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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안팎으로 해와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진다

수채화가 조현계, 1~7일 인사아트센터 <제17회 개인전>

등록|2009.03.29 16:03 수정|2009.03.29 17:01

수채화가 조현계목련꽃 보이는 풍경 ⓒ 이종찬




"수채화는 조현계에게서 표현의 도구나 수단이 아닌, 일체의 삶이었다. 영원한 물음이고 미지의 길이었다. 그는 이제 일생일대의 물음을 지니고 마지막 길 앞에 서 있다. 풀리지 않는 영원한 질문 앞에 서는 사람은 거룩하다. 그는 궁극의 문 앞, 깨달음의 길에 서서 영원을 바라보고 있다." -정목일(미술평론가, 수필가)

봄이 산하 곳곳에 꽃향을 그윽하게 내뿜으며 무르익어가고 있다. 봄은 바람에 향그런 꽃향을 퍼뜨리며 산하만을 황홀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봄은 그림 속에도 찾아와 꽃을 피우고 향기를 퍼뜨린다. 그림 속에 젖빛 목련을 피우고, 노오란 개나리와 유채꽃을 피우고, 사과꽃을 피우다가 심심해지면 그대로 한 폭 수채화가 된다. 

수채화가 조현계. 그는 지난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오로지 수채화만을 그리고, 수채화만에 포옥 빠져 사는 작가이다. 그에게 수채화는 단순히 그 어떤 대상을 그려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삶이자 희망이다. 그에게 수채화는 대자연과 하나가 된 몸과 마음이자 그 어떤 흔들림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걸어가는 길이다.  

그가 이번에 내거는 수채화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이 말을 하며 향기를 내뿜는다. 어찌 보면 대자연이 수채화 한 폭에 송두리째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바라보면 대자연이 수채화가 되었는지, 수채화가 대자연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다. 이는 대자연과 작가가 한몸이 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수채화가 조현계경남을 대표하는 수채화가 조현계(64)가 수채화 37년을 갈무리하는 전시회를 연다 ⓒ 이종찬




수채화가 조현계유채밭 ⓒ 이종찬



대자연을 알려면 대자연이 되어라

"그가 그려온 대상은 산과 바다, 꽃, 나무, 바위 등 자연물이다. 자연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세계이다. 자연은 신의 창조물이고 그 자체만으로 완벽과 완성의 세계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예술행위는 자연이 지닌 신비세계를 배우는 과정이요, 모방이 아닐 수 없다."-정목일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등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봄날. 경남을 대표하는 수채화가 조현계(64)가 수채화 37년을 갈무리하는 전시회를 연다. 4월 1일(수)부터 7일(화)까지 일주일 동안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17회 조현계 개인전이 그것. 이번 전시회는 오는 6월 9일(화)부터 14일(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도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수국의 속삭임, 목련꽃 보이는 풍경, 자굴산 기슭, 탱자나무, 목련, 밤의 숲, 감나무, 토담집, 탱자나무 보이는 풍경, 은행나무, 무학산 기슭, 개나리, 유채밭, 사과꽃이 필 때, 무학산의 봄, 장미의 노래, 산수국, 봄이 오는 언덕, 지리산 칠선계곡, 고향의 봄 등 60여 점이 지나치는 이들의 눈길, 발길을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수채화가 조현계는 "대자연을 알려면 대자연의 품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포옥 담궈 그대로 대자연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산, 강, 꽃, 나무, 들판에서 가장 마음이 통하는 소재를 찾아 그 뿌리를 찾으려 노력한다"며 "까닭에 이번 수채화는 자연 속에서의 명상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수채화가 조현계무학산 기슭 ⓒ 이종찬



수채화가 조현계사과꽃이 필 때 ⓒ 이종찬




그림 속에 내가 있고 그림이 걸어나온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따스한 봄날이어서 그럴까.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작품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꽃들이다. 겹겹 산등성이를 등진 숲속에 두 개의 커다란 목련나무가 마치 새로운 희망처럼 하얗게 피워낸 목련꽃(목련꽃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랜 불황에 찌든 고된 세상살이가 스르르 풀리는 듯하다.

티 없이 흐르는 강물을 노랑, 연초록빛으로 물들이며,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유채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련한 현기증과 함께 첫 사랑 그 여자 얼굴이 가물거리며 어느새 몸과 마음마저 노랑, 연초록빛으로 물든다. 그 노오란 유채밭 속에 내가 들어 있고, 어느 순간 노오란 유채밭이 이 세상 밖으로 은근슬쩍 걸어나온다.

