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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숨겨진 별, 잭 런던을 찾아서

[서평] 잭 런던 걸작선 1 - <비포 아담>

등록|2009.03.29 11:38 수정|2009.03.29 12:49

▲ <비포 아담>겉표지 ⓒ 궁리



최근에 미국 문학이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동안 장르소설에 치우쳐 간헐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왜 그런 걸까? 미국의 순문학 작가들이 국내에서는 크게 호응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작년 코맥 매카시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인식이 크게 바뀐 듯하다. 궁리출판사에서 '잭 런던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잭 런던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도 그런 분위기가 한몫 했을 것이다.

잭 런던은 20세기 초에 활약하던 작가였다. 우리에게는 낯선 감이 없지 않은데 그의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소개됐다. 그의 소설이 이렇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놀라운 상상력이었고 두 번째는 인간의 어떤 본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잭 런던 걸작선'의 첫 번째 작품 <비포 아담>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려주는 소설이다.

<비포 아담>은 현대 미국의 젊은이가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꿈이 아니었다. 과거,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 원시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살던 그때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동굴에서 생활하는 부족의 일원이다. 나를 포함한 부족민들은 별다른 공동체 의식이 없다. 불을 사용하기 이전, 그러니까 야생에서 '날 것'을 먹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저 모여살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불행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즐겁다. 놀고 싶으면 놀고 춤추고 싶으면 춤춘다. 힘센 녀석이 기분 나쁠 때마다 화를 내서 누군가 죽는다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불을 사용하는 불부족은 뭔가 다른 것을 추구했다. 그들은 활과 화살이라는 도구를 이용할 줄 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부족의 사람을 공격한다. 화살과 활로 부상을 입히고 돌로 숨을 끊어놓는다.

그들은 왜 그런 것일까? <비포 아담>은 그것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예컨대 정복하고픈 욕심이다. 자신들보다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학살하면서 더 잘 살려고 하는 욕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잭 런던은 그것을 세밀하게 보여주는데, 문득 소름이 끼친다. 왜 그런가. 원시인들의 삶이 현대인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화란 무엇인가?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잭 런던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전쟁'과 '학살'로 표방되는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것을 원시인들을 통해 보여준다. 극렬한 풍자다. 아이러니해도 이렇게 아이러니한 일이 없다. 꿈으로 원시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잭 런던의 기발한 상상력은 그토록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짚어주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비포 아담>이 쓰여 진 시대가 20세기 초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썼다는 사실인데, 그 내용이 지금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풍자는 날카롭게 그 아이러니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시간이 지나서 빛을 발하기는 커녕, 그 빛나는 소설인 셈이다.

출판사는 잭 런던을 홍보하면서 "미국 문학 사상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작품들을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적어도 <비포 아담>만큼은 그것이 과장광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만큼 이야기의 힘이 뚜렷하게 보인다.

동시에 기대감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고 있던 좋은 작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포 아담>을 보면 일단 합격점이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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