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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쓴 답을 4500칸에 채워넣으며...

[28년째 초등교사가 말하는 초등교육이야기 15] 3월 31일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제 ④

등록|2009.04.03 13:52 수정|2009.04.03 16:00
말도 많고 일도 많던 일제고사 진단평가가 폭풍우 지나가듯 학교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늘 그렇듯 이런 일이 지나가고 나면 세상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집니다. 이제 남은 일은 '불복종 교사'를 징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인데 이 일은 또 그 사람들 일일 뿐입니다. 다른 교사들이 이들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학교에 해야 할 일이 밀려 있어서기도 하고, 악몽을 꾼 것을 애써 잊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일제고사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과 초등교육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고사의 목적은 교사를 무조건 복종하게 만드는 것?

우리나라 교육은 옳든 그르든 상급기관과 상급자가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교사들의 해임 이유가 '불복종'이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또 일제고사에 '불복종'한 교사들을 징계하겠다지요?

학교에서도 보면, 관리자는 교사들이 무슨 일이든지 관리자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관리자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 교육이 우선이 아니라 관리자의 실적과 업적 쌓기일 때가 많습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교사들도 관리자 눈치를 보면서 관리자가 시키는대로 하는데 익숙해져 갑니다. 관리자가 시키는 일에 다른 생각을 말하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합니다. 그대신 다른 생각을 얘기하면, '반대' 하는 교사,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교사입니다.

3월 31일에 본 일제고사 평가지4,5,6학년 평가지로, 한 무더기가 각 학년 한 아이가 봐야할 평가지입니다. ⓒ 이부영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한 입력 자료의 예시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보내온 '성적 입력 방법 안내'에 나오는 예시입니다. 반 아이 모두 교과별 문항번호에 답한 답을 그대로 교사가 네모 칸에 옮겨적어야 합니다. ⓒ 이부영


생뚱맞은 일제고사를 준비하면서, 학교는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처리에 일제고사 준비한다고 수업연구는커녕 수업조차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제고사가 끝나고도 4·5·6학년 교사들은 평가지 각 교과 각 번호마다 아이가 답한 것을 작은 엑셀 문서 칸에 하나하나 입력해야 합니다.

한 아이에 23장에서 26장 되는 평가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평가지에 아이가 쓴 답을 보고 한 아이에 모두 150칸(5교과×30문항)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한 반 아이가 20명이면 3천 칸, 30명이면 4천5백 칸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교사들이 과연 아이들이 답한 대로 정확하게 입력하는가에 대한 얘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평가 결과가 만천하에 공개되어 옆 반과 옆 학교와 다른 시군과 서로 견주어서, 누구는 징계를 받고 누구는 인센티브를 받아 승진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교사들이 교육자의 양심을 굳게 지킨다고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컴퓨터 화면에 있는 작은 칸에 번호를 입력하면서 교사들은, "대체 이게 무슨 ××야. 교육도 모르는 것들이. 그동안 진단 평가 알아서 잘 해 왔구만. 웬 문제를 출제해준다고 난리를 펴면서 일만 많이 만들어서 수업도 못하게 해! 이거 수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원"하면서 불만을 터뜨립니다.

제가 그동안 만나본 교사들 중에 이번 일제고사로 치러진 진단 평가를 찬성하는 교사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교사들이 교육도 모른다면서 교과부를 욕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또 말합니다.

"교사는 자고로 국가의 녹을 먹고 있으니 국가가 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라야 혀. 일제고사 반대하고 그러면 못 써!"
  
이번 일제고사 일뿐만이 아니고,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이건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잔뜩 욕하면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교사는 보기 힘듭니다. 그보다도 교사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반대하면 안 된다는 교사들이 주변에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교사들도 공부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비판적인 사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겠지요. 그리고 평가에서도 이렇게 답한 아이가 진단결과 '학업성취수준이 우수하다'고 하겠지요.

