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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에선 유럽인들과 보트트립을!

[베트남 여행기 ⑥] 베트남 휴양지의 대명사 나짱

등록|2009.04.07 18:03 수정|2009.04.07 18:03
동상이몽

호치민에서의 짧고 아쉬웠던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가 향한 곳은 나짱이었다. 영어로 나트랑이라 불리는 그곳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베트남에서 가장 훌륭한 휴양지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덕분에 고대 왕조의 휴양지였으며, 식민 시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유럽인들이 찾아오는 도시 나짱. 

아마도 결혼 전 신혼여행에서 휴양을 할 것이냐, 관광을 할 것이냐를 두고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아내가 베트남을 택한 이유의 8할은 인터넷에 떠있는 나짱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야 호치민의 시신만 볼 수 있다면 베트남 여행도 괜찮다고 했던 바, 아내는 나짱에서의 휴양을 신혼여행의 백미로 잡고 베트남 행을 계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달리 내가 처음 나짱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올렸던 건 아름다운 열대 해변이 아닌 베트남전이었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던 한국군이 처음 상륙했던 곳이 바로 이곳 나짱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그 뒤로 이 곳 나짱에 야전사령부를 두어 베트남전을 지휘했으며, 따라서 아직도 많은 참전용사들이 베트남전 하면 이곳 나짱을 이야기하곤 한다.

같은 나짱을 두고서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리는 아내와 베트남전의 포연을 떠올리는 나. 결국 우리의 동상이몽이 베트남의 현대사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요, 아픔 아니겠는가. 아마도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많은 외국군인들 역시 한국에 온다면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리라.

아름다운 나짱 해변세계적인 휴양지 나짱 ⓒ 이희동


호치민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길게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베트남의 바닷가. 40년 전만 해도 이 풍경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나짱. 공항이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탓인지 창밖 풍경은 썰렁했지만 자그마한 공항은 관광객들을 마중 나온 호텔 직원들과 승객을 태우려는 택시기사들로 붐비고 있었다. 호치민의 택시기사와 달리 세련된 매너에 깨끗한 복장을 갖춘 그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짱이기에 시나 국가에서 주관하여 관광 업무 종사자들을 교육시킨 것이 아닐까?

우리를 태운 리조트의 버스는 또다시 바닷가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우리의 동해안과 비슷했던 그곳. 책자를 보아하니 이곳 깎아지는 절벽 위 어디엔가 우리의 십자성부대의 주둔지가 있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때 그 시절 우리 군인들은 유난히도 동해안을 닮은 이곳에서 저 파란 바다를 보면서 고국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리조트에 도착하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었다. 아내의 바람대로 이곳 나짱에서만큼은 최고 리조트에 최고 스위트룸을 예약했던지라 우리를 대하는 리조트 직원들의 태도부터가 달라보였고 예약한 방 역시 나짱의 아름다운 해변이 그대로 보이는,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아름다운 방이었다. 그래, 일생에 한 번 있다는 신혼여행인데, 언제 이런 대접을 또 받아 보겠는가. 

나짱의 밤거리부산 광안리와 해운대를 상기시키던 ⓒ 이희동


베트남 소고기값싸고 맛있는 ⓒ 이희동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리조트를 나섰다. 공항에서부터 달려온 거리와 달리 해안가를 낀 나짱 시내는 화려한 불빛으로 정신이 없었다. 마치 부산의 광안리나 해운대에 온 것 같았다. 짭짜름한 바다내음과 기다란 모래사장 뒤로 늘어선 화려한 호텔, 그리고 곳곳에서 휘청휘청 갈지자를 그리는 취객들과 삐끼들.

우리가 향한 곳은 인터넷에서 보았던, 배낭여행객들에게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주로 현지인이 애용하는 식당으로서 값싼 나짱의 해산물과 숯불에 구워먹는 소고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후기가 3만 원이면 두 명이서 아주 실컷 맥주와 해산물,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해산물과 함께 소고기를 시켜 먹기 시작했다. 맛도 맛이었지만 그 저렴한 가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환율이 오른 지금도 이 정도인데 몇 해 전은 얼마나 쌌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먹기 힘든 소고기를 몇 접시나 먹은 우리. 혹시 하는 마음에 종업원에게 미국 소가 아니냐고 묻자 베트남 물소라고 한다. 다행. 소고기를 이렇게 싸고 안심하고 먹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덕분에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든 나짱의 첫날 밤.

아름다운 나짱 해변에서

다음날 일과는 하루 종일 해변에서의 휴양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새파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해변의 방갈로에 늘어지게 누워 책 보다가, 자다가, 다시 수영하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햇살을 피한 바닷가 바람은 시원했고, 가끔 리조트 직원이 가져다주는 열대과일은 달콤한 것이 입맛을 돋웠다.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놀고. 이곳이 바로 천국이로세.

나짱의 해변슬프지만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한 그곳 ⓒ 이희동


열대의 해변야자수 나무와 방갈로 ⓒ 이희동


얼마나 망중한을 보냈을까. 부스스 눈을 뜨니 눈앞에 리조트 직원으로 보이는 베트남인이 열심히 해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순간 느끼는 이 당혹감과 죄책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들에게 전혀 괘의치 않고 나처럼 반라의 복장으로 휴양을 즐기고 있었지만, 막상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괜스레 좌불안석이었다.

