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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 사회운동가가 들려준 '연대의 경제'

[유럽 대안경제와의 조우 2] '연대의 경제' 비엔나 콩그레스 참관기

등록|2009.03.30 09:49 수정|2009.03.30 09:49
희망제작소의 객원연구원으로서 필자는 현재 독일어권의 사회적 기업, 사회적 비즈니스, 대안경제의 실천적 흐름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 (2009) 2월 20-22일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서 개최된 '연대의 경제 콩그레스'와, 3월 11일에 독일의 쾰른(Köln)에서 개최된  '사회적 비즈니스 지역컨퍼런스'에 직접 참석하여, 이 분야의 새로운 실천동향과 조우하는 기회를 가졌다. 두 행사에 참가하여 얻은 지식, 정보, 소회를 향후 두 달 여 동안 희망제작소의 홈페이지와 오마이뉴스의 지면에 동시에 게재하면서, 대안경제를 향한 유럽 사회운동의새로운 흐름을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비엔나의 '연대의 경제' 행사 첫날 저녁. 같은 시간에 제공된 여러 토론장들 중에서 연대의 경제 개념과 현황 등 전반적인 흐름의 개관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강연장을 찾았다. 다그마 엠브쇼프(Dagma Embschoff)라고 하는 젊은 독일 여성운동가가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연대의 경제'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다그마의 이름과 이 주제는 이미 연대의 경제 베를린 콩그레스 이후에 당시 참가단체들의 글을 모아 출간한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터다. 강연 제목도 책 제목과 동일한 것이었다.

강의실 가득 청중들이 찼고, 발표자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을 넘겨 가며, 찬찬히 준비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연대의 경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독일(혹은 독일어권)의 사회운동진영에서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 주제에 다가가고 있으며, 현재 어떠한 실천들이 있는지,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두루 짚는 내용이었다. 

강연과 토론이 끝나고, 강연자에게 찾아가 인터뷰 의사를 표했고, 셋째 날 오전 아침식사 시간에 식당에서 만나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대의 경제 1회 대회의 개최를 주도했던 인물이었기에, 어떻게 이런 흐름이 만들어져 있고, 그녀가 속해 있는 운동아카데미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등 몇 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아래에서는 첫날 진행된 강연에서 다그마가 소개한 연대의 경제의 정의, 현황, 가능성과 한계 등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 마지막 날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연대의 경제 콩그레스의 태동 배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그마 엠브쇼프의 강연장연대의 경제 비엔나 콩그레스에서 다그마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박명준


정의 

사회연대경제 촉진을 위한 대륙간 네트워크 (RIPESS, 웹사이트 http://www.ripess.net/en/default.htm )는 '연대의 경제'에 대해서 인간적 욕구를 자유로운 협동, 자조 그리고 상호부조를 기초로 채우도록 하는 경제형태라고 정의내린다. '연대의 경제'에서 '경제(Ökonomie)'가 인간적 욕구의 만족을 위한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연대(Solidarität)'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서로 도움과 조력을 주고 받으며 형성하는 소속감을 말한다.

통상적인 경제가 이윤추구를 지향한다면, 연대의 경제는 의미 있는 생산을 추구한다. 전자가 경쟁과 개별화된 생존투쟁을 기초로 한다면, 후자는 협동을 기반으로 하고, 시장에서의 경제행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지향한다. 그 지향은 신자유주의에 반(反)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를 보완, 극복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다.

연대의 경제와 함께 논의되는 것으로 '대안경제(Alternative Ökonomie)'라고 하는 개념이 있다. 이는 70-80년대 유럽에서 흥했던 신사회운동의 폭넓은 흐름과 관련을 지니며, 여러 사회운동의 주요 가치주제들이 경제의 영역으로 전이되어 추구되는 가치이다. 이를테면,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운동 흐름의 연장에서 '여성기업(Frauenbetriebe)' 운동이 하나의 대안경제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강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은 사회적 기업(Soziale Betriebe)으로, 국제연대를 추구하는 세력은 '공정무역(fairer Handel)'으로 대안경제의 영역에 자리잡았다.

현황

연대의 경제와 협동조합운동은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띠며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몬드라곤 산업-협동조합 복합체 (http://www.mcc.es/ing/index.asp) 등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고, 그밖에도 베네주엘라의 협동조합 네트워크 Cecosesola, 니카라구아의 The Fair Trade Zone (http://www.jhc-cdca.org/sewing.html), 브라질의 Incubadoras, 이집트의 Sekem (http://www.sekem.com/english/default.aspx), 인도의 Just Change (http://www.justchangeindia.com/) 등도 대표적인 연대의 경제 흐름이다.

