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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어색하다는 생각을 버려!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등록|2009.03.29 18:50 수정|2009.03.29 18:50

▲ <화이트 타이거>겉표지 ⓒ 베가북스



하인 출신의 남자가 중국의 고위 관료에게 편지를 쓴다. 인도에서 사업하는 것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뭔가 모순적인 대목이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는 사회다. 하인이 사업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작은 하인이 자동차 운전수가 되려고 노력했던 과정에 관한 것이다.

남자의 이름은 발람. 부모님이 지어준 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지어준 것이다. 누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카스트 계급의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다 그랬다. 사실 이름 같은 것이야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존재였다.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옳든 그르든 그게 현실이었다.

발람은 성공을 꿈꾼다. 대단한 건 아니다. 멋진 유니폼 입고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싶다. 어찌 보면 소박한 꿈이지만, 그가 그걸 이룰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그는 인내의 정신으로 해낸다. 지주집에 들어가서 운전사가 된 것이다. 어차피 하인의 신분이지만, 그래도 발람은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다.

발람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주인의 발도 열심히 닦고 시키는 것도 열심히 한다. 주인의 아내가 만취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람을 죽였을 때, 대신해서 감옥에 가려고 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것이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발람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운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람은 어느 순간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유라고는 개미 몸통만큼도 없는 그 삶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걸까? 발람은 부정부패를 일삼는 주인과 나라의 관리들을 보면서 '쓰레기'같은 자신의 처지에 분노한다. 그는 작은 반란을 일으킨다. 주인 몰래 '삥땅'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분노는 더 커진다. 그래서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을 저지르고 남쪽으로 도망간다.

<화이트 타이거>는 하인이었다가 살인자가 된 발람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그 힘이 녹록치 않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해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람이 보고 들은 것들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인도다. 지금 인도의 삶을 담고 있다.

그렇게 묘사되는 인도는 어떤 것인가?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 먹으며 겨우 연명해야 하는데, 인도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돈이 없고 계급이 낮으면 자유도 없다. 인간적인 것을 꿈꾼다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할 수도 없다. 인도는 그렇게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다.

<화이트 타이거>는 소설이지만 하나의 다큐같다. 인도의 구석구석을 충실하게 묘사하면서 어떤 것들, 예컨대 인도의 부조리한 것들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휴먼드라마 같다. 그 상황에서도 자유롭고 싶어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소설의 힘이 묵직해진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문학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다.

인도에 관한 소설은 '어색'하다는 말이 있다. 어렵지는 않은데, 읽기에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 터라 <화이트 타이거>가 소개된 것이 반갑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함께 국내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견을 뛰어넘을 만큼, 힘이 묵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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