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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재판상 독립은 법관 모두의 헌법적 책무"

"법관이 시류에 영합하고 중심을 잃어선 재판독립 이룰 수 없다"

등록|2009.04.01 15:53 수정|2009.04.01 15:53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어떠한 국가권력으로부터도 부당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됨을 말한다. 정치권력을 비롯한 법원 외부의 권력은 물론 법원 내부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게, 직무상의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함을 의미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일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무관 전역자(사법연수원 35기) 신임법관 46명에 대한 임명식에서, 최근 신영철 대법관 파문을 의식한 듯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헌법적 요청'이라며 이 같이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먼저 "여러분이 법관의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에만 젖어 있을 수 없는 것이 법원의 현실"이라며 "법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려는 지금, 사법권의 독립, 법관 개개인의 재판의 독립을 열망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뜨겁게 분출하고 있어, 국민이 바라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헌법적 요청"이라고 전제하며 "모든 국가기관이 사법권의 독립을 존중하고 수호할 의무를 지지만, 법관 개개인의 재판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법관 모두의 헌법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법관이 법대에 처음 올라서는 순간부터 법복을 벗을 때까지 법관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재판의 독립이 없이는 국민이 사법을 신뢰할 수 없고, 국민이 사법을 신뢰하지 못하면 사회적 안정과 번영의 토대인 법의 지배가 자리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의 판단은 재판받는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부당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돈이나 권세를 가진 자에 대해서도 엄격해야 하며, 큰 소리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당사자라고 해 달리 대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어떠한 국가권력으로부터도 부당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됨을 말한다"며 "정치권력을 비롯한 법원 외부의 권력은 물론 법원 내부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게, 직무상의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함을 의미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여론의 부당한 영향에도 주의해야 한다"며 "이것을 진정한 국민의 의사와 혼동해서는 안 되고, 법관이 시류에 영합하고 중심을 잃어서는 진정한 재판의 독립을 이루어 나갈 수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법관도 인간인 이상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환경이 다르고 믿음과 신념의 체계가 다를 수 있으나, 법관은 개인적인 요소를 뒤로 하고 객관적인 법의 정신을 찾아나가야 한다"며 "재판을 하는 양심은 법관으로서의 양심이지 법관으로 임명받은 한 개인의 양심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민이 원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재판의 독립을 의미한다"며 "모든 법관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민이 진정으로 희망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이러한 개개 법관의 강건한 의지가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며, 전체 사법부의 의지로 승화될 때만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대법원장은 "여러분은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 국민을 보는 시각을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며 "법원에 재판받으러 온 국민은 단순히 사건처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법관들에게 위임한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수많은 사건이 법관의 손을 거쳐 가는 현실에서 당사자의 인격과 존엄성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당사자가 단지 법관이 처리할 일의 대상으로만 비칠 위험이 있다"며 "그러나 공정한 재판으로써 국민을 섬겨야 할 법관이, 일에 매몰돼 주인과 일의 대상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고 국민을 섬기는 법관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앞으로 심리하고 판단할 수없이 많은 사건은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만큼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에 목매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박함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공정하게 판단해 줄 것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은 한결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여러분은 배석판사로서 법관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배석판사라고 해서 판단의 책임을 재판장에게만 떠맡길 수 없다"며 "사건 하나하나를 신중히 처리함에 있어 최대한의 정확성을 기하고, 맡은 사건과 유사한 대법원 판례만을 찾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얼핏 보면 기존 판례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면밀히 살펴보면, 사실의 확정이나 법률의 적용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치밀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시도하지 않고 판례를 피상적으로 이해해 적용하는 것 또한 국민이 원하는 재판의 모습은 아니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법관의 길은 영예로운 길이지만 그 영예는 세속적 권력이나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법관은 수도자처럼 법관의 길을 묵묵히 걸어 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선언함으로써 국민을 섬기는 일에서 삶의 만족을 찾아야 한다"고 법관의 길을 제시했다.

한편, 올해 각급 법원에 배치된 신임 판사는 지난 2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임용된 92명(사법연수원 38기)과 지난해 12월 임용돼 지난 2월 배치된 법조경력자 출신 27명, 그리고 이번에 임용된 법무관 출신 46명 등 총 165명이 임명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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