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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우습게 볼 게 아니네

섬진강 따라서 곡성역에서 구례구역까지 걸어가기②

등록|2009.04.08 10:15 수정|2009.04.08 10:16

▲ 섬진강변을 따라 걸어가는 길 ⓒ 전용호


섬진강 길이는 얼마나 될까?

섬진강은 남쪽나라에서 몇 번째로 긴 강일까? 4대강에 포함되지 않으니 대여섯 번째쯤 될까? 아니다. 섬진강은 남한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낙동강(510.36㎞), 한강(494.44㎞), 금강(397.79㎞), 섬진강(223.86㎞), 영산강(136.66㎞) 순이다.

전라북도 진안 팔공산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백두대간을 막아서면서 남쪽으로 흘러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바다로 흘러간다. 참 애환이 많은 강이다. 광양과 하동이, 하동과 구례가 섬진강을 끼고 하나처럼 살아가는데 주변에서는 자꾸 경상도와 전라도로 구분하려고 한다.

▲ 곡성(가정마을)에서부터 구례구까지 걸어가는 길 ⓒ 전용호


나룻배. 우습게 볼게 아니네.

곡성역에서부터 걸어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걸은 시간이 상당히 되었다. 쉬어갔으면 하는데…. 별수 없이 길바닥에 깔고 앉았다.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건너편으로는 차량들이 분주하게 달려간다. 그 위로 기차마을을 향하는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강변으로 버드나무는 파란 새순을 터트리고 있다. 강도 말이 없고 길도 말이 없다. 그 길 위에 움직이는 건 우리.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햇살을 가득 받은 봄꽃들이 재잘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노란 양지꽃, 붉은 광대나물, 하얀 봄맞이꽃 등등.

강변을 따라 가는 길에는 오르막길도 있다. 오르막을 올랐다가 내려서니 아래로 나룻배가 매어있다. 호곡나루터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줄 배다.

▲ 호곡나루터에는 섬진강을 건너는 줄배가 있다. 보통 노를 저어가는데, 이 배는 강 양편으로 쇠줄을 걸어놓고 그 줄을 잡아당기면서 건너 다닌다. 뱃머리에는 고사를 지냈던 명태가 매어 있다. ⓒ 전용호


호기심 발동. 안타보고 그냥 못 간다. 강변으로 내려서서 배에 올라탄다. 줄을 잡고 서서히 강 가운데로 들어서니 마치 허공에 떠있는 기분이다. 물살을 받으며 강 가운데에 있으니 떠밀려 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서둘러 줄을 당긴다. 지켜보던 아내는 겁쟁이라며, 배에 묶여 있는 명태가 웃겠다고 놀린다.

날개 없는 새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물은 중간 중간 바위를 가르며 흘러간다. 그 옆으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다. 물빛이 시원하게 보인다. 비포장도로는 작은 자갈을 깔아놓아 걷기에 힘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언덕배기 튀어나온 강가로 조형물이 보인다. 뭘까? 아내는 새같이 보인다고 한다. 나는 횃불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표지석에 이름표를 달고 있다. '섬진강 무익조'라고 써 있으며, 2003년에 김성범이 세웠다고 알려준다. 무익조는 어떤 샐까?

▲ 동화작가 김성범이 섬진강변에 만들어 놓은 '섬진강 무익조'. 날개 없는 새가 애처롭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 전용호


▲ 섬진강 도깨비대장의 귀여운 모습 ⓒ 전용호


그렇게 궁금증만 남긴 채 조금 더 걸어오니 익살스런 도깨비 조각상이 보인다. 너무나 귀엽다. 도깨비방망이는 고무방망인지 구부러져 있다. 역시 작은 표지석에 '섬진강 도깨비대장'이라고 알려준다. 섬진강과 도깨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마천목장군과 도깨비이야기의 주인공인가 보다.

섬진강 벚꽃 길을 걸으며

두 개의 조각 작품은 한적한 강변길에서 깜짝 이벤트를 즐긴 기분이다. 오르막이 나오고 다시 내려오니 강변으로 벚꽃길이 이어진다. 우와! 아름다운 길이다. 비포장 길과 어울린 벚나무. 이런 길이 어디 있을까? 꽃길을 걸어가니 마음도 화사해진다. 도란도란 즐거운 이야기가 오고간다.

▲ 섬진강을 따라 이어진 비포장 도로. 벚꽃과 어울려 아름답다. ⓒ 전용호


▲ 꽃과 어우러진 섬진강 ⓒ 전용호


꽃길을 따라 걷다보니 멀리 다리가 보인다. 저기가 아마 두가교고 조금 더 가면 기차마을에서 운행하는 기차의 종점인 가정이 나오겠지.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서 잠깐 쉰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아름다운 봄날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 강물이 반짝거리며 흔들린다.

자전거를 탄 연인들이 다가온다. 가정마을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가 보다. 사랑을 하면 힘든 것도 없어진다는데. 젊은 청춘이 부럽다. 뭘 해도 즐거운 청춘. 한껏 웃음을 남기며 지나간다.

