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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꽃들의 의연함이 어여쁘다

등록|2009.04.03 14:34 수정|2009.04.03 14:34

별꽃하늘의 별을 닮아 별꽃? ⓒ 김선호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요즘들어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춘향가의 한 대목이다. 변덕스럽게 그지없는 날씨와 황사와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꽃샘바람이 시샘을 해도 꽃은 피고 봄은 오고 있는 중이다.

봄을 부르는 꽃들이 내 주변에도 만개했다. 매화, 산수유, 목련이 차례로 피어나는 중이다. 그런 꽃들을 보니 산 속에 피는 꽃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지난번에 때 아닌 봄눈이 내렸지만 '봄 눈 녹듯 한다'더니 이내 눈은 흔적도 없이 녹았다. 등산로 들머리, 산자락엔 풀들이 돋고 있다. 봄 기운을 빌어 흙 위로 내민 푸릇한 생명들이 싱그럽다. 이내 발길을 붙잡는 건 생강나무 노란 꽃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생강나무 특유의 알싸한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발길에 시선을 모으노라니 들꽃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별꽃'이 보이고 '산 현호색'이 푸른 손을 흔들며 반긴다.

현호색연보라 혹은 남빛의 현호색이 지금 한창 ⓒ 김선호


일년만에 만나니 또 반가운 꽃들이다. 현호색이 제법 눈에 띄는 반면 별꽃과 제비꽃이 피어있는 건 딱 한 곳이다.  파란꽃을 피운 제비꽃 주변의 낙엽들이 파헤쳐져 있다. 누군가 사진에 담고자 주변을 정리한 모양인데 굳이 그럴 거까지 있었을까. 파헤쳐 놓았으니 바로 해놓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꽃을 사진에 담고 있는 몇 사람을 만났다. 들꽃이 절정에 이를 무렵엔 더 많은 사람들이 꽃을 찍으러 이곳에 몰려 올 것이다.  사진만 예쁘게 찍을 것이 아니라 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가 아닐까. 저 예쁜 꽃들을 우리가 오래 감상을 하려면 말이다.

바람꽃이른 봄 자칫 놓치기 십상이었던 만주바람꽃을 만난 그 순간의 기쁨이라니..... ⓒ 김선호


바위를 뚫고 자라는 고목 틈에 '만주바람꽃'이 피었다. 한 무더기나 된다. 피어 있는 모양이 절묘하고 새하얀 꽃송이가 눈부실 정도로 예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칫 시기를 잘못 고르면 놓치기 십상인 만주 바람꽃, 늘 상 사진으로 보며 그 아름다운 자태에 감동했던 꽃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은 표현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현호색이 무리가 나타나고 계곡 비탈길에 갓 잎새를 피우는 미치광이풀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선 어김없이 현호색과 바람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흐뭇한 풍경을 감상하며 산 중턱을 오른다.

갑자기 시야가 하얗게 변한다. 눈이다. 지난 번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길이 미끄럽다. 하얗게 경계를 지운 산은 여전히 겨울 속에 잠들어 있는 듯해 보인다. 저 아래 봄 기운 듬뿍 받고 피어난 꽃들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다른 모습 앞에 잠시 아연해 진다. 그래도  혹시 눈 속에 봄 소식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주변을 살피며 눈길을 걷는다.  7부 능선을 넘었을 무렵 노란꽃들이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풍경을 만났다.

얼음새꽃눈을 뚫고 샛노랗게 피어난 너, 얼음새꽃 ⓒ 김선호


'복수초'다. 순수한 우리말로 '얼음새꽃'이라고 불린다는데 오늘은 정말로 얼음 사이를 뚫고 피었으니 복수초라기 보다는 얼음새꽃이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복수초라는 이름보다는 얼음새꽃이 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간다.

'복을 부르는 꽃'이라는 복수초의 의미는 좋으나 꽃 이름으로 어감 상 썩 좋지 않아서다. 하얀 눈 속에 핀 노란 얼음새꽃의 조화가 신비롭다.  길에서 조금 옆으로 비켜나자 여기 저기 눈을 뚫고 노란꽃을 피운 얼음새꽃이 지천이다. 아마도 군락지인가 보다.

괭이눈오른쪽에 핀 작은 꽃이 진짜 고양이눈 같다. ⓒ 김선호


며칠만 더 기다리면 노란 얼음새꽃이 산자락 전체를 덮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노루귀'가 딱 두 송이 꽃을 피웠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에 놀란 모양인지 꽃잎 끝에 검은 반점이 보인다. 얼음새꽃도 노루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송이가 더 없이 여린 모양새다. 도저히 눈 내린 산 속에서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더욱 당당해 보였을 것이다.

'너도 바람꽃'도 마찬가지. 만주바람꽃과는 수술이 조금 더 노랗다는 차이만 있을 뿐, 바람꽃이 되고 싶어 바람꽃모양으로 피었으니 '너도 바람꽃'이 되었던 모양이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바위틈에 피어있는 괭이눈을 만났다.  고양이 눈을 닮은 꽃이라더니 아닌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성급하게 꽃을 피운 두 송이 꽃중에 한 녀석이 영락없이 고양이 눈처럼 보인다. 이름도 재밌고 꽃의 생김 또한 재밌다.

변덕스런 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난 봄꽃들이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봄인데도 바람이 차다고 움추리고만 있었던 내가 무안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또 자연 앞에서 배운다. 날씨가 조금 변덕스럽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라, 묵묵히 견디어 내면 얼음 속에서도 노랗고 하얀 꽃을 피우는 저 들꽃처럼 의연해질 일이라고.
이 산, 저 산 꽃이 핀다. 분명코 봄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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