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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 나리들의 '굴욕'과 '어굴'

[주장] 그들이 향응 받을 때 울고 있었을 우리 아버지들

등록|2009.03.31 12:06 수정|2009.03.31 12:06

▲ 청와대 본관 ⓒ 이종호



문제의 사건은 지난 25일 밤 10시 40분쯤 일어났다.

"전·현직 청와대 행정관 세 명이 (직무와 관련된) 업체 관계자한테서 술 접대를 받고 그 중 한 사람은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고, 나머지 두 사람도 '룸살롱 2차'를 나갔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는 게 언론의 보도였다. 결국 보도는 사실로 확인됐고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성매매'라고 했지만 청와대 행정관이 업무 관련 업체의 접대를 받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내용을 두고 생각해보면 누가 봐도 틀림없는 '성접대', '성상납'이다. 또 그 자리가 케이블 방송사 합병 의결을 앞두고 있었던 자리라고 하니 단순 '접대'자리는 아니었던 듯하다. 도덕성의 문제야 당연한 것이고, 권력과 특정 업체의 전형적인 짝짜꿍의 대표적 사례다. '법과 원칙'을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잠꼬대마저도 그렇게 할 것 같은 정부의, 행정관 나리들이 일으킨 굴욕(?)사건이다.

이들을 처음 잡아낸 경찰은 그들이 청와대 행정관인 줄 몰랐다고도 하고 접대향응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도 한다. 또 청와대 행정관이 적발된 장소는 처음에 알려진 안마시술소가 아니라 모텔이라고 뒤늦게 말을 고치기도 했다. 오락가락 갈팡질팡한다. 청와대는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30일 밤)까지 침묵하며 묵언정진 수행 중이다. 아니 어쩌면 간절한 기도 중이신지도 모르겠다.

청와대 행정관 나리들, '어굴'하시죠?

'그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억울하다(애매한 일을 당하여 분하고 답답하다)'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경찰에 들키려고 간 룸살롱이 아닌데, 업체 관계자가 간곡히 권하는 바람에 마지 못해 나간 2차인데…, 싶을 것이다. 만날 일수 도장 찍어가며 룸살롱과 2차를 다닌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그날 재수 없게 딱, 걸린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나 국민들이 보기엔 참 '어굴한(경우에 꿀리거나 논리가 맞지 아니하여 대답이 시원스럽지 못하다)' 일이다. 스스로 '억울하다'면 떳떳이 밝히고 해명하면 될 터인데 횡설수설에 긴 침묵, 그리고 사표 한 장으로 '어굴한' 일만 더욱 크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입을 다문 청와대나 단순한 성매매 사건으로 보고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사에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경찰이나 모두 '어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미리 알기라도 한 듯 27일 대통령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근무자는 윤리·도덕적 측면에서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이 일로 청와대에 음주자제령이 내려졌다"고도 한다.

이 두 말씀을 종합하면 이렇게 된다. '청와대 근무자는 윤리·도덕적 측면에서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니 음주를 자제하라.' 다시 말하면 음주를 자제하면 윤리·도덕적으로 부끄럼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음주를 자제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된다. 음주만 자제했더라면 이 모든 게 해결될 일이었단 말인가. 다시 참 '어굴'해진다.

그들이 향응 받을 때 울고 있었을 우리 아버지들

청와대 행정관이 업무상 관련이 있는 업체의 후원(?)으로 룸살롱에서 고급술을 마시고 2차를 나가 성상납을 받는 동안에도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아버지들이 있었고,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아들·딸들이 있었다.

올해 2월 기준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가 1623만 명으로 통계청이 4주 기준 고용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실업률이다.

불황일 때 오히려 강세를 보이는 서민의 술, 소주의 소비량마저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감소했다고 한다. 퇴근길에 소주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시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한 청와대 식으로 말하자면 국민 모두 윤리·도덕적으로 거듭나게 생겼다.

국민들의 이런 애타는 사정에는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부적절한 향응 접대를 받고 거기에 성매매까지 한 일을 별 게 아니라는 듯 덮어버리려 하고, 사표를 수리하는 정도로 무마시키려 침묵하는 것은 서글프다.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할 모습치고는 참 안됐다 싶어 측은하기도 하다.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윤리·도덕의 기준은 자신에게 가장 날카롭고 적확하게 적용하는 것이 정의롭다. 자신에게는 묻지마식 기준이고, 남에게만 가혹하게 적용하려 한다면 그건 이미 게임의 룰을 벗어났다. 그것만으로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경찰도 더 늦기 전에, 더 이상 감추거나 축소하려 들지 말고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싶다. 정의로운 게임의 룰을 지켰으면 싶다. 그래야 화해와 용서라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할 수가 있다. 자신마저 속이려는 거짓말은 스스로 상처만 더욱 깊게 할 뿐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금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金樽美酒 千人血),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 萬姓膏). 촛농 떨어질 때 백성들 눈물짓고(燭淚落時 民淚落),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歌聲高處 怨聲高)"라는 옛 말씀이 '그들'에게도 고스란히 따라붙고 있음을 곰곰 되새겨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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