과연 내가 열심히 노동하는 저들 앞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쉬워도 되는 것인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케케묵은 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나의 모국이 그들의 모국보다 조금 더 잘 산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진 돈으로 그들의 노동을 사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나처럼 늘어지게 누워있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쩌면 이는 그와 같은 상황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제국주의적 침략보다는 수탈이 낯익은 내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이 좋은 자본주의라지만 리조트가 해변에 선을 그어놓고 내 땅이라고 우긴 뒤, 그 곳에 외국인들만 버글버글 하다면 그 모습을 어찌 곱게 볼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는 베트남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와 같은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도 궁금했다. 완벽한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그들의 사회주의를 외치고 있을까? 여타 사회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일당독재만을 외치며 정치적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아름다운 나짱 해변에서 마냥 마음 편히 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트트립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유명하다는 나짱의 보트트립을 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하루를 통틀어 쉴까도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냥 리조트에만 있기도 아깝지 않은가. 때문에 우리는 전날 밤 호치민과 마찬가지로 지역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보트트립을 예약했었다.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온 봉고차에 몸을 실으니 그곳에는 젊은 외국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벌써부터 차 안은 젊음의 에너지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하긴 휴양을 하기 위해 온 나이든 유럽인이 대부분인 리조트와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보트트립나짱의 명물 ⓒ 이희동


봉고차는 우리를 곧장 나짱 끄트머리에 있는 항구로 데리고 갔고, 우리는 그곳에서 허름한 배 한 척을 갈아탔다. 곧이어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는 베트남인 가이드.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나짱 출신이며 자신의 국가 베트남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던 그이는 말미에  'No money, No enjoy'
외쳤다.

어쨌든 가이드의 소개로 시작된 관광객들의 자기소개. 실로 다양한 국적들이 모여 있었다. 네덜란드, 독일, 호주, 싱가포르, 잉글랜드, 캐나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베트남 그리고 코리아. 특이한 것은 그 많은 이들 중 미국인들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생김새만으로 서구사람들의 국적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베트남을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서구인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인 듯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씁쓸한 기억도 기억이겠지만 인도차이나가 유럽에서 더 유명한 탓이려니.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먹서먹해 하던 사람들은 오고가는 맥주 한 잔에 금세 친해져 이리저리 얽히고설키기 시작했다. 역시 적당한 음주는 만국 공통어던가. 특히 서구 관광객들은 술이 들어가고 나니 제각기 편한 복장에, 편한 자세를 하고 제각기 편한 대로 널브러져 바로 지금을 즐기기 시작했다. 뭘 해도 남을 의식하는 동양인들과 달리 자유를 즐길 줄 아는 그들. 부러운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자유를 즐기는 서구인들부러웠다는 ⓒ 이희동


풍덩풍덩배에서 바다위로 ⓒ 이희동


처음에는 우리를 이상한 섬의 유치한 수족관으로 안내하던 가이드. 그러나 그는 곧 배를 멈춰 세웠고 우리들은 하나씩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에서 뛰어내려, 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위에 떠있는 그 기분. 곧이어 우리는 연안가로 옮겨 가이드가 쥐어주는 장비를 가지고 스노클링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눈이 나빠 훤히 보지는 못했지만 저 밑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호초의 모습에 또다시 감탄을 자아냈다. 단돈 8달러 가지고 이만큼 즐길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조금 노곤해진 몸을 이제 그만 선상에 올려놓으니 가이드가 이번에는 점심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비록 고급음식은 아니었지만 관광객들 모두 시장기를 반찬삼아 맛있게 먹었다. 서투른 젓가락질로 잘 잡히지도 않는 안남미를 떠먹으려고 애쓰는 외국인들의 안쓰럽지만 우스꽝스럽던 그 모습이란.

배 위의 점심8달러로 그 모든 걸 해결하는 보트트립 ⓒ 이희동


맛있는 한 끼에 배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가이드가 이번에는 선측에서 악기들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나짱 보트트립의 백미,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유랑극단과 진배없는 그들의 모습!

신나는 비트로 관광객들의 흥을 힘껏 끌어올린 가이드는 각 국적의 손님들을 하나하나씩 불러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다. 노래명은 이미 가이드가 외우고 있는 각국의 민요풍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다들 저 아름다운 풍경에, 그리고 흥에 취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와중에 가이드의 성화에 못 이겨 미스코리아로 나가 아리랑을 부른 아내. 워낙에 처지는 노래라 조금 걱정은 됐지만, 어쨌든 그녀의 열창과 관광객들의 호응으로 무사히 불러진 아리랑이었다.

미스 캐나다유랑극단과 각국의 가수들 ⓒ 이희동


얼마나 놀았던가. 가이드는 우리를 또다시 바다로 끌어내렸고, 우리는 바다에 동동 뜬 채 가이드가 따라주는 술을 홀짝홀짝 받아먹으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했다.

반나절을 훌쩍 넘긴 채 다시 보트를 타고 항구로 돌아오니 어느새 오후 4시. 보트트립의 흥이 가셨는지 직업병인 냥 항구의 컨테이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오전 내내 햇볕에 탄 등이 따갑기 시작했다. 덕분에 리조트에 돌아와 저녁 내내 오이 마사지를 해야 했지만 어쨌든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혹여 베트남 나짱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보트트립을 하시기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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