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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6)

―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 ‘쓰레기의 양’, ‘잠깐의 수치’ 다듬기

등록|2009.04.04 19:53 수정|2009.04.04 19:53
ㄱ.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

..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는 다른 시대와, 세계 모든 곳과 우리를 연결지어준다 ..  《데이비드 스즈키,웨인 그레이디/이한중 옮김-나무와 숲의 연대기》(김영사,2005) 14쪽

 '연결(連結)지어준다'는 '이어준다'나 '맺어 준다'로 다듬어 봅니다. '시대(時代)'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때'로 손질해도 됩니다.

 ┌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
 │
 │→ 나무 한 그루 이야기
 │→ 나무 한 그루가 살았던 이야기
 │→ 나무 한 그루가 살아온 이야기
 │→ 나무 한 그루와 얽힌 이야기
 │→ 나무 한 그루를 다룬 이야기
 └ …

 도시에서는 찻길과 아파트를 따라 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을 길을 파헤치거나 아파트를 허물 때 잘려져 나갑니다. 서른 해를 넘기기 어려운 도시 나무이고, 서른 해를 넘긴다 하여도 갖은 자동차 배기가스에 찌들고 숨막히며 애먹는 도시 나무입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덜 마시지만, 땅값이 싸다며 수없이 들어서는 공장에서 내뿜는 굴뚝 연기와 온갖 먼지를 들이마시는 나무입니다. 산에 심긴 나무는 솎아내기를 한다며 잘리고, 조금 컸다 싶어도 새 고속도로를 내고 새 고속철도를 내며 시골에도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면서 잘리고 맙니다. 도시 못지않게 서른 해를 고이 살아내기 어려운 시골 나무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사람 살림도 나무 살림과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한 곳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한 마을을 살가운 고향으로 느끼면서 땀흘려 가꾸기 어렵습니다.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돈으로 가꾸는 고향마을이 아닌, 우리가 애써 벌어들이는 돈이나 우리가 기꺼이 바치는 품으로 가꾸는 고향마을이어야 할 텐데, 자꾸자꾸 개발이니 경제니 사업이니 하는 외침이 터지면서 제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제마음을 잃고 제길을 놓칩니다.

 ┌ 나무 한 그루가 자라 온 이야기
 ├ 나무 한 그루가 커 온 이야기
 ├ 나무 한 그루가 부대낀 이야기
 └ …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고, 자연이 자연다울 수 없으니, 우리들 삶 또한 삶다웁기 어렵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삶이 삶다울 수 없다면 삶을 담아내는 말은 말다웁기 어렵습니다.

 말이며 글이며 제자리를 잃고 제길을 놓치며 제힘이 사라집니다. 올바른 말로 자리잡기도 힘들지만, 아름다운 말로 북돋우기도 힘들고, 슬기로운 말로 새로워지기도 힘듭니다. 얄궂고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말로 나뒹굴 뿐입니다.

ㄴ. 쓰레기의 양

.. 한 사람이 1년 동안 생활하면서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 ..  《홍선욱,심원준-바다로 간 플라스틱》(지성사,2008) 11쪽

 '1년(一年) 동안'은 '한 해 동안'으로 손보고, '생활(生活)하면서'는 '살면서'나 '지내면서'로 손봅니다. '양(量)'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부피'로 다듬으면 한결 낫고, '과연(果然)'은 '참으로'나 '참말'로 다듬어 줍니다.

 ┌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얼마나 될까
 │
 │→ 버리는 쓰레기는 부피가 얼마나 될까
 │→ 버리는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 버리는 쓰레기는 얼마나 많을까
 │→ 버리는 쓰레기는 얼마쯤일까
 └ …

 외마디 한자말 '양'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토씨를 살짝 손질해서 "버리는 쓰레기는 양이 얼마나 될까"처럼 적어 봅니다. 우리들 스스로 올바르거나 알맞게 우리 말과 글을 쓰고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해서 그렇지, 조금만 생각하고 가만히 돌아보면, 토씨 '-의'를 참말 엉뚱하게 붙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도 '-의 양'을 아예 덜어내어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처럼 적으면 글길이는 한결 단출하면서 뜻이 또렷해집니다. 이러는 가운데 토씨를 살짝살짝 달리 붙이면서 느낌이 사뭇 다르게 적어 볼 수 있어요.

