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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여행기중독자 05] <박훈규의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등록|2009.04.01 16:37 수정|2009.04.10 19:16

▲ 책표지 ⓒ 안그라픽스

"한 달 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어느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장 많은 응답은 '여행'이었다.

이때 많은 어른들은 말한다. 그들이 꿈꾸는 여행은 사치이거나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일을 한 다음에 떠나라고. 이것은 어쩌면, 어른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지, 그들도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이런 말로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잠시 얘기하자면, 사실 여행은 어릴 때 많이 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다. 어른이 되면 세상을 분석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성향이 강해지므로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여행을 통해 일어나는 변화들은 대부분 현실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변화이므로 사고를 넓혀주고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제고사의 점수를 높여주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공부를 하거나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동안 매우 중요한 정신적 밑거름이 되어 준다. 그리고,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 여행을 떠날 때도 훨씬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많은 여행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 부분에 대해 어른들의 말을 너무 잘 들어 왔던 것도. 그래서 젊은 날, 한 번의 여행으로 인생이 바뀐 한 아저씨의 자서전적 여행기를 소개하려 한다. 아마도 어린 학생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넌 혼자야,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던 저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만화가가 되려는 학생에게 학교와 선생님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훈화를 하시는 중간에 등교를 했다가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이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는 튕겨져 나왔고, 이것이 머나먼 언더그라운드 여행의 시작이다.

가출을 해서 어느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한 달 만에 실력 미달을 절감하고 그곳을 제 발로 걸어서 나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떠돌아 다녔다. 그러던 중, 길에서 우연히 친형을 만난다. 그러나 형도 가출한 상태. 그의 형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명문대 두 곳에서 모두 제적을 당하고, 청계피복 노조에서 노동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형을 따라 평화시장으로 갔고, 공장과 노조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운다. 그 후 디자인 회사에 들어간 그는 틈틈이 고등학교 중퇴자도 받아주는 디자인 학교 'SADI'에 다니다가 군입대를 한다. 군대에 있는 동안 여자 친구는 유학을 떠나 버린다. 그래서 제대를 한 후 '과연 외국이라는 곳이 정말 있는 곳인지' 궁금해진다. 그는 시드니로 무작정 떠났다. 그리고 시드니 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훈규야, 넌 혼자야. 그걸 모르고 있구나?"

혼자라는 것. 이것이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는 집을 나와 10년 가까이 떠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이라는 곳에 떨어지는 순간에서야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방을 기어 다니며 구경한다고 해서 안방이 새롭게 보이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그림은 여행자의 무기가 된다

영어도 안 되고, 수중에 남은 돈은 한 달치 숙박비 밖에 없었던 그는, 생존을 위해 교민들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현지에 적응해 간다. 중요한 것은 그 와중에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막노동을 하는 중간에도, 일거리가 없어 거리를 전전할 때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게스트하우스 청소부 아저씨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초상화에 눈을 뜬다. 그 후 초상화는 그에게 여행의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그림이라는 만국공통의 재주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음악이나 춤도 만국 공통의 언어이지만, 그것이 통하려면 정서가 맞아야 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림은 일단 유사하기만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선물로 줄 수 있으며,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이제 막 만난 서먹한 사람에게 주면 빨리 친해질 수 있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는 감사에 대한 답례가 된다. 힘들고 외로울 때에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게 해 주고, 그 그림들을 모으면 이 책처럼 훌륭한 기록이 되는 것이 그림이다.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라면 단기속성 크로키라도 배워 볼 일이다.

