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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정성으로 책을 쓰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열린책들, 홍지웅>

등록|2009.04.02 17:25 수정|2009.04.03 08:20

▲ ⓒ 박균호


더 이상 서재에 책을 꼽아 둘 곳이 보이지 않는 요즘에는 책을 고르는 눈이 점점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책을 고르다 보니 '고전'을 자주 읽게 되는 요즘이라, 이 책을, 제가 가장 신뢰하는 인터넷 서평꾼 중의 한 사람의 소개 글을 읽고도  조금 뜨악하게 생각했더랬지요.

단순히 한 출판인의 '국회의원 자서전'스러운 수필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다보니 별 기대 없이 주문을 하게 되었고(아무래도 까칠하기가 이럴 때 없는 그 서평 꾼의 블로그에 그 책이 소개되었다는 자체가 계속 뇌리 속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이 책을 실제로 받아 본 순간 이 책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습니다.

일단 책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뻤고 또 두께가 무려 844페이지인 것에 반했거든요.
긴 머리는 미남을 더욱 잘 생겨 보이게 만들고, 보다 두꺼운 책은 디자인이 예쁜 책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주는 법입니다.

▲ ⓒ 박균호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또 다른 독서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책입니다. 즉 그 책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읽게 만들어 주는 책이지요. 이 책을 펼쳐보니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또한 압권이었습니다. 앤디 워홀의 <일기>의 번역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군요. 참 궁금했습니다. 앤디 워홀이란 인물도 참 흥미진진하지만 그 사람이 쓴 <일기>라!! 일단 앤디 워홀의 <일기>의 원서(이 책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를 해외서점의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급기야 책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더 많게 된 저를 인터넷을 멀리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인터넷의 현란한 그래픽과 속도는 사실 독서라는 것은 약간의
'작정'이 필요한 요즘 인터넷을 잊게 만든 책이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네요.

▲ ⓒ 박균호


그것도 판타지가 아닌 출판사 대표가 쓴 출판과 인생 그리고 건축이야기를 쓴 책이라는 점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 책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독자입장에서 늘 은둔과 장막 속에 가려진 출판계 내부 속사정을 소상히 (그것도 인간적인 고뇌까지 숨김없이)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출판사나 출판업자는 독자의 입장에서 '그들'이었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그들'의 눈으로 책과 독서 시장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지요.

한 출판사에 의해서 무명작가가 어떻게 발굴되고 키워지고 지켜지는지, 책의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는지, 그들이 해적출판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급기야 책 한권을 만드는 원가가 얼마인지?를 아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모두 궁금해 했을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출판업자의 눈으로 본 '책'들의 이야기가 가득히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열렬한 독서가이기도 한 저자가 같은 독서가에게 소개해주는 많은 책들도 있습니다. 앤디 워홀의 <일기>뿐만 아니라 '세계 5대 자서전'이란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 ⓒ 박균호


요즘처럼 '불확실하고 상업성만 추구한' 출판물이 홍수처럼 많은 시대에 이 책의 가치는 이만 저만 높은 게 아닙니다. 앤디 워홀의 <일기>를 본받아서 쓴 출판인의 일기는 단지 개인적인 사소한 일뿐만 아니라 출판계 전부를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업무에 쫓겨서 자녀의 대학입학등록기간을 놓친 후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는 저자의 면모도 놓칠 수 없는 매력중의 하나이지만요.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 책은 보물섬과도 같은 책입니다.
가령 이 책 속에는 <다음은 직원들이 사온 책들과 구매의 변>이란 소제목과 함께 일본 문화 탐방 때 구매한 72권의 책의 목록과 제목처럼 구매 이유가 빼곡히 적혀있으니까요.

단지 한 출판사 사장의 일기가 인터넷을 멀리하게 하고, 한동안 난독증에 시달리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만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 책을 필자에게 소개한 인터넷 서평꾼의 말따나 '통의동'이 아닌 '에덴빌라' 시절의 '열린책들'의 비화와 오랫동안 독자들의 화두였던 '도끼전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탄탄하고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저자의 글 솜씨도 고스란히 녹아 있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기가 아까워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헤아려 가면서 읽은 몇 안 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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