자전거 천국 가정마을

분홍색 현수교가 힘자랑을 하듯 걸쳐있는 가정마을에 들어선다. 봄나들이 온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길옆으로 천막을 친 간이음식점에서 핫도그를 하나씩 샀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 빨간 케첩을 이리저리 능숙하게 발라주는 아주머니. 많이 파세요.

▲ 섬진강 꽃길 따라서 ⓒ 전용호


이곳은 자전거 천국이다. 다양한 자전거가 돌아다닌다. 좌석이 두 개 달린 연인들이 타는 사랑자전거(?)에서 마차처럼 생긴 네 바퀴 자전거까지. 당연히 사랑도 넘쳐난다. 부럽다. 우리는 탈 수 없다. 걸어가야 하니까.

가정마을은 곡성이지만 작은 개울을 지나면 구례가 된다. 한마을에 행정구역이 두 개로 나누어졌다. 마을은 곡성이고, 농지나 삶의 터전은 구례에 속한다. 지금부터는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차량은 많이 다니지 않는다. 길에는 활짝 핀 벚꽃을 즐기는 자전거 무리가 여유롭게 흘러간다.

제비꽃 너는 왜 이런 곳에서 꽃을 피우니?

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도로의 변화가 없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서서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말 수도 많이 줄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만나는 틈 사이로 제비꽃들이 줄을 지어 피어있다. '제비꽃 너는 왜 이런 곳에서 꽃을 피우니?' 무척 얼굴이 밝다. 언제 밟힐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에 피어서 이렇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줄 수 가 있을까? 잠시 같이 웃음을 나눈다.

▲ 아스팔트 옆으로 피어있는 제비꽃 ⓒ 전용호


논곡마을을 지나 걷기를 계속하니 멀리 다리가 보인다. 압록이다. 압록은 보성강과 만나는 곳으로 여름이면 유원지가 되기도 한다. 젊은 청춘 때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다. 20년이 훨씬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난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강가로 내려섰다. 강가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평온하고 따뜻하게만 보이던 강물은 가까이 다가가니 세찬 바람으로 위협을 하면서 존재를 알린다. 알았다고. 밥만 먹고 갈 거야.

갓길이 없는 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압록에서 구례구로 이어진 길은 차량통행이 엄청 많다. 아마 다른 때 같으면 차가 없었을 텐데, 상춘객들이 강변의 벚꽃을 즐기려고 일부러 이 길로 지나가는 가보다. 차를 피해가면서 걷기가 힘들다. 좁은 도로에 갓길이 전혀 없다.

▲ 섬진강변을 압록에서 구례구까지 걸어가는 길. 갓길이 없는 아스팔트 길이다. ⓒ 전용호


다무락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유곡마을을 지나고, 독자마을도 지난다. 이제는 완전히 지쳤다. 무려 6시간을 넘게 걸었으니, 허리는 뻐근하고 다리는 무리가 간다. 발가락이 따끔거리는 게 혹시 물집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 절로 '끝이 없는 길'이라는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이 길은 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걸었던 거라고. 멀리 전주-광양 간 고속도로를 만들고 있는 커다란 다리가 보인다. 아마 저기까지 가야할거야.

다리와의 거리는 쉽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이곳은 계절이 거꾸로 가는가? 이제야 개나리가 피고 있다. 더 북쪽인 곡성은 개나리가 다 져 버렸던데.

▲ 다리를 건너면 구례구역이다. ⓒ 전용호


드디어 파란 다리가 보인다. 섬진강을 건너는 다리다. 걸음이 빨라진다. 다리도 힘이 들지만 어서 이 길을 끝내버리고 싶다. 다리 앞에 섰다. 섬진강이라는 커다란 표지판이 '이제 끝났어' 하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다리 끝으로 구례구역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무익조는 김성범이 쓴 동화 '숨 쉬는 책 무익조'에 나오는 새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날개 없는 새'다.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대충 내용은 동학혁명 때 남겨진 한문으로 된 책 속에는 동화 속 주인공의 고조할아버지와 무익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 마천목장군과 도깨비 이야기 : 마천목 장군이 어릴 적 외가인 섬진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에게 매일 고기를 잡아다가 반찬을 해드렸다고 한다.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이상하게 푸른 돌이 있어 주워왔는데, 그날 밤 도깨비들이 나타나 두목 도깨비를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고 했단다. 마천목은 강에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살을 만들어주면 돌려주겠다고 했고, 도깨비들이 어살을 만들려면 배가 고프니 메밀죽을 쑤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도깨비들이 어살을 만들어 주었는데, 가난한 살림에 메밀죽을 충분히 주지 못하자, 어살 한쪽을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마천목(1358-1431) 장군은 조선 초 태종이 되는 이방원을 도와 왕자의 난을 평정한 장군이다.


- 걸어간 길(4월 4일) : 곡성역-(5㎞, 1:30)-호곡나루터-(5㎞, 1:50)-가정-(4㎞, 1:10)-압록(점심, 0:30)-(4㎞, 0:40)-유곡-(5㎞, 1:20)-구례구역
총 걸은 거리 : 23㎞, 7시간(점심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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