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의 갈림길에서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26] 제6장 사과벌레
"연못에 비가 내리면 수면이 출렁일 것이고 연못 속의 잉어들은 왜 갑자기 하늘이 마구 흔들리는지를 모를 것이다. 그러니 잉어들은 지금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잉어 한 마리를 집어 잠깐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물에 넣는다면 그 잉어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 잉어는 하늘 밖에 갔다 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대한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에도 또 하늘이 있으며, 물도 없는데 숨 쉴 수 있고, 심지어는 지느러미도 달리지 않은 것들이 움직이고 다니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친구 잉어들에게 들려 줄 것입니다.
친구 잉어들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얘가 맛이 갔네. 잉어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하겠지요. 그리고 한사코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몇 번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친구 잉어들은 그를 피하게 될 것이며 부모 잉어는 심각하게 걱정하고 상의한 끝에 그를 의사 잉어에게로 데려가겠지요."
조수현은 이두오의 얘기도 재미났지만 그의 표정이 유별나게 진지하여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지금 있는 현실을 보면서 말하듯 실감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비에 쫄딱 젖은 나를 제 아버지의 큰 손아귀가 잉어 건져 올리듯이 들어 올렸어요."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 어느 것이 유리한가
그들이 잉어와 우주를 이야기하는 동안 김성식은 고향 조카뻘 되는 청년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청년은 김성식에게 신상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자기는 지금 와룡동에서 반장 일을 보고 있는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주민들을 더 이상 동원할 수도 없고, 차마 다그칠 수도 없어, 반장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러면 의용군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도 싫다. 마침 연줄이 닿아 동 인민위원회에 나갈 계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되면 당장은 여러 가지로 좋으나, 인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되니 나중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가 어케면 좋을 것 같습니껴?"
그는 심한 안동 사투리 억양으로 김성식에게 저돌적으로 대들었다. 대한민국이 옳으냐, 인민공화국이 옳으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자기에게 유리한지를 알아보러 온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어느 쪽으로 해 두는 것이 당면한 어려움도 모면하고 후환도 없겠는가를 저울질해 보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김성식의 대답이 시원할 리가 없었다.
"아무튼 반장 일은 더 보기 어렵겠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동인위에서 일하고 안 하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닌데…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나 자신의 문제도 몰라 망설이고 있는 터에, 어찌 남의 일에 경솔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죔이 이런 경우에 처했으면 으떡하실까를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능기요?"
"글쎄, 인위라는 게 뭔지 또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갑자기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만 겸양을 피우시고 후진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도리 아니오니껴?"
"요즘처럼 바삐 변화하는 세상에 나 같은 기성세대는 오히려 퇴물이 되어 가고 있어. 젊은 세대의 감수성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믿네."
"그라타 해도 아죔은 경륜 있는 학자님 아니오니껴?"
"이 사람아, 경륜은 무슨 경륜. 경륜이 있다 한들 이 와중에 그걸 누가 판단할 수 있겠어?"
"아따, 한 말씀 시워니 해 보시라니끼요?"
"허어. 나로서는 난감한 일일세."
"자, 아죔, 내 이렇게 큰 절을 올릴 터니 한 말씀 해보이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나방처럼 벌렸다.
"이 사람아, 이러지 말게."
김성식이 손사래를 치자 그는 선 채로 물었다.
"그럼 이 전쟁의 결말은 어찌 될 것이오니껴?"
"아마 그것은 스탈린이나 트루먼도 모를 것일세."
"꼭 예언을 하시라는 게 아닙니더. 그저 짐작 키우는 대로 한 말씀 해 보시면 안 되능기요?"
"내가 안다면 왜 자네에게 권하지 않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무책임하게 자네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다만…."
"다만? 다만 무에라요?"
"다만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하겠지."
"올바른 길이 인공입니껴, 민국입니껴?"
"어디에서든 사람 하기 달려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잘 알아 모시겄습니다."
김성식은 그가 무엇을 알았고 또 무엇을 모신다는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청년을 보내 놓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딸 숙희가 울상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정숙이 아이에게 뭔 일이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나에게 반동이라고 야단쳤어."
아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가서 다마네기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며칠 전 반장이 된 가게 주인 강군이, "다마네기가 뭐냐? 그런 말 쓰려거든 일본에 가서 살아라. 반동분자네 집 아이라서 다르구나."
하더라는 것이었다. 순진했던 강군마저도 바람이 든 모양이었다. 아이는,
"우리 집이 왜 반동분자여?"
하고 대들다가 왔다고 했다.
정숙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말했다.
"참, 별것들이 다 날뛴다니까. 어제는 털도 벗지 않은 애송이 여맹원(女盟員) 둘이 와서 문간에 표어가 없다고 교양을 받아야 하느니 마느니 하더라고요."
김성식은 가슴 아래에 손을 얹었다. 경미하게 위통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학교에서는 임용심사를 한다는 통보가 왔다. 피난 간 사람과 정치보위부에 붙들려 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한 것 같았다. 조금 늦은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이명선과 유응호 등의 지도부 자리였다. 그는 거북했지만 자리를 옮길 수도 없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명선이 일어나 말했다.
"오늘 심사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더 급한 현안이 있어 심사는 내일로 미루고 현안을 논의하겠습니다."