공문에 B4용지 '불허'란 말은 B4용지에 '알아서' 하라는 말 

이번 일제고사에서 교과부가 말한 '진단 평가 시도교육청 자율 실시' 모습은 평가지를 인쇄하는 모습과 OMR카드 사용 여부에서 겨우 드러납니다. 평가지를 도교육청에서 인쇄해서 배부해 주는 곳이 있고 학교에서 인쇄하게 하는 곳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학교와 학생 수, 교원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표집학급만 평가지를 인쇄해서 주고 일반학교는 학교에서 인쇄하게 했습니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평가지를 학교에서 인쇄하는 것보다 도교육청에서 인쇄를 해 주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효율적인데, 경기도 교육청은 평가지 인쇄를 학교에서 하게 해서 학교에 업무 부담과 그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이는 작년 초3 국가수준 기초학력진단 평가 때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기도 교육청이 인쇄오류가 된 평가지를 배부해서 망신을 샀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책임을 피해보려는 꼼수일까요? 이번 진단 평가가 그렇게 중요하다 했으면 평가지 인쇄를 학교에 맡길 게 아니라 도교육청에서 같은 조건으로 일괄 인쇄해서 학교에 나누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이 각 학교에 내려 보낸 공문에 평가지 인쇄를 '8절 용지'에 하라고 하면서 'B4용지 및 A4용지 불허'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B4용지 못 구해 일제고사 못 보겠네'하는 기사로 쓰기도 했지만, 그 뒤 학교에서는 어떻게 했을까요? 공문을 보고 위 기사를 쓰면서 과연 현장 교사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학교와 교육청은 어떻게 할지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8절 중질지로 인쇄한 작년 평가지와 B4복사지로 인쇄한 올해 평가지 8절 용지와 B4용지는 가로 약 1.5cm, 세로 약 2.5cm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8절용지가 B4용지에 비해 문제가 시원하게 배치되고, 글씨 크기도 훨씬 큽니다. 종이가 하얗지 않아 눈이 덜 피로합니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어떤 종이에 어떤 방법으로 인쇄하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평가에서 평가지 글씨 크기와 배치, 인쇄에 신경을 많이 써야합니다. ⓒ 이부영


결론은, 공문에 분명 'B4용지 불허'라고 나와 있는데도 학교에서는 모두 '그냥' B4용지에 인쇄를 해서 시험을 봤습니다. 평가 하루 전날 평가준비를 확인한다고 장학사 두 분이 학교에 왔는데, 두 분 역시 봉투 밀봉한 것과 평가지 두는 곳 보안장치만 확인했을 뿐 B4용지에 인쇄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따로 정정하는 업무연락이나 공문이 내려온 적도 없었습니다.

B4 복사지에 인쇄하니 8절 중질지에 인쇄할 때보다 글씨 크기도 작을 뿐더러, 종이가 하얘서 눈이 매우 부십니다. 다섯 과목 시험을 보는 동안 무려 4·5학년은 23장, 6학년 26장의 종이를 들춰보아야 했으니 눈에 피로가 몰려와 아이들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불복종'이 아니고 뭔가요? 점검 나온 장학사는 공문대로 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도 묵인한 '업무태만'입니다. 같은 공문에 똑같이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불허'라는 말이 나오는데, '체험학습불허'에서 허가가 해임이라면 'B4용지 불허'인데 B4용지에 한 것도 역시 해임당해야 마땅하지 않나요?

분명 학교 현장에서는 할 수 없는 '8절용지에 인쇄'하라고 하면서 'B4용지 불허'라고 공문에 표기한 것일까요? 그것은 시군교육청이 도교육청 자료에 나오는 그대로(명령대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군교육청이야 상급기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에 대해 절대 왈가왈부 따질 자리가 아니니까요.

시군교육청은 또 그대로 학교에 공문을 보내면서 학교에서 '8절용지를 어디서 구하란 말이냐? 학교에는 8절 용지 인쇄할 인쇄기도 없다'고 말하면(글쎄요, 과연 교육청에 대고 이렇게 따져 물을 교사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도 도교육청 방침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원칙은 8절 용지다'고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군교육청은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8절 용지에 인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단했어도 도교육청에다 인쇄용지를 B4로 바꾸어 줄 것을 절대 요구하지 못합니다. 또 시군교육청 소신대로 '학교 현장의 문제가 그렇다면, 현실에 맞게 B4용지에 인쇄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B4용지에 하라고 허락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8절용지에 인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학교마다 '알아서' 서로 연락해서 B4용지에 인쇄하기로 '통일'하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체 합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우린 절대로 B4용지에 인쇄하라는 말 하지 않았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은 확실하게 마련해 놓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주변에 있는 모든 학교와 연락을 해서 똑같이 통일해서 공문에 '불허'한 B4 용지에 인쇄를 해 놓고 다같이 '통일'한 것에 안심을 합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똑같이 했으니 뭐, 별 일 있겠어?'하고요. 

