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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본 19세기 조선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서평] 조한범의 <문명과 야만>을 읽고

등록|2009.03.29 17:01 수정|2009.03.29 17:01

▲ <문명과 야만> ⓒ 책세상

우리는 팔만대장경, 한글, 조선왕조실록 따위를 말하면서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런 자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해도 조선은 문명과 야만 중 '야만'에 가까운 나라였다. 서양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조현범은 <문명과 야만>-부제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을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를 타자의 위치에 고정시켰던 서양 선교사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타자화되어간 우리 초기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시각을 확인하는 조현범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동남아시아를 바라는 시각 역시 19세기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았던 '야만'이라는 시각과 별 다르지 않다점에서 반추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선교사들이 우월성으로 조선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현범은 제1장에서 말한다. 19세기 서양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 기독교 해외 운동의 붐,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도덕률의 팽창, 이국 취향과 여행기 장르의 성공이라는 시대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였는데 선교사들 역시 시대정신으로 먹고 자란 이들었을 뿐이다.

사실 선교사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는 명목이었지만 서구 제국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이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백인 우월성이라는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았다. 우월성으로 바라본 조선은 '야만'이었다. 서양의 문명화된 나라들이 비서양의 뒤떨어진 나라들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명화 사명은 식민지 지배는 신이 내리 사명이 되었다. 

"문명화 사명은 제국의 황제와 식민 관료에서부터 식민지 쟁탈 전쟁을 벌이는 군대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 비유럽 지역을 탐사하는 탐험가와 인류학자들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에 진출했던 서양 선교사들 역시 이런 시대 정신을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고 있엇던 셈이다."(40쪽)

19세기 시대정신을 먹고 자란 선교사들이 19세기 조선이 들어왔어서 조선 사회와 조선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았는지 제2장에서 살핀다. 조범현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김대건 신부 체포 후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자 '어리골'이라는 곳으로 도피 한 후 조선과 조선인들 삶을 닮은 긴 편지를 적은 <어리골서한>이라는 자료와 조선사회를 소개하는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들 남긴 자료들에 주목한다.

다블뤼 주교 시선은 복합적이다. 조선 정치 지배 집단은 '부패한 양반과 관료들'로 왕과 백성 중간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횡령과 착취를 일삼는 세력이었다. 또 설득력 있는 사회를 질서를 갖춘 나라였다. 조선의 쇄국 정책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지만 민족성은 야만인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을 가졌다고 보았다. 특히 조선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경박한 자들이라고 했다.

다블뤼 주교가 바라본 조선에 대한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은 '폭식 습관'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정말 폭식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극단적인 표현도 나온다. 식탐을 악담으로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조선에서 15년 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무시만 할 수는 없다.

"식탐이 조선인들이 가진 악덕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의정이나 임금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블뤼 주교가 조선인들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적 사회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 성격인 까다로움, 탐욕스러움, 수다스러움을 조선인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런 탐욕스러움에서 기인하는 생활 습관으로 폭식과 폭음의 관습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76~77 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86-88쪽 인용)

이런 시각으로 말미암아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야만으로 생각했을 것같지만 아니었다.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칭찬한 압권은 '공동체 정신과 상호부조 생활'이었다고 조현범은 말한다. 상호부조와 자선 행위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결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상화 부조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애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다."(85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75-76쪽 인용)

다블뤼 주교 이후 조선은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를 선교지 문명을 기독교 문명으로 개화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와 병원 따위로 조선에 정착한다.

개신교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거리는 불결하고, 좁았으며 집들은 음침했다.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청교도 후예답게 조선인들은 게으른 천성을 가졌고, 복음 전파가 목적인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혁파하는 것이 개신교 선교사들이 할 일이었다. 릴리어스 언더우드 말을 빌어보자.

"조선 사람들은 서양 문명에서 최선의 것, 즉 사람의 힘을 분발시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동력이 바로 기독교 신앙과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기독교의 원리, 그리고 이 원리가 실천되는 곳, 이 정신이 숨쉬는 곳, 거기에서 문명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162쪽)

책을 덮어면서 든 느낌은 19세기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 본 시선과 지금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불과 백여년 전 서양인들에게 타자화되어 야만스러운 민족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에 울분을 토하기 전, 우리도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문명과 야만> 조한범 지음 ㅣ 책세상 펴냄 ㅣ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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