸이 마주보고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딸도 그렇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인다. 농담이겠지만 이들 모녀는 정말 그렇게 살겠다는 듯이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앉아 소곤거리고 있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자 출연진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한다. 그런데 관람을 마치고 나가던 노인들이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앞쪽에 나와 인사를 하고 서있는 여자어린이 단원들을 보며 귀엽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노란 유채밭이 보이는 농가풍경 ⓒ 이승철


6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여자 어린이 기예단원에게 다가가 지폐 한 장을 쥐어주자 곧 다른 노인들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몇 십 명의 노인들과 아주머니들이 어린이들에게 지폐를 쥐어 주자 어린이들은 매우 기쁜 표정을 짓는다.

"역시 우리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이야, 저 꼬마들이 아슬아슬한 공연을 할 때부터 저 할머니들은 마음이 짠했을 거야,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일행이 할머니들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공연장 마당에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들이 가득했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예약이 되어 있는 화순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길가의 감귤나무들은 대부분 수확이 끝나 열매가 매달려 있지 않았지만 여름철에 수확한다는 유자처럼 생긴 여름 귤(나쓰 미깡)은 누렇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탐스럽다. 그러나 아직은 맛이 들지 않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돼지고기 맛이 좋은데, 다른 반찬도 괜찮은 편이고."
뷔페식 식당은 우리일행들 외에도 많은 여행객들로 만원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편이었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싸구려 여행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일행들이어서 점심 밥맛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식당 주변엔 몇 채의 농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텃밭의 마늘이 싱싱하게 자리는 모습이며 마늘밭 너머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풍경이 남쪽 바다멀리 제일 먼저 찾아온 제주도의 봄볕 아래 따사로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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