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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출보다 부지런한 어부에게서 배우다

[새벽산책. 11] 미포에서 청사포 그리고 구덕포까지

등록|2009.04.05 13:29 수정|2009.04.05 13:29

아침 출항에바닷길이 열리다 ⓒ 김찬순

춘분지나자, 해는 일찍 뜬다. 겨울보다 일찍 집을 나와 새벽길 나선다. 한 한 시간정도 해는 일찍 뜬다. 겨울에는 7시 즈음에야 바다에서 해가 솟구친다. 그러나 요즘은 6시 정도되면 해가 바다에서 솟구친다. 해가 바다에서 솟구치는 광경은 날마다 다르다. 바다의 빛깔도 다르다. 그래서 아침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바다를 찍은지도 벌써 4년이 가깝다.

아침 출항처럼하늘의 열리는 듯 긴 항적의 흔적 ⓒ 김찬순

오늘 바다의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이 약간 지루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해가 솟구치는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더디게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어둠은 물러난다. 환한 아침 해가 양동이 물처럼 하늘에서 빛을 쏟아내면, 바다 위에는 2톤 통발어선 등이 돌아온다.   어둠 속에서 여명이 떠오르기 전에 이미 새벽 출항이 뱃길을 열고 하늘의 길을 연 것이다. 어젯밤 출항한 고깃배들이 줄줄이 포구로 돌아온다. 통통통 귀에 정겨운 엔진 소리를 내며 고깃배들이 귀항한다. 새벽일출보다 부지런한 어부들의 출항에 나는 날마다 부지런함 근면, 성실을 배우겠다고 다짐한다.    

일출보다부지런한 출항 ⓒ 김찬순

우리나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만큼 바다에서 일하는 직업을 어부들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급격한 시대 변천에 따른 직업의식과 직업 이미지 등으로 천해 보이는 직업 호칭에 유별나게 집착해서 많은 직업 호칭이 숨가쁘게 바뀌어 왔으나, 이상하게 아직도 어부라는 호칭 외 다른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어부나 농부들은 야단스럽게 이를 불평한 거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를 보면 확실히 대자연을 직업 현장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포용력이 넓은 것이다. 하긴 호칭이 무슨 대수일까. 열심히 근면하게 일하는 직업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천직으로 삼고 살아가는 평생 파도와 싸우는 바다를 직장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뱃길에하늘이 열리다 ⓒ 김찬순

새벽출항보다 더 늦게 떠오르는 아침해 ⓒ 김찬순

도보로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로 해서 구덕포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보 여행보다는 자전거나 차량으로 둘러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봄바다에는 유난히 멸치배가 많이 보인다. 새벽 갈매기들도 먹이를 찾기 위해 고깃배 주위를 따라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누군가 삶이 싫증나면 시장에 나가보라고 하지만 갯비린내나는 포구에 오면 그 어떤 생명력보다 강한 어부들의 성실과 근면, 부지런함을 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새벽 일찍 출항과 입항을 모두 마친 포구의 아침은 그래서 대낮처럼 한가하게 보인다. 그 한적한 방파제를 따라 길게 늘어있는 미역 건조대와 새벽 입항해서 쉬고 있는 고깃배들을 구경하는 것도 이색적인 바다체험이 될 것이다.   

아침구덕포 ⓒ 김찬순



일찍 일어난 새는먹이를 많이 줍는다는데... ⓒ 김찬순

청정 해역으로 알려진 기장 앞바다가 목측인 청사포에는 미역이 많이 난다. 청사포에 오면 바다에서 방금 나온 생미역을 살 수 있다. 태양에 건조된 청정 미역이라 슈퍼나 백화점에서 잘 포장된 미역 모양처럼 깔끔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싸고 집에 가지고 와서 물에 씻으면 마른 미역이 생미역처럼 새파랗고 싱싱하다.



청정하고물좋은 기장미역 사이소 ⓒ 김찬순

해안에 즐비한미역건조대 ⓒ 김찬순

섬 지나 바다로다 바다 지나 또 섬인데 갈매기 춤을 추고 물새는 노래하네 조는 듯 흰 돛 두 세개 오가는 줄 몰라라 별도 어부처럼 어부도 별처럼 하늘이 바다인가 바다가 하늘인가 수천이 방불한 저기 악 소리 들려라 섬 지나 물결 지나 이배를 저어가면 어느 개 어느 말에 누구를 찾아오나 그린 임 못날 바에야 다시 안 돌아오리 <어부노래>-'통영 지방 민요' 

일출보다빠른, 출항과 귀항을 위해 밤을 새운 등대불빛는 그제야 끄떡끄덕 졸으고 ⓒ 김찬순

통통통 제법 큰 엔진소리를 내며 떠나는 한 어부의 출항을 오래 지켜보다가 문득 조선 시대 기인 학자, 이지함 선생의 일화가 생각난다. "내 일찌기 외방으로 다니면서 최고로 될 만한 사람을 안다." 고 말하자, 제자들은 도대체 그게 어떤 사람이라고 물었다. 이에, 선생은, "한 사람은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처음 충청도 해상에서 그를 만난 뒤 십년 만에 다시 전라도 해상에서 만난 사람이다.....거처는 일정한 곳이 없어서..." 고 얘기했다고 한다.  



새벽 출항나간어촌 아침은 대낮처럼 조용하다 ⓒ 김찬순


사람 한평생 한 길의 천직을 가지고 산 사람만큼 성공한 삶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길지 않는 인생인데, 그동안 자그만치 열 곳이 넘게 직장을 옮겼다. 내가 만약 한 직업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뿌리 깊은 사람 나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말 이것은 병인지 넓은 바다만 보고 있으면 어부가 되고 싶다. 만약 바다에 나가 어부가 된다면 이 직업으로 내 남은 생을 그 어느 길의 유혹도 이기지 않고 나만의 뱃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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