시드니, 런던, 에딘버러의 광장을 순례하다

그는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이 수입이 괜찮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화구를 마련해 거리로 나간다. 관광객이 많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로 가는 길목 '써큘러키 광장'을 골랐다. 거리에 나섰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 한 시간을 어슬렁거리기만 하다가 거리의 악사들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모두 자신만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드는 순간, 광장의 그 누구도 그를 보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있구나.... 나 혼자 스스로 쳐 놓은 덫에 걸려있었던 것이야."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는 소중한 친구인 거리의 화가들을 만나게 된다.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프랑스에서 온 거리화가 피에르와의 동행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광장 관리 경찰이 불법 아티스트들 중 유독 동양인인 저자만을 괴롭힐 때, 피에르는 비교적 단속이 덜한 오페라하우스 건너편 '맨리'라는 섬으로 갈 것을 먼저 제안하고 동행해 준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끊임없이 초상화를 연습하다가 흔들리는 선의 모양을 보고 자신만의 터치를 발견해 내며 새로운 그림의 세계를 보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외국 관광객이 그가 그린 오페라 하우스 그림을 꽤 많은 돈을 주고 사갔으며, 매일 광장에서 휴식시간을 보내는 스위스 출신 택시기사는 오랜 관찰 끝에 '니 그림은 너만의 뭔가가 있다'고 하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고등학교 중퇴가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억눌려 살아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가, 몇 달 만에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고, 삶을 즐기게 되었으며, 자기만의 화풍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다소 지루해질 무렵, 그는 영국에서 온 거리 화가로부터 영국에는 거리화가를 단속하지 않는 구역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영국인 친구가 그려 준 허가구역이 표시 된 지도 한 장을 들고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건 밤이었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가다가 지하철 파업으로 발이 묶여 첫날부터 워털루 역에서 노숙을 한다. 숙소를 잡고 나서 영국 화가가 그려 준 지도를 들고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인 '코벤트 가든'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곳도 자릿세를 내야하는 상황. 다른 자리를 찾아 '레스터 스퀘어 가든'으로 갔다. 시드니와 달리 손님 잡기가 쉽지 않아 경제적인 위기에 시달렸다. 다행이 한국에서 온 화가이자 레스터 스퀘어 광장의 터주대감인 정민누나를 만나 그곳에 부드럽게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여기서 전 세계에서 모여 든 개성 있는 거리화가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예술세계와 각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는데, 이곳의 거리화가 사회는 인종, 국적간의 갈등이 심해 마음이 편치 않다.

저자를 따라 런던으로 날아 온 피에르의 제안으로 에든버러로 향했다. 마치 중세 도시를 연상시키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는 온통 축제(프린지 페스티벌)의 도가니였고, 그곳에서 그는 '내셔널 갤러리 앞 광장'에 자리를 잡는다. 런던에서 거의 빈털터리로 살던 그들은, 이곳에서 지금까지 만져 보지 못한 정도의 돈을 번다. 에딘버러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도 런던의 사람들에 비해 정겨웠다. 어느 날, 그들과 함께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아저씨는 말한다.

"여보게 자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100년 전, 이곳에서 르누아르와 수많은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렸던 곳이라네."

그 순간, 저자는 지금까지 헤매고 돌아다녔던 그 모든 여정이 하나의 예술적 순례였음을 깨닫는다.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결국, 400일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에서 돌아 온 그는 새로 태어났다. 'SADI'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무리하고, 홍대 인근 음악인들과 소규모 음악잡지에 참여했으며, 딴지 일보의 CI를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을 해냈고, 그 과정에서 태극기의 문양을 이용한 '건곤감리체 한글폰트'를 만들어 냈다. 현재 자신이 졸업한 디자인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고, 음악 공연장의 배경 화면을 믹스하는 실험적인 작업의 선두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가출로부터 시작된 기나긴 언더그라운드 여행을 끝내고 오버그라운드를 찾은 것이다.

그의 여행기는 여행기이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 온 한 청년의 자서전이다. 여행은 한 재능 있는 청년이 이곳 사람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언더그라운드'는 세상과 자신을 믿지 못해 고뇌하는 터널과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그는 여행을 통해 머뭇거림 없이 만들어 가야 할 자신만의 세계인 오버그라운드를 찾아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는 상업적 성공이나 주류 사회에의 편입 여부에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경계는 자신의 세계를 자각하고 있는지 여부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만약 내가 찾은 나의 오버그라운드의 무대가 세상이 말하는 언더그라운드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곳은 언더그라운드가 아닐 것이다. 오버와 언더는 개인의 행복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며, 또 그것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가지. 이 책을 덮으며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그가 한국에서 조용히 정규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나서 여행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에 이어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우리의 교육은 너무 많은 것을 디립다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결국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것인데...'
덧붙이는 글 여행기중독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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