학교와 교육청이 이런 모습이 된 데는 또 학부모의 역할도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왜 중요한 평가라면서 다른 표집학급처럼 8절 중질지에 인쇄를 하지, 눈이 부시고 글씨도 작은 하얀 B4용지에 했느냐'고 따지는 아이들과 학부모가 한 명도 없으니까요.

평가결과는 바로 알려주고 문제점을 고쳐줘야 합니다 

보통 학교에서 평가를 하면 바로 교사들이 채점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봅니다. 문제를 풀어보다 보면 잘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고, 잘못 생각한 것을 바로 잡아서 평가 전에 놓치기 쉬웠던 것을 새로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평가를 통해서 배움의 길로 더 한발자국 나아갑니다.

그리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 배울 내용을 설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가 결과 활용 원칙에 나오는 교육 내용의 '피드백'입니다. 또 평가가 끝나면 아이들과 평가지를 다시 확인해보면서 교사가 채점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정확히 채점을 한다 해도 실수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렇게 평가 뒤에 바로 채점을 해서 아이들과 평가 결과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이번 일제고사 결과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까다롭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을 해 놓고, 성적 환산프로그램이 나올 4월 말까지 기다린 다음 성적 환산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들에게 '미달'과 '도달'로만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평가의 기본 원칙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교과별 '미달'과 '도달' 통지는 진단 평가로서 의미가 없습니다

교과별로 '미달'과 '도달'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단 평가로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중등교육과정을 보면 교과마다 내용영역이 나누어져 있는데, 가르치는 것도 내용영역에 따라 가르치지만, 평가 역시 내용역역에 따라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실에서 평가하다보면 아이마다 내용 영역에 따라 잘 하고, 못 하는 정도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어떤 영역은 뛰어나는데 어떤 영역은 부진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 평가 결과 부족한 영역이 무엇인지를 알고 채워주는 것이 진단 평가의 올바른 방향입니다. 교과별 '미달'과 '도달'은 교과 내용 영역을 뭉뚱그려서 나타낸 것으로, 결국 교과부 스스로 국가교육과정에 설정해 놓은 교과별 내용역역을 무시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교과부 장관은 한편으로는 '수요자 중심'이니 '학습권'이니 '학교 자율화'니 '자기 주도적 학습'이니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고사를 확대해서 전국 학교와 교사와 교육을 통제하고 획일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도교육청과 시군교육청은 '자율'은커녕 교과부 눈치보기에만 바쁩니다. 이번 일제고사로 본 진단 평가가 바로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라고 봅니다.

이번 진단평가는 일제고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어린이들의 진단 평가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복종하는 교사'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진단 평가가 진정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라면 도저히 이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시험을 보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 성적에도 들어가지 않고, 새 학년 진도를 두 단원 가까이 나간 때에 느닷없이 보는 진단 평가에 귀찮아만 할 뿐 관심이 없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일제고사가 보기 싫고 필요 없으면 안봐도 된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몸이 아파 쓰러져도 당연히 가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시험을 보는 아이들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 일제고사 때문에 담임교사한테 항의를 한 유일한 일은 점심 식사 시간이 10분 늦어진 것 때문이었답니다. 자신들이 10분 늦게 먹는 동안 맛있는 반찬을 저학년들이 다 먹으면 어쩌냐고 세게 항의했다는군요.

'전면재조사' 결과는 언제 발표하나요?

이번에 일제고사로 치른 진단 평가를 교과부 스스로도 진단하는 시기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까지 3월 31일로 미뤄서 치른 까닭이, 교과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작년 일제고사 결과에 각시도교육청과 학교가 성적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나와 '전면 재조사'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과부 주장대로 '전면 재조사'도 필요하고 진단 평가도 꼭 필요하다면, 전면 재조사를 하더라도 진단 평가는 예정대로 학기 초에 실시해야 맞습니다. 처음부터 전면 재조사 때문에 진단 평가를 미뤘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교과부는 '전면재조사' 결과를 3월 말에 발표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처음으로 실시해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일제고사 방식을 보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단평가도 끝나고 4월이 된 현재 교과부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교과부 장관님, 1년에서 가장 바쁘고 중요한 학년 초에 교감 선생님들이 일주일씩 학교를 비우고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면서 '전면재조사'를 벌인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발표는 또 진단 평가 일제고사 때문에 미루시는 건가요? 작년 평가 담당자인 제가 '전면 재조사'를 당하면서 이에 대해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빨리 발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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