 ┌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버리는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 한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는 한 해 동안 얼마나 될까?
 ├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있을까?
 ├ 한 사람이 한 해를 살며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릴까?
 └ …

 어쩌면, 글월 하나에 너무도 많이 생각을 바치고 품을 들여야 하니, 글을 쓰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만 좀 까다롭다고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 자기 손과 입에 익숙하지 않아서 서툴거나 어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알맞고 올바르게 쓰도록 마음을 쏟으면서 하루하루 가다듬고 추스르면, 오래지 않아 자기 목소리와 마음씨가 고이 묻어나는 살갑고 싱그러운 말씨를 찾아내어 가꿀 수 있습니다.

ㄷ. 잠깐의 수치, 평생의 수치

.. "모르는 걸 물어 보는 것은 잠깐의 수치지만, 묻지 않는 것은 평생의 수치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우리 가족 시골로 간다》(양철북,2004) 13쪽

 '수치(羞恥)'는 '부끄러움'이나 '창피'로 다듬어 줍니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수치' 뜻풀이를 "= 부끄러움"이라고 적어 놓고 있네요. 그렇다면 더더욱 '수치'를 '부끄러움'으로 고쳐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들은 이 낱말을 고쳐써야 한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얄궂은 낱말이어도 고치지 않고, 잘못 쓰이는 낱말이어도 바로잡지 못합니다.

 ┌ 잠깐의 수치지만
 │→ 잠깐 부끄러움이지만
 │→ 잠깐 동안 부끄러워도
 │→ 잠깐 부끄럽겠지만
 │→ 잠깐 부끄럽다 하여도
 │→ 잠깐은 부끄러워도
 │
 ├ 평생의 수치라고
 │→ 평생 부끄럽다고
 │→ 평생 동안 부끄럽게 된다고
 │→ 앞으로도 부끄럽게 된다고
 │→ 언제까지나 부끄러운 노릇이라고
 │→ 오래도록 부끄러운 일이라고
 └ …

 토씨 '-의'를 붙인 보기글  "잠깐의 수치, 평생의 수치"처럼 "잠깐의 행복, 평생의 행복"이라든지 "잠깐의 불행, 평생의 불행"처럼 쓰기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사이에 토씨 '-의'를 안 넣으면서도 이야기를 해도 넉넉할 테지만, 토씨 '-의'를 넣지 않으면 허전하다고 느끼는 분이 퍽 많습니다. 토씨 '-의'를 이럴 때 붙여야지 어느 때 붙이느냐고 따지는 분이 꽤 많습니다.

 이 보기글은 아이들이 읽는 책에 적힌 글월입니다. 동화책에 실린 글월입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토씨 '-의'를 온갖 곳에 붙이게 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교과서를 비롯해 이런 어린이책에도 토씨 '-의'가 이와 같이 쓰이게 된다면, 아이들은 무척 어린 날부터 이래저래 토씨 '-의' 씀씀이가 몸에 익게 됩니다. 손에 붙고 귀에 붙고 마음에 붙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릴 적 말버릇이 꼬부랑 늙은 나이가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리하여 나중에 어른이 되는 아이들은 이처럼 말하게 됩니다. '어, 난 이런 말을 어릴 적부터 써 왔는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소리이지?' '뭐야? 이런 말은 내가 어릴 때부터 늘 듣고 쓴 말투라고, 여태껏 써 온 말투를 어떻게 고쳐?'

 아이들 앞날을 걱정한다면 아무 말씨나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아이들 앞날뿐 아니라 오늘날을 근심한다면 아무 글월이나 함부로 펼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몸을 헤아리며 아무 밥이나 먹이지 않고, 아이들 마음바탕을 생각하며 '18금'이니 '13금'이니 하면서 텔레비전 풀그림을 가리는 어른들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읽는 책과 아이들이 듣는 말에서도 '아이들 마음을 살찌우는 말과 글이 무엇인지를 어른 스스로 제대로 헤아리면'서 올바르게 가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올바르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싱그럽게 꿈꾸기를 바란다면, 우리 어른들부터 아름답고 올바르게 싱그럽도록 몸과 마음과 말과 넋 모두 알뜰히 가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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