전통적으로 연대의 경제가 취약했던 독일에서 근래 들어 훨씬 적극적으로 연대의 경제가 추구되고 있는데, 이는 몇 가지 사회변동의 맥락과 관련이 있다. 첫째,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정규직에서도 업무상 성취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서, 사회운동도 여러모로 경제적 자조(Selbsthilfe)를 이루기 위한 필요가 생기고 있다. 둘째, 점차 기업들의 해외이전이 잦아지면서, 독일 내에서 기업폐쇄 대신 종업원들이 주도가 되어 기업을 인수하려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대안개념이 필요해지고 있다. 넷째, 정치적 진보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늘날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 요구되며, 보다 거시적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대안개념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독일의 연대의 경제는 에너지, 건강, 주거, 교육, 금융, 지역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예컨데, 에너지 부문에서는 친환경 에너지나 태양에너지로 유명한 쉐나우발전소(EWS), 졸비스(Solvis) 등이 대표적이다. 주거부문은 생태친화적인 대안적 주거공동체의 형성을 지원하는 트리아스 재단(Stiftung Trias) 등을 들 수 있다. 금융부문은 친사회적이고 친생태적인 프로젝트들의 후원에 주력하는 GLS은행을 비롯하여, 소위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kredite)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여러 기관들이 있다. 지역개발 부문에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태동한 지역화폐(Regiogeld)들이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지역사회 개발의 일환으로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

다그마 엠브쇼프의 강연장 2다그마와 청중들이 연대의 경제에 관하여 토의를 하고 있는 모습 ⓒ 박명준


의미와 장점

연대의 경제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경제적 의미로, 그것은 의미 있는 생산물들은 삶의 조건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경제혁신의 견인차로도 역할을 한다. 두번째는 정치적 의미로, 연대의 경제는 이데올로기적인 분열을 막고, 문화적인 변동이나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정치개혁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세번째는 개인적으로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위한 가능성으로, 연대의 경제는 사회적 소속감을 높이고 공동결정과 자율의 가치를 신장시킨다. 이를 통해 실업이나 사회적 신분의 실추 등의 공포를 피할 수 있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사회와 사회변동을 위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하는 느낌을 갖도록 해 준다. 한 마디로 참여와 연대는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그밖에도 연대의 경제 프로젝트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몇 가지의 독특한 기회들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재산소유자들의 이윤 유출이 상대적으로 적다. 둘째, 종업원들간이 높은 수준의 정체성 공유를 하게 된다. 셋째, 고객들하고까지도 정체성을 공유하게 된다. 넷째, 의미있는 부문들의 경우 성과를 불문하고 모두 최소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한계과 극복방안

연대의 경제 프로젝트들은 본원적으로 몇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협력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일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쟁이 담고 있는 혁신의 잠재력이 낮기 때문이다. 자본의 절대적인 규모 자체가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협동조합이 폐쇄성을 가지면서 이상의 확대가 제약을 당할 수 있고, 윤리적인 요구가 지나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키 위한 방안들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우선 혁신과 성장의 속도가 더딘 문제를 극복키 위해 적극적으로 내외적인 소통과 조언을 추구하고, 경제단위의 지도부에게 일상의 의사결정을 일임하는 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 변동과 학습을 끊임없이 독려하는 환경과 구조를 장려하기도 하다. 자본부족의 문제는 독자적인 재정조달의 수단을 설립하고 존재하는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최대한 창의적으로 이용함을 통해 극복한다. 이상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주도적인 표상과 근본적인 가치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과정을 구축한다.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자본중심적인 부문에 대한 지원이 연대중심적 부문을 차별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Genossenschaft: eG)이나 협회(Verein: eV) 등의 조직구축과 법적인 토대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종업원들에 의한 기업 인수시 지원을 해 주어야 하고, 여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의 수단을 통해 재정적인 조력을 해 주어야 한다. 여타 지역화폐 등을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토록 안정적인 법률적 틀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성공요인과 발전방안

연대의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성공요인들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참여와 민주주의의 문화로, 이는 투명적 운영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타당한 소통방식을 통해 성공적으로 제어하고 해결해야 한다. 셋째, 협약이나 규칙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고, 공동의 가치를 뚜렷이 표방해야 한다. 넷째, 경제적으로 실현가능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들을 모색하고 그것이 창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경영상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종업원들이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강점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계속해서 교육을 통해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연대의 경제가 독일에서 또 독일어권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주체들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다양한 매체들과 방식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적 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하며, 노동조합이나 교회 등 다른 경제사회적인 주체들과의 적극적인 소통도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프로젝트들을 구축해야 하고 인터넷과 서적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것이 네트워크 안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이상이 비엔나 콩그레 첫날 저녁 다그마의 강연 내용이었다.

