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제주 "참담한 역사를 되돌리려 하나"
4·3사건 61주년 앞두고 '특별법 개정 발의' 등에 발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4·3 너븐숭이 유적지다. 이곳에는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을 묘사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윤성효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제주. 자연을 닮으며 아름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그것도 제주4·3사건 61주년을 앞두고서다.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제주4·3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개정안과 극우보수단체들이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 때문이다. 4·3특별법 개정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 등 관련 단체는 연일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그런데 6년여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나라당 권경석(창원갑) 의원 등 14명은 최근 국회에 "4·3사건 등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이 위법하면 국무총리가 재심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거나 "4·3위원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4·3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4·3 사건 진압 작전에 참가했던 예비역 장성 등으로 이뤄진 '제주4·3사건 역사 바로 세우기 대책위원회'는 최근 "4·3 특별법이 인정한 희생자 1만3000여명 중 1540여 명은 남로당 간부이거나 폭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로 희생자 명단에서 빼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범도민대책위, 4월 3일 '헌법소원 철회 촉구' 집회
개정안 제출과 헌법소원에 대해 제주사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에 이어 집회도 열린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해 공식사과까지 했지만, 지난해 열린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는 기념식에 참석할지 여부에 관심이 높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4월 3일 오후 1시 30분 제주시 광양로터리에서 집회를 연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4·3특별법 개정안과 보수 단체가 낸 4·3사건 헌법소원 철회를 주장할 예정이다.
앞서 4·3특별법개정반대범도민대책위원회는 31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제주도 정당 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한다. 범도민대책위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4·3위원회 폐지' 발언을 시작으로 수구집단들의 반역사적 왜곡, 폄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밝혔다.
범도민대책위는 "제주도에 있어서 4·3 만큼은 여야도, 보수 개혁도 구분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전국적 정치지형에 위력 있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제주 정당 대표자 연석회의를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석회의에는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제주도당 등이 참석한다.
지난 24일 범도민대책위와 제주특별자치도연합청년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무분별한 4·3모독,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1999년 12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4·3특별법은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면서 "그런데도 제주도민에 대한 무참한 4·3학살을 자행한 직접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앞세운 수구집단이 4·3희생자를 두 번 세 번 죽이고, 유족과 도민의 가슴에 다시 대못질을 해대는 작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나라당과 수구집단은 4·3의 진실을 왜곡하며 희생자의 명예를 폄하하고, 유족을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에 빠트리려는 책동을 당장 멈추고, 제주도민과 역사 앞에 엎드려 사죄할 것"과 "만일 어리석은 망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제주도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엄중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4일 집회 뒤 유적지 답사
4·3 61주년을 앞두고 한승수 국무총리 등 인사들과 각종 단체들의 제주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총리는 지난 27일 제주도를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헌법소원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한 총리는 "정부는 제주4·3사건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4·3위원회 활동 등과 관련에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에 대해 정부로서는 유감스럽고, 실질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분도 빠짐없이 명예회복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20일 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유족들을 위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 의장도 보수세력들의 헌법소원과 특별법 개정안 발의 등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4일 전국 노동자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에서 집회와 함께 4·3유적지 순례를 벌인다. 관음사는 오는 4월 1일 4·3원혼천도대재를 열고, 기독교대한감리회(제주)는 7일 평화예배를 연다.
제주공항 발굴지 수습 유해 유전자 감식 작업
4·3사건 61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4·3평화기념관에서는 서각전시회와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으며, 평화공원에서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4·3연구소는 31일 오후 열린정보센터 6층 강당에서 "증언본풀이 마당"을 연다. 양일화(79), 강양자(66), 김명원(76), 송옥춘(82)씨가 참석해 증언한다.
어린이웅변대회가 1일 평화기념관, 위령제 전야제례가 2일 오후 평화공원, 전야제가 2일 저녁 문예회관, 희생자 각명비 제막식이 3일 오전 평화공원, "제61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3일 오전 평화공원에서 각각 열린다.
또 "평화음악제"가 3일 저녁 7시 문예회관, 미술제가 3~8일 사이 문예회관, '찾아가는 현장 위령제'가 5일 오전 어영공원 맞은편 공터, 재경 4·3유족회 토론회가 9일 서울 상록보육원 등에서 열린다.
한편 4·3희생자유족회 소속 유족들은 제주국제공항 2차 발굴지에서 수습된 75구의 유해에 대한 유전자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유족회는 30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유해를 제주대 법의학교실로 운구하기 전에 위령제를 지냈다.
4·3연구소는 제주공항에서 2차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미 2007년 8월 30일부터 12월 15일까지 이곳에서 2단계 1차 B지점 유해 발굴 사업을 벌여 학살·암매장 구덩이와 유해 100여 구, 유류품 659점을 발굴 수습했다.
▲ 너븐숭이 4·3기념관. ⓒ 윤성효
너븐숭이 기념과 개관, 희생자 수 다르게 표기
제주 4·3사건의 대표적 유적지가 '너븐숭이'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데,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일대에서 4·3사건으로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아기들도 희생되었는데, 지금도 애기 무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근 '너븐숭이 4·3기념관'이 새로 만들어졌다. 너븐숭이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으로 이곳에는 '순이삼촌 문학기념비'가 조성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북촌리 4·3위령비'와 '평화·상생·번영의 탑' 등이 있다. 그런데 북촌리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숫자가 안내판과 표지석마다 다르다.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인 4·3사업소가 세운 2개의 안내판에는 전체 희생자 수가 443명인데 유족회에서 세운 '제주 4·3 희생자 북촌리 원혼 위령비 건수기'에는 439명이고, 이름을 새겨 놓은 비석 뒷면에는 436명이다.
희생자 수가 다른 이유에 대해 이재후 '북촌리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법적으로 신고할 때의 희생자 수와 마을 원로회의에서 자체 조사할 때의 희생자 수가 차이가 있었다"면서 "행방불명되거나 연고자가 없고, 다른 곳에 사는 경우 빠지기도 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 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에 세운 너븐숭이 안내판에는 희생자 숫자가 443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윤성효
▲ '북촌리 4·3희생자 유족회'에서 세운 위령비에 달린 비석에는 희생자 숫자가 439명이거나 436명으로 표현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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