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내가 미쳤지, 무슨 무병장수를 누리겠다고

여행지에서 파는 건강보조식품, 덥석 사고 혈압 오르다

등록|2009.04.03 13:47 수정|2009.04.03 13:47

▲ 지병이 있는 사람은 건강식품을 섭취할 때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나는 고혈압이 있어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지난해 11월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았다. 헌데, 검사를 끝낸 의사가 "갑자기 혈압이 많이 올라갔네요,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면 무슨 다른 약 복용하는 것 있으세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의사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봤다.

"아, 네. 집에 일은 없고요. 산삼으로 만든 건강보조식품을 얼마 전부터 먹고 있어요."
"혈압이 높으신 분이 그걸 왜 잡수세요? 그거 잡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세요?"
"그냥이요."
"그거 끊으세요."
"아... 네~"

그렇게 얼마 동안 먹던 건강보조식품을 끊고 나자 혈압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나의 생활을 돌아봤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술을 많이 마신 적도 없었고 담배를 피운 적도 없었으며 체중이 늘거나 신체적으로 힘든 일도 없었다. 또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전과 달라진 점은 지난해 11월 제주도 여행 때 사온 건강보조식품을 먹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의사가 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을 찾았다. 약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약사도 한 마디 거든다.

"그 사람 의사 아니잖아요? 혈압도 높으신 분이 그런 걸 함부로 드시면 어떻게 해요."

아… 그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그때 그걸 덥석 사버린 내가 정말 신기하고 이상했다. 여행을 가면 그곳 특산물 정도만 사오곤 했는데, 그땐 뭔가 달랐다.

변비, 고혈압, 당뇨, 비염 '등등'에 모두 좋다고?

지난해 11월 언니와 올케, 나는 제주도로 3박4일 여행을 갔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귤농장으로 간다"는 가이드의 말이 들려왔다. 그 말에 농장을 둘러본 뒤 관광객에게 싱싱한 귤 살 기회를 주는가 보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농장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건장한 남자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건강보조식품을 재배하는 시험관이 놓인 곳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곳은 사진촬영도 금지였다. 남자는 몇 가지 설명을 한 뒤 일행들을 다른 공간으로 이끌었다. 

앞뒤 출입문을 닫고 여성 3~4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 여성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차분한 목소리에 다소곳한 태도로 설명하는 그는 무척 침착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강보조식품은 변비가 심한사람, 소변을 봐도 갑갑한 사람, 고혈압, 당뇨, 비염 등에 효능이 있고, 며칠만 먹으면 숙변까지 빠져서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했다.

설명이 끝난 뒤 맛을 보라고 하면서 건강보조식품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의논을 하는 듯했다. 고혈압과 비염이란 소리에 나도 귀가 솔깃했다. 나는 고혈압이고 딸아이는 비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터라 마음이 흔들린 것이 사실이었다.

뭐에 홀린 듯, 수십만원짜리 약을 덥석 사다

▲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3월 24일, 건강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허위·과대 광고한 192개 인터넷 사이트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나와 올케는 언니한테 가서 "언니, 이거 살 거야?"라고 물었다. 언니는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사야지. 저렇게 좋다는데..."라고 했다. 올케 역시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나도 잠시 살까 말까 망설였다. 한 상자를 다 사는 건 좀 그랬고, 올케랑 반반 나눠 샀으면 싶었다.

올케에게 "우리 반반 나누어 살까?"라고 했더니 올케는 "그냥 한 상자씩 다 사요"라고 했다. 한 상자씩 사면 작은 거 하나는 서비스로 더 준다고 했다.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그곳을 둘러쌌던 여성들이 빨리 사라고 재촉했다. 카드도 된다면서 부추겼다. 약간 다그치는 분위기였지만 물건에 혹한 우리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곳에 온 사람들 몇은 산삼으로 만든 건강보조식품을 사들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우리 세 여자들도 6개가 든 1상자와 보너스로 한 개씩을 더 받아들었다. 가이드의 기분이 좋은 것을 보면 많이 판 듯했다.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오후 6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저녁을 먹은 뒤 건강보조식품을 풀어봤다. 

그러나 상자를 열어본 뒤 '내가 이걸 왜 샀지?'란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 잠시 미쳤었나봐. 비싼 돈 주고 도대체 이걸 왜 산 거야? 우리도 이렇게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으니, 노인네들한테 뭐라고 할 말도 없다."
"그러게요."

내가 "이거 반품시켰으며 좋겠다"고 하니 올케는 "어떻게 반품을 시켜요, 거기까지 가야 하는데, 그냥 잡수세요"라고 한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반품시키는 절차가 복잡해서 포기 하고 말았다. 반품을 시키려면 산 곳으로 가야한다고 설명서에 기재되어있었다. 그 후 우리는 나머지 제주도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복용 10일째, 안정됐던 혈압이 수직 상승

집에 와서 남편에게 건강보조식품을 샀다고 하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런 걸 다 사오고 웬일이야? 그런데 이거 바가지 쓴 거 아니야?"
"내가 누구야? 아무거나 사오는 사람이 아니잖아?"

남편도 평소 내 습관을 아는 듯, 이내 수긍했다. 나도 속으로는 엄청 후회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하여 다음날부터 그 건강식품을 복용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 사온 것이기에 하루에 두 번씩 아주 열심히 복용했다. 남편이 먹지 않으면 챙기기까지 하면서.

처음 2~3일은 진짜 그곳에서 설명한 대로 효능이 나타나는 듯했다. 하지만 4~5일 지나면서부터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무거워졌다. 그리곤 10일쯤 지났을 때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은 건데, 그런 진단이 나온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혈압이 높아지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고 했다.

난 혹시 몰라 건강보조식품을 산 곳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곤 나에게 나타난 증세를 이야기 하자, '호전반응이니까 며칠 더 복용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의사 선생님이 먹지 말라고 했어요"라고 하자 그들은 두말도 않고 반품해 준다고 했다. 그땐 이미 딸아이와 아들에게도 준 뒤라, 남은 몇 개만 택배로 반품시켰고, 2개 값 정도의 금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결국 병원과 집을 오가길 두 달여, 드디어 새로 처방해준 약을 먹고 부작용도 없이 정상혈압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의사 선생님도, 혈압을 체크하던 간호사도, 나도, 약사도 모두 웃었다. 하지만 혈압 약은 두 알로, 두 배 늘었다.

건강식품을 오랫동안 복용하면서 효과를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고혈압, 당뇨 등 지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의사의 정확한 처방을 받고 복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난 요즘 그동안 가끔씩 즐기던 맥주 한 두 잔도 끊었다. 예전의 혈압을 되찾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건강식품은 적어도 6개월~1년을 복용해야지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