이명선은 의외로 긴 연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이승만 괴뢰 집단과 그들의 상전 미제가 무모하게 일으킨 6·25 불법 침공에 응징하여 우리 영용무쌍한 인민군이 적을 추격하여 성스러운 통일을 달성하려는 순간, 야만적인 미제가 적극 개입하여 필요 이상의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명선은 말을 멈추고 장내를 휘둘러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김성식은 슬그머니 눈길을 내렸다. 이명선은 다시 연설을 이어 갔다.
그 잉어는 하늘 밖에 갔다 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대한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에도 또 하늘이 있으며, 물도 없는데 숨 쉴 수 있고, 심지어는 지느러미도 달리지 않은 것들이 움직이고 다니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친구 잉어들에게 들려 줄 것입니다.
조수현은 이두오의 얘기도 재미났지만 그의 표정이 유별나게 진지하여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지금 있는 현실을 보면서 말하듯 실감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비에 쫄딱 젖은 나를 제 아버지의 큰 손아귀가 잉어 건져 올리듯이 들어 올렸어요."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 어느 것이 유리한가
그들이 잉어와 우주를 이야기하는 동안 김성식은 고향 조카뻘 되는 청년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청년은 김성식에게 신상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자기는 지금 와룡동에서 반장 일을 보고 있는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주민들을 더 이상 동원할 수도 없고, 차마 다그칠 수도 없어, 반장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러면 의용군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도 싫다. 마침 연줄이 닿아 동 인민위원회에 나갈 계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되면 당장은 여러 가지로 좋으나, 인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되니 나중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가 어케면 좋을 것 같습니껴?"
그는 심한 안동 사투리 억양으로 김성식에게 저돌적으로 대들었다. 대한민국이 옳으냐, 인민공화국이 옳으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자기에게 유리한지를 알아보러 온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어느 쪽으로 해 두는 것이 당면한 어려움도 모면하고 후환도 없겠는가를 저울질해 보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김성식의 대답이 시원할 리가 없었다.
"아무튼 반장 일은 더 보기 어렵겠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동인위에서 일하고 안 하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닌데…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나 자신의 문제도 몰라 망설이고 있는 터에, 어찌 남의 일에 경솔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죔이 이런 경우에 처했으면 으떡하실까를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능기요?"
"글쎄, 인위라는 게 뭔지 또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갑자기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만 겸양을 피우시고 후진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도리 아니오니껴?"
"요즘처럼 바삐 변화하는 세상에 나 같은 기성세대는 오히려 퇴물이 되어 가고 있어. 젊은 세대의 감수성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믿네."
"그라타 해도 아죔은 경륜 있는 학자님 아니오니껴?"
"이 사람아, 경륜은 무슨 경륜. 경륜이 있다 한들 이 와중에 그걸 누가 판단할 수 있겠어?"
"아따, 한 말씀 시워니 해 보시라니끼요?"
"허어. 나로서는 난감한 일일세."
"자, 아죔, 내 이렇게 큰 절을 올릴 터니 한 말씀 해보이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나방처럼 벌렸다.
"이 사람아, 이러지 말게."
김성식이 손사래를 치자 그는 선 채로 물었다.
"그럼 이 전쟁의 결말은 어찌 될 것이오니껴?"
"아마 그것은 스탈린이나 트루먼도 모를 것일세."
"꼭 예언을 하시라는 게 아닙니더. 그저 짐작 키우는 대로 한 말씀 해 보시면 안 되능기요?"
"내가 안다면 왜 자네에게 권하지 않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무책임하게 자네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다만…."
"다만? 다만 무에라요?"
"다만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하겠지."
"올바른 길이 인공입니껴, 민국입니껴?"
"어디에서든 사람 하기 달려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잘 알아 모시겄습니다."
김성식은 그가 무엇을 알았고 또 무엇을 모신다는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청년을 보내 놓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딸 숙희가 울상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정숙이 아이에게 뭔 일이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나에게 반동이라고 야단쳤어."
아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가서 다마네기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며칠 전 반장이 된 가게 주인 강군이, "다마네기가 뭐냐? 그런 말 쓰려거든 일본에 가서 살아라. 반동분자네 집 아이라서 다르구나."
하더라는 것이었다. 순진했던 강군마저도 바람이 든 모양이었다. 아이는,
"우리 집이 왜 반동분자여?"
하고 대들다가 왔다고 했다.
정숙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말했다.
"참, 별것들이 다 날뛴다니까. 어제는 털도 벗지 않은 애송이 여맹원(女盟員) 둘이 와서 문간에 표어가 없다고 교양을 받아야 하느니 마느니 하더라고요."
김성식은 가슴 아래에 손을 얹었다. 경미하게 위통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학교에서는 임용심사를 한다는 통보가 왔다. 피난 간 사람과 정치보위부에 붙들려 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한 것 같았다. 조금 늦은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이명선과 유응호 등의 지도부 자리였다. 그는 거북했지만 자리를 옮길 수도 없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명선이 일어나 말했다.
"오늘 심사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더 급한 현안이 있어 심사는 내일로 미루고 현안을 논의하겠습니다."
이명선은 의외로 긴 연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이승만 괴뢰 집단과 그들의 상전 미제가 무모하게 일으킨 6·25 불법 침공에 응징하여 우리 영용무쌍한 인민군이 적을 추격하여 성스러운 통일을 달성하려는 순간, 야만적인 미제가 적극 개입하여 필요 이상의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명선은 말을 멈추고 장내를 휘둘러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김성식은 슬그머니 눈길을 내렸다. 이명선은 다시 연설을 이어 갔다.
덧붙이는 글
이 소설은 주 3회 정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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