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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있어?

남대문 갈치골목 강원집 닭곰탕

등록|2009.04.03 11:34 수정|2009.04.03 11:34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추억의 도시락 같은 거.

지난 번 남대문 갈치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닭곰탕집을 하나 보았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찢은 닭고기를 넣어 놓은 것이 그 옛날 버드나무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 옛날에는 시청 근방을 ‘멕여살릴’ 정도 규모의 남대문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번화가가 되어버린 숭례문 부근 빌딩가. ⓒ 이덕은


혹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고 검색창에서 버드나무집을 찾으니 온통 강 아래 고깃집만 나온다. 내가 찾으려는 건 주머니 생각하지 않고도 즐겨 먹을 수 있던 닭곰탕집인데도 말이다. 버드나무집은 온 나라 자동차 댓수가 백 만 대 아니 수 십 만 대도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귀에 낯선 기사식당이란 단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 갈치골목. 그래도 근방에 이렇게 서민이 숨쉴 공간이 남아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낮에는 갈치골목에서 줄서는 일은 다반사이다. ⓒ 이덕은


내가 살던 집 골목에서 나오면 바로 버드나무집이 있었는데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에야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해주는 업체가 따로 있어 거의 비슷한 김치나 깍두기를 이집 가도 먹을 수 있고 저집 가서도 먹을 수 있지만, 식간을 이용해서 배추와 무를 길거리에 쌓아놓고 다듬는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다.

아줌마들이 아기 목욕통으로 쓸 만한 커다란 함지를 두세 개 갖다놓고 차고 앉아 커다란 연필 깎듯이 배추를 부엌칼로 툭툭 치면 10센티 전후로 제멋대로 잘린 배추조각이 쌓인다. 그 위에 고춧가루, 마늘, 파, 소금, 미원를 뿌리고 벌겋게 버무리는데 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몇 입 나누어 먹어야 될 정도의 크기로 썩썩 잘랐다.

요즘에야 설렁탕집에서 가끔 보는 그런 커다란 깍두기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커다란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거기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원을 넣었는데 그게 무슨 음식이냐고 탓하지 말라. 그 때는 배웠다는 주부들도 거의 모든 음식에 미원을 쳤으니까. 

▲ 그 골목을 지나며 낯익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쭈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긴 닭고기. ⓒ 이덕은


닭고기 기름 많은 것 아시지. 지금에야 '껍질 빼고 기름 빼고'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 양은 냄비에 주욱죽 찢어놓은 닭고기와 육수를 붓고 밥 넣고 다대기 한 숟갈 넣고 펄펄 끓여 파 송송 썰은 것 얹고 커다란 깍두기와 국물 넉넉한 배추김치와 마늘을 곁들여 나오면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드-은해지는 것이다.

▲ 점심시간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 이덕은


그런데 그런 양은 냄비와 닭을 보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제대로 먹으려면 닭곰탕을 시켜야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닭곰탕만으로는 안주가 되지 않는다. 문간 옆 조리대에서는 방금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닭을 커다란 쟁반 위에 놓고 손으로 뜯어 접시에 담고 있는데 닭 한 마리 시키니 양은냄비에 곰탕국물을 곁들여 준다. 닭국물이 달긴 하지만 미원을 약간 가미한 것 같은 맛과 질긴듯하면서도 졸깃한 닭고기 씹는 맛이 옛 맛과 비슷하다. 국물이 식으면 자동적으로 육수를 첨가해서 다시 끓여주니 맘이 흐뭇하다.

▲ 점심시간에 점잖게 혼자서 한 상 차지하고 먹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 이덕은


요새야 닭 조리법이 다양해졌지만 튀길 기름조차 귀하던 때에는 그저 푹 삶아 국물도 내고 백숙으로 고기도 뜯어 먹는 것이 제일 간편한 조리법이었을 것이다. 푹 고은 닭을 건져 찬물에 손가락을 식혀가며 다리 비틀어 내어 어른들 몫으로 따로 남겨두고, 닭 날개 뜯어서 '바람 필까봐' 남정네 못 먹게 감추어 두고, 수탉 잡으면 '벼슬하라고' 닭 벼슬은 아들에게 따로 떼어주고, 가슴살은 발라서 국거리로 남겨두고, 뱃속의 미숙란과 똥집은 내가 먹고, 국물에는 대파를 송송 썰어 얹어 내었으니 이만큼 추억과 정감이 배어있는 음식을 보기 쉽지 않으리라.

▲ 닭곰탕. 점심시간만 아니라면 마늘 한 조각 고추장에 찍어가며 먹을텐데... ⓒ 이덕은


국밥이라는 것이 체면 차리고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할 일도 많은데 장소 구애받지 않고 솥 걸어놓고 끓여 사발에 국 푸고 밥 집어넣어 깍두기 하나 놓고 먹는 음식이니 애시당초 점잖게 격식 차리고 먹을 거면 들여다보지도 말아야할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곱창이나 꼼장어처럼 신분 상승된 음식이 하도 많아 아직도 제 분수를 알고 있는 이런 음식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진다.

▲ 약간 질기면서 쫀득한 식감. 무슨 고기인지는 짐작 가지만 질을 따진다면 국밥 자실 자격이 없다. ⓒ 이덕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a href='http://yonseidc.com/' target='_blank'>닥.다.리.즈.포.토.갤.러.리</a>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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