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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나눔 교육비', 올해는 갈등되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등록|2009.03.27 14:38 수정|2009.03.27 14:40
경제가 어렵습니다.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걱정도 되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여서 불안도 합니다. 저같은 자영업자도 지갑이 얇아지긴 마찬가집니다. 두 아이 학비 대기가 빠듯합니다. 한달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어느새 아이들 학비 내는 날짜가 코앞입니다.

요즘 살기 어떠십니꺼?

"저기… 요즘 살기 어떠십니꺼? 어렵지예… 이번에 나눔 교육비 신청서를 안 내주셔서 철판 깔고 전화돌리고 있습니더."

둘째 딸 학교 샘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눔 교육비를 신청해달라는 공지를 학교 홈에 띄웠다는데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 큰딸 학교도, 작은딸 학교도 나눔 교육비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집은 학비를 보다 더 내고, 좀 어려운 형편의 사람은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좀 덜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권영숙, 신숙영, 박소연, 김윤희, 양수지, 김혜영. 이 사람들은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저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번도 등록금을 제 때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남매에 제가 넷째인데 언니 오빠 동생과 두세 살 터울이니 등록금이 한꺼번에 나와서 늘 순위에 밀려 맨 꼴찌로 등록금을 냈습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등록금을 늦게 낸다는 이유로 교감선생님께 불려갔습니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옆에 두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왜 등록금을 안 내는지(못 내는 것이 아닌) 추궁을 당했는데 엄청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혼나고도 등록금을 못낸 아이들은 등교정지를 당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학교도 나오지 마라. 그 일은 제 어린 마음에 부모가 가난한 게 죄라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전 늘 새학기가 되면 담임이 종례시간에 등록금 안 낸 아이들 명단을 부를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그땐 등록금을 빨리 안주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제가 그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숨이 가쁩니다.

▲ 간디 학교 나눔 교육비 신청서 ⓒ 권영숙




▲ 간디학교 장학금 신청서 ⓒ 권영숙




학교에서 보내온 나눔 교육비 신청서, 갈등된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큰 딸 학교에서 나눔 교육비 신청서가 우편으로 날라왔습니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이 돈만을 의미하진 않겠지요. 가진 것이 개인 재능이 될 수도 있고, 건강한 몸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안학교를 오래 다니다보니 어려운 가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마음속에서 계산을 합니다. 적어도 내가 나눔교육비를 얼마 정도는 더 내야 장학금 신청하는 사람을 보충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죠. 네. 제가 오지랖 넓은 거 맞습니다.^^ 국가 지원없이 운영되는 대안학교 재정이 빤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눔 교육비 신청 했어?"
"해야지. 얼마를 하냐. 고민이다."
"당신 '사'짜 들어가니까 많이 내라. "
"야. 그렇게 따지면 너도 '사'자 들어가잖아? '사장'"
"영세 자영업자의 '사'자랑 끝자리 '사'자랑 같냐? 올해 장학금 신청할 가정이 더 늘 것 같던데…." 

매년 이렇게 말하고, 나눔교육비 신청서를 냈던 제가 올해는 나눔교육비 신청서를 바라 보고만 있습니다. 어디서 더 줄이고 나눔교육비를 내야할지 구체적 계획이 안나옵니다. 남들처럼 화장을 하면 화장품 값이라도 줄이고, 남들처럼 옷이라도 잘 사입으면 옷값을 줄이고, 남들처럼 사교육이라도 시키면 사교육비라도 줄일텐데…. 

그래도 이 나눔 교육비 신청서가 소중합니다. 사람의 경제사정이 늘 어려운 것도 아니고, 늘 부유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조금 더 내고, 또 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눔 교육비 제도가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등록금을 못낸다는 이유로 불려가 혼나거나 창피를 당하지 않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힘들 때 혼자만 가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작더라도 형편껏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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