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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약올리는 휴게소 자판기

휴게소는 손님들의 안식처,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써야 한다

등록|2009.04.06 10:58 수정|2009.04.06 10:58

우리는 삼형제 자판기 손님, 우리 삼형제 커피 자판기는 오늘 300백원짜리 커피를 팔지 않기로 동맹을 맺었으니 옆에 500원짜리 뽑아 드세유. ⓒ 김학섭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 되는 날이다. 옛부터 자손들이 조상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를 하며 조상의 묘를 돌보는 날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손들이라도 이날 하루만은 시간을 내서 고향의 선산을 찾게 된다. 나도 오늘은 모처럼의 귀향이어서 마음은 이미 고향 선산에 가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 산소에 가봤더니 여러군데 손 볼 곳이 있었다. 산소는 아무 때고 손을 댈 수 없다는 속설 때문에 한식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식날이 돌아오자 아들은 아침 일찍 차를 가지고 도착했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아들의 차를 타고 집을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성묘객과 나들이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집을 일찍 나선 탓인지 배가 출출했다. 집사람이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가자고 해 문막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소는 깨끗하고 잘 만들어 놓아 이곳을 지날 때마다 들려서 음식을 먹었다. 오늘도 따끈한 국물에 꼬치우동 한그릇과 김밥 한줄 씩 먹고나니 속이 든든했다. 빈 속을 채우고 나니 이번에는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판기가 3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들에게 지판기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아들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체면이 서지 않는 모양인지 한참 머뭇거렸다.

"아버지, 꼭 여기까지 와서 이걸 드셔야 하겠어요?"
"나는 커피 한잔 먹으려고 줄을 서는 것은 질색이다."

자판기 커피는 돈만 넣고 보턴만 누르면 끝이었다. 커피 한 잔에 3백원이다. 아들은 자판기에 백원짜리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자판기는 어쩐 일인지 돈을 계속 뱉아내고 있었다. 자판기 3대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 아무래도 이 자판기들은 돈이 싫은 모양입니다."
"어째서."
"돈을 넣을 때마다 도루 밀어내고 있어요."
"흥, 돈을 싫어하는 것을 보니 도사 자판기로구먼."

그 옆에 5백원짜리 자판기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5백원을 넣고 보턴을 누르는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캔커피가 굴러 떨어졌다. 따끈한 캔커피였다. 캔커피를 꺼내 마시고 있으려니 어쩐지 화가 났다. 자판기 커피 값보다 2백원이 더 비쌌다. 안내소에 가서 항의를 했더니 곧 직원이 나와 자판기를 열어보였다.

"어째서 3백원짜리 커피 자판기가 작동되지 않습니까?"
"재료가 떨어졌습니다."
"3대다 동시에 재료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까?"

확인 결과 재료는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물을 공급하는 호스를 들어보였다.

"호스가 빠져 있습니다."

그 직원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판기 3대가 동시에 고장을 일으킨다는 것은 더더욱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식날 성묘길을 나서는 내 마음은 이 일로 하루 종일 울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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