다그마 엠브쇼프의 모습연대의 경제 비엔나 콩그레스 마지막 날 필자와의 인터뷰 후에 포즈를 취해 주었다. ⓒ 박명준


운동 아카데미와 연대의 경제 콩그레스 

대화 마지막 날 필자와 짧은 인터뷰를 하면서 다그마는 자신이 속한 단체인 '운동 아카데미(Bewegungsakademie)'가 어떤 곳인지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 이곳은 원래 환경운동에 참가했던 다그마와 그녀의 다른 동료 2인이 운영하는 매우 작은 단체이다. 주로 주말에 시민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세계화, 환경문제 등 사회운동과 관련한 주제들에 대해서 세미나나 강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 위주로 진행해 왔다.

좀 더 굵직하고 이슈가 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포럼이나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의 역할도 수행했는데, 지난 2006년 11월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회 연대의 경제 콩그레스도 바로 그러한 활동의 연장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그간 포럼이나 컨퍼런의 주제 중에 대표적인 것은 독일에서 신자유주의를 향한 개혁의 물꼬가 터지면서 부상하는 친신자유주의 싱크탱크들과 엘리트들을 조명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다.

운동 아카데미다그마가 소속된 운동 아카데미의 웹사이트 ⓒ 박명준


최근에는 주말 세미나 등보다는, 특정 주제들에 대한 집중강연 등의 형태로 약 5일 정도 교육코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운영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내용적인 계몽뿐 아니라 사회운동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제반 역량 강화를 이루도록 한다. 특히 정치연극 등의 형태로 정치적 선전활동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방안도 시도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서, 여러가지 재정적인 조달차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은 주로 대규모 정치사회재단들, 이를테면 로자 룩셈부르그 재단이나 하인리히 뵐 재단 등과 정부의 개발협력 운용기금 등에 의지하여 활동을 꾸려 왔다.
2006년 연대의 경제 콩그레스도 약 10여개의 재단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조직했다. 당시 독일 전역의 도시들에서 활동하는 약 30여명의 활동가들을 조직하여 내용을 협의하고 1년 정도 꼬박 준비해서 국내외적으로 1400여명이 참가하는 성공적인 대회를 열었다. 준비과정에서 운동 아카데미의 사무실이 회의장소로 주로 이용되었고 다그마는 재정조달과 홍보를 책임졌다.

연대의 경제 1차 콩그레스 웹사이트 2006년 11월 베를린 공대에서 개최 ⓒ 박명준


연대의 경제와 사회적 기업

마지막으로 연대의 경제의 현황과 그것과 사회적 기업과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그마에 따르면, 연대의 경제는 현재 독일 시민사회와 정가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중이다. 좌파정당인 디 링케(Die Linke) 내에도 연대의 경제를 다루는 독자적인 논의그룹이 만들어져 있다. 그간 민영화 반대 등 소위 방어투쟁(Abwehrkaempfe) 위주로 활동을 했던 아탁(attac) 같은 단체들도 방어와 반대를 넘어선 대안모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2006년 베를린 콩그레스 이후 연대의 경제 개념의 인지도는 사회적으로 매우 높아졌고, 여러 활동가들에 의해 보다 새롭고 창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 비즈니스나 사회적 기업을 주창하는 세력과는 아직까지 교류가 밀접한 상태는 아니다. 다그마는 아소카 재단이나 게니시스 연구소 등 그러한 활동을 하는 집단들에 대해서 익히 들어 왔으나 직접적인 소통은 없다고 밝히면서, 양자간의 차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었다.

연대의 경제하에서 기업은 일단 종업원들의 민주적 소통과 공동경영, 자조를 강조하는 반면, 사회적 기업은 기업적 수단을 통해 사회적 기업가와 그의 기업이 어떻게 윤리적으로 부합하게 사회적 공헌을 하고 문제해결에 이바지할 것인가가 주요한 관점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앞으로 양자 모두 독일 사회의 혁신을 위해 점차 큰 기여를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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