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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12) 시간 읽기

[우리 말에 마음쓰기 595] '낮은 노동 가격을 유지', '경제적 수익을 창출' 다듬기

등록|2009.03.31 11:51 수정|2009.03.31 11:51
ㄱ. 낮은 노동 가격을 유지

.. 우리 회사도 언제나 낮은 노동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도착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직원 식당 음식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  《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이후,2008) 101쪽

'노동(勞動) 가격(價格)'은 '일삯'이나 '품삯'이나 '일한 삯'으로 손질합니다. "유지(維持)하기 위(爲)해"는 "지키려고"로 다듬고 '노력(努力)했다'는 '애썼다'나 '힘썼다'로 다듬고, '도착(到着)한'은 '닿은'이나 '온'으로 다듬어 줍니다.

 ┌ 낮은 노동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
 │→ 일삯을 조금만 주려고
 │→ 적은 일삯으로 부리려고
 │→ 일꾼을 쥐꼬리만한 돈으로 부려먹으려고
 └ …

학문하는 분들 글은 학문하지 않는 분들이 읽기 어렵게 짜여 있기 일쑤입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는 분들 글은 신문기자로 일하지 않는 분들이 읽기 까다롭게 엮여 있기 일쑤입니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분들이 읊는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대학교수나 대학생을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수나 대학생이 학교 문턱 못 밟은 분들도 알아듣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거의 못 봅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배운 티를 내는 우리들입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만, 배운 우리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빳빳이 치켜듭니다.

ㄴ. 경제적 수익을 창출

.. 문화도시의 대두는 문화도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에서 나왔다 ..  《유승호-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일신사,2008) 71쪽

"문화도시의 대두(擡頭)는"은 낱말만 손질하기보다는 말차례까지 손질해서, "문화도시는 (이러저러해서) 떠올랐다"나 "문화도시 이야기는 (이러저러해서) 나오게 되었다"로 적어 봅니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可能性)의 발견(發見)에서 나왔다"는 "할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나왔다"나 "할 수 있음을 보면서 나왔다"로 고쳐 줍니다.

 ┌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
 │→ 돈이 된다는
 │→ 돈벌이가 된다는
 └ …

한 마디면 넉넉한 말을 두 마디나 세 마디로 늘여야 할 까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열 마디나 스무 마디로 늘여야 할 일이 있기도 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왜 늘여야 할까요. 꼭 늘여야 할까요.

보기글을 통째로 고쳐쓰고 싶습니다. "문화도시는 문화도 돈이 될 수 있음을 깨닫자 떠오르게 되었다"로. "문화도시는 문화도 돈벌이가 잘됨을 알게 되자 떠올랐다"로.

ㄷ. 다섯 시 오 분 전 (시간 읽기)

.. 이것만 끝냈는데도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오 분 전이었다. 망했다. 보나마나 외할머니 잔소리를 벗어날 수 없는 거다 ..  《강무지-다슬기 한 봉지》(낮은산,2008) 108쪽

'망(亡)했다'는 '끝났다'나 '끝장이다'로 손봅니다. '젠장!'이나 '이런!'이나 '제기랄!'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벗어날 수 없는 거다"는 "벗어날 수 없다"나 "벗어날 수 없겠다"로 다듬습니다.

 ┌ 다섯 시 오 분 전이었다 (x)
 └ 네 시 오십오 분이었다 (o)

언제부터인가 한국사람들이 한국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고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버리고 한자말을 잔뜩 쓰는 한편, 우리 말투를 잃거나 버립니다. 서양 말투가 우리 말투에 스며들고, 일본 말투가 우리 말투로 파고듭니다.

'-적'과 '-의'를 아무 데나 함부로 붙이는 일은 일본 말투 탓입니다. "한 잔의 커피"나 "또 하나의 가족", "동네의 한 어른"이나 "한 프랑스사람"처럼 쓰는 일은 서양 말투 탓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읽을 때 "몇 시 몇 분 전"처럼 쓰는 일이 서양 말투에 물든 모습입니다.

'다섯 시 오 분 전'이라 할 때에는, "다섯 시하고 오 분이 아직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투로는요. 그러나 서양사람은 "네 시 오십오 분"이라는 뜻으로 '다섯 시 오 분 전'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다섯 시가 안 되었음"을 이야기하고자 이와 같이 시간을 읽습니다.

 ┌ 다섯 시가 거의 다 되었다
 ├ 다섯 시까지 오 분을 남겨 놓았다
 ├ 오 분 더 있으면 다섯 시였다
 ├ 오 분만 있으면 다섯 시였다
 └ …

처음 영어를 배우던 중학생 때를 떠오릅니다. 그때 영어 교사는 시간읽기를 가르쳐 주면서 '다섯 시 오 분 전'이라는 말투가 참 얄궂다고, 시간을 어떻게 이렇게 읽느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문화와 삶으로는 "네 시 오십오 분"을 '다섯 시 오 분 전'처럼 말하면 헷갈리거나 잘못 알기 마련이니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다른 동무들도 '다섯 시 오 분 전' 같은 말투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처럼 말해서는 시간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동무들은 조금씩 이런 말투를 장난처럼 따라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우리 문화와 삶에서는 어울리지 않던 말투'가 자기 말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영어 교사가 했던 말을 깡그리 잊습니다. 언제 그랬냐는듯,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 아직 다섯 시가 안 됐다
 ├ 조금 있으면 다섯 시이다
 │
 ├ 막 다섯 시가 넘었다
 ├ 이제 다섯 시가 넘었다
 └ 다섯 시를 조금 넘겼다

다섯 시가 조금 안 되었다면 "다섯 시가 조금 안 되었다"고 하면 됩니다. 다섯 시를 막 넘겼다면 "다섯 시를 막 넘겼다"고 하면 됩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말하는 우리 말입니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옆사람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우리 말이에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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