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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28)

[우리 말에 마음쓰기 592] ‘여기 존재하게 된’, ‘어려움을 주는 존재’ 다듬기

등록|2009.03.28 15:42 수정|2009.03.28 15:42
ㄱ.여기 존재하게 된

.. 이 아이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여기 존재하게 된 것이다,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벅찬 거 있죠! ..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242쪽

"된 것이다"는 "되었다"로 다듬습니다. "벅찬 거 있죠"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벅찬 느낌 있죠"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여기 존재하게 된 것이다
 │
 │→ 여기 있게 되었다
 │→ 여기 살게 되었다
 └ …

어머니가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겨내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로 살아오는 동안 아이를 낳아 겨우겨우 살림을 잇는 가운데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이처럼 '살아와' 주었기에 당신 아이를 낳아 당신 아이도 '살아올' 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이 땅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목숨붙이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 여기에서 숨을 쉬고 있다
 ├ 여기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 여기에 나와 함께 있다
 ├ 여기에 나처럼 살고 있다
 └ …

살아 있는 우리들은 숨을 쉽니다. 우리들은 숨을 쉬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목숨을 하루하루 잇는 우리들은 서로서로 함께 있습니다. 함께 있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습니다.

나만큼, 아니 나와 같이 네가 아름다운 사람이며, 너만큼, 아니 너와 같이 내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웃사람이 사랑스럽고, 이웃사람과 마찬가지로 내가 믿음 가득합니다.

ㄴ. 어려움을 주는 존재로

.. 나는 한 명의 봉사단원으로 잔지바르에 왔기 때문에,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내가 하려는 일에 어려움을 주는 존재로 돌변했다 ..  《강제욱,이명재,이화진,박임자-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포토넷,2008) 168쪽

"한 명(名)의 봉사단원으로"는 "한 사람 봉사단원으로"나 "봉사단원 가운데 하나로"나 "봉사단원으로서"로 다듬습니다. '이국적(異國的)으로'는 '낯설게'로 손질하고, '돌변(突變)했다'는 '바뀌었다'나 '되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 어려움을 주는 존재로 돌변했다
 │
 │→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 어려운 걸림돌이 되곤 했다
 │→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
 └ …

말이란 저마다 살아오는 매무새대로 나옵니다. 글이란 저마다 생각하는 결대로 적힙니다. 가꾸고 꾸리고 보듬는 삶 그대로 말을 하게 되고, 추스르고 다독이고 갈고닦는 생각 그대로 글을 쓰게 됩니다.

스스로 꾸밈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꾸밈없는 말과 꾸밈없는 글입니다. 스스로 치레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치레하는 말과 치레하는 글입니다. 겉과 속이 야무지고 단단하며 튼튼하고 씩씩하다면, 야무지고 단단하며 튼튼하고 씩씩한 말이요 글이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르면 겉보기와 속보기가 다른 말이요 글입니다. 몸으로 옮기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는 매무새라면, 빈말과 빈글이 판을 칩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매무새라면, 얼렁뚱땅 대충대충 뇌까리거나 끄적이는 말이요 글이 되고 맙니다.

 말을 하기 앞서 삶을 다독여야 합니다. 글을 쓰기 앞서 생각을 추슬러야 합니다. 말 한 마디에는 그 사람 모든 삶이 스미고, 글 한 줄에는 그 사람 모든 생각이 담깁니다. 사랑을 담을 수 있는 말이며, 믿음을 실을 수 있는 글입니다. 기쁨이 깃들 수 있는 말이며, 즐거움이 서릴 수 있는 글입니다. 웃음이 감돌 수 있는 말이며, 넉넉함이 배어들 수 있는 글입니다.

 누구나 애쓰기 나름입니다. 누구나 마음쏟기 나름입니다. 누구나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기 나름입니다. 누구나 땀과 힘과 품을 들이기 나름입니다. 날마다 꾸준히 땀흘리면서 제 삶자락 갈고닦는 사람이 시나브로 나아지지 않는 법이란 없듯, 날마다 한 낱말 두 낱말 매만지고 북돋우는 사람들 말과 글이 차츰차츰 아름답게 빛나지 않는 법이란 없습니다.

 하루에 한 마디씩 다듬으면 한 해에 삼백예순다섯 가지요, 열 해면 삼천육백쉰 가지이며, 서른 해면 일만 가지가 넘어섭니다. 바야흐로 서른 해라는 세월을 제 말과 글을 붙잡고 어루만질 수 있을 때,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슬기로움과 따스함이 고이 녹아들어 서로한테 좋은 벗님이 될 수 있습니다. 서른 해를 묵히지 않은 말이나 글은 부질없는 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어릴 때부터 둘레에서 도와주고 스스로 애썼으면 서른을 조금 넘어 아름다이 빛날 수 있고, 뒤늦게 깨달았어도 나이 예순이나 일흔에 아름다이 빛날 수 있습니다. 여든에 빛나도 좋고 아흔에 빛나도 훌륭합니다. 그예 빛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빛나고자 애쓴 사람은 모두 빛이 난 사람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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