노랑빛과 연초록, 헐벗은 갈색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다랑이밭(봄이 오는 언덕), 듬성듬성 집이 두어 채 있는 그 봄빛 가물거리는 언덕에 서면 졸음이 스르르 밀려들면서 옛 고향 품에 포옥 안긴 듯 포근하다. 이는 노랑빛과 연초록빛이 야트막한 집과 어우러져 있는 '고향의 봄', '토담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밖에 층층 기암절벽이 가로 막고 있는 바다 풍경을 그린 '매물도', '독도', 섬들이 고래등처럼 점점이 떠 있는 '욕지도에서', 대자연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독특한 색깔을 띤 물감과 터치로 그려낸 '영덕에서', '덕유산의 새벽', '덕유산', '지리산 칠선계곡' 등도 보는 이를 수채화 세상 속으로 그윽하게 빨아들인다.  

수채화가 조현계사랑 ⓒ 이종찬



수채화가 조현계그가 그려온 대상은 산과 바다, 꽃, 나무, 바위 등 자연물이다 ⓒ 이종찬



조현계 수채화, 집중력과 깨달음으로 얻어낸 광채

미술평론가 정목일은 "조현계는 그 누구보다 화가로서 직분에 성실했고, 자신의 조형의지가 투철하였으며,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간 궤적에 대해 경외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목일은 "서울에서 보면 변방이나 다름없는 척박한 문화환경에서 수채화만을 고집해온 한 작가의 일생과 좌표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평한다. 

정목일은 "수채화 속으로 한 삶이 지나가고, 수채화 속으로 뜨고 지는 일월이 있다. 그의 수채세계는 일생의 집중력과 깨달음으로 얻어낸 광채"라며 "그가 끊임없이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존재하는 자연법칙이며, 이를 수채미학으로 승화시켜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채화가 조현계는 "이번 전시회는 제 수채화 일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다. 5년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는 것도 새로운 충전을 하기 위해서다"라며 "수채화는 유화에 비해 표현력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지만 수채화 물감이 지닌 경쾌한 유동성과 순수하고 자연스런 흐름, 가식 없이 드러내는 천진성으로 자연과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말했다.

대자연이 곧 수채화가 되고, 수채화가 곧 대자연이 되게 만드는 수채화가 조현계. 마산에서 태어나 고향 땅을 묵묵히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한 길, 오로지 수채화에 포옥 빠져 외길을 걷고 있는 작가. 그가 오랜만에 나온 서울나들이에 봄볕 같은 따스한 햇살이 쫘아악 비추기를 빈다. 개막식은 1일 오후 5시 30분 인사아트센터 전시장.

수채화가 조현계수채화가 조현계는 1946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72년 제1회 개인전(수채화전)을 시작으로 지난 2008년까지 마산과 서울, 부산, 창원 등지에서 모두 16회 개인전을 열었다 ⓒ 이종찬



"조현계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워주는 달빛이나 노을이나 종소리와도 같은 만감을 감지할 줄 아는 화가이다. 자연과의 내면을 통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난 깨달음과 느낌은 신비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가 끊임없이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존재하는 자연법칙이며, 이를 수채미학으로 승화시켜놓고 있다" -정목일

수채화가 조현계는 1946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72년 제1회 개인전(수채화전)을 시작으로 지난 2008년까지 마산과 서울, 부산, 창원 등지에서 모두 16회 개인전을 열었다. 제2회, 3회, 4회 마산에서 열린 개인전은 모두 유화전.

단체전, 초대전으로는 1980년 서울미술회관에서 열린 지방작가초대전을 시작으로 1981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수채화협회전, 대만전, 파리전, 1983년 한중일 수채화 교류전, 1984년 이기회 초대전(일본 고베),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현역작가 초전초대전(일본 동경), 1997년 주일 한국대사관 문화원 초대전(동경), 2004년 오늘의 한국수채화 대표작가 24인 초대전(코엑스몰) 등 수 차례 있다.

1989년에는 AA Competition 공로상을 받았으며, 제1회 동서미술상, 시민불교 미술상을 받았다. 한국수채화협회 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수채화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2007년) 수채화부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그는 지금 한국수채화협회 이사, 경남수채화협회 고문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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