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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66) 매뉴얼

[우리 말에 마음쓰기 594] ‘메뉴얼대로 대량생산한 개성 없는 상품’ 다듬기

등록|2009.03.30 11:04 수정|2009.03.30 11:04

- 매뉴얼/메뉴얼(manual)

.. 대기업에서 메뉴얼대로 대량생산한 개성 없는 상품을, 지금까지는 시장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죠 ..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258쪽

 '대량생산(大量生産)한'은 '엄청나게 만든'이나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낸'으로 다듬습니다. "시장(市場)이 필요(必要)로 했기 때문에"는 "팔려 나갔기 때문에"나 "사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로 손보고, '성장(成長)할'은 '커 나갈'로 손봅니다. '개성(個性) 없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밋밋한'이나 '재미없는'이나 '뻔한'이나 '멋없는'이나 '똑같은'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manual
 │━ a.
 │  1 손의;손으로 하는, 수동의;인력을 요하는;수공의
 │  2【법】 현재 있는, 수중에 있는
 │  3 <책이> 소형의, 편람식의
 │━ n.
 │  1 소책자;취급 설명서, 편람, 안내서, 입문서, 지도서
 │  2【군사】 (교련) 교범
 │  3 수동 소화 펌프
 │  4【음악】 (오르간의) 건반
 │  5 = MANUAL TRANSMISSION
 │  6【컴퓨터】 수동
 ├ 매뉴얼(manual) = 설명서. '설명서', '사용서', '안내서'로 순화
 │   - 실험 매뉴얼 / 편집 매뉴얼 / 매뉴얼을 참조하다
 │
 ├ 메뉴얼대로
 │→ 주문서대로
 │→ 짜여진 틀대로
 │→ 짜 놓은 틀대로
 └ …

 '설명서(說明書)'를 가리킨다는 '매뉴얼/메뉴얼'이라고 하지만, 영어 '매뉴얼' 쓰임새는 '설명서'를 뛰어넘었습니다. 국어사전을 살피면 이밖에도 '사용서'와 '안내서'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영어 '매뉴얼'을 안 쓰면서 '설명서-사용서-안내서'로 쓰는 분은 오늘날 이 땅에는 아주 드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전화 하나를 장만하여 쓸 때에도, 자전거 한 대를 마련하여 탈 때에도, 모두들 '매뉴얼'을 찾을 뿐입니다.

 ┌ 착착착
 ├ 똑같이
 ├ 판박이처럼
 ├ 같은 모양새로
 └ …

 한편, 공장에서 어떤 물건을 찍어낸다고 할 때에도 '매뉴얼'이라는 말이 쓰입니다. 예전에는 '주문서'라고 했습니다만, 이제는 이런 말도 거의 안 쓰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공장이든 회사이든 제 일터 이름을 알파벳으로 적는 세상 흐름이며, 영어 아닌 일터 이름이란 하루하루 찾아보기 어렵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 그대로 우리 말이 되고 글이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결과 자락 그대로 우리 말이 되며 글이 됩니다. 반드시 토박이말을 아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토박이말만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쓸 말은 쓰고 거를 말은 거르는 말본새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알맞고 올바르게 말하고 글쓰던 말결이 없어졌다는 소리입니다.

 ┌ 길잡이글 / 길잡이말
 ├ 이끔글 / 이끔말
 ├ 알림글 / 알림말
 ├ 도움글 / 도움말
 └ …

 설명서란 "설명하는 글"입니다. 설명이란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설명서'는 "밝혀 말하는 글"이요, 도와주는 글이기에 '도움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고 어디로 나아가면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니, '길잡이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알맞고 바른 쪽으로 이끌어 주니 '이끔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대목을 알려 주니 '알림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길잡이글이든 이끔글이든 알림글이든 도움글이든, 우리 깜냥껏 빚어내었을 법한 낱말이 한 번도 빚어진 적이 없습니다. '도움말' 한 마디는 겨우 빚어졌습니다만, 고작 '조언(助言)'을 가리킨다는 자리에만 머물고 맙니다. 도와주려고 쓰는 글이면 '도움글'이건만, 이런 낱말조차 쓰여지지 못합니다.

 ― 일러두기 / 미리읽기 / 미리보기

 '이끔글-이끔말'을 쓰듯 '밝힘글-밝힘말'을 쓸 수 있습니다. '일러두기'나 '미리읽기-미리보기' 같은 말을 때와 곳을 살피면서 넣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쓰이는 자리는 너무 좁고, 우리 스스로 몹시 좁은 곳에만 가두어 아주 살짝 쓰고 말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쓰면서 이런 말이 어떻게 빚어졌고 얼마나 쓰임새가 넓으며 어떠한 길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면서 우리 생각과 삶을 담아내도록 북돋우면 좋을까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좋은 말을 써도 좋은 줄 모르고, 알맞는 말을 써도 알맞는 줄 모르며, 싱그러운 말을 써도 싱그러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너무 매여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 생각이 지나치게 얽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 우리 삶이 너무 메마르고 팍팍하기 때문인가요. 우리 생각이 그예 텅 비었거나 꽉 닫혀 있기 때문인가요.

 그토록 많은 영어는 거리끼지 않고 빨아먹으나, 몇 안 되는 토박이말은 어느 하나 빨아먹는 일이 없습니다. 그토록 끝없이 새 영어는 쉬지 않고 껴안으나, 몇 안 되는 토박이말은 껴안을 생각조차 품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영어바람이라 하거나 '영어 미친바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이 통째로 나사가 풀렸거나 톱니가 빠졌거나 실타래가 엉겨 있구나 싶습니다. 자꾸 꼬이거나 오래도록 발목 잡혀 있거나 얄궂은 데로 